기초생활수급자인 오아무개(76·왼쪽), 이아무개(77) 할머니가 8일 오후 서울 구로구 오류동 집에서 연탄보일러를 틀고 전기장판을 켰음에도 추위가 가시지 않아 화로를 피워놓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기초생활보장 수급액 절반 가스·전기 난방료로
소득 중 연료비 비중 하위10%가 상위10%의 10배
소득 중 연료비 비중 하위10%가 상위10%의 10배
지난 5일 오후 서울 구로구 오류동 산5번지 일대. 1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달동네에 겨울 막바지 추위가 파고들었다. 이날 서울지역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7.9도까지 떨어져 동네에는 인적마저 거의 끊겼다.
슬레이트 지붕의 한 무허가 주택 문을 두드렸다. 외풍을 막기 위해 얇은 유리로 된 미닫이문에는 반투명 비닐이 덧대어져 있고, 문 안쪽에는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커튼을 들추고 들어서니 어두운 방에 누워 있던 이아무개(77) 할머니가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기장판을 깔고, 털양말을 신고, 겨울바지에 웃옷은 세 겹을 껴입었다. 이불도 두 겹으로 덮고 있었다. 아궁이 연탄불에 방바닥에선 온기가 느껴졌지만, 이불 위 방안 공기에는 냉기가 흘렀다.
이 할머니는 난방은 연탄으로 하고, 취사는 프로판가스를 쓴다. 상수도가 없어 지하수를 끌어다 물을 끓여 손발을 씻는다. 가스비와 전기료, 연탄값 등을 합하면 겨울 한 달에 20만원은 족히 들어간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서 함께 사는 오아무개(76) 할머니와 함께 각각 한 달에 44만원을 받다 보니, 두 할머니 수입의 20% 이상이 난방 등 ‘에너지 소비’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런데도 두 할머니는 집 안에서 옷을 껴입고 살아야 한다.
옆 동네인 구로구 궁동 단독주택에 사는 전아무개(50)씨는 일곱 식구의 가장이다. 월수입은 250만원가량이다. 도시가스 공급이 안 돼 기름보일러와 프로판가스로 난방과 취사를 한다. 전씨 집은 기름값을 아끼려 전기장판도 함께 쓴다. 이 때문에 지난달 전기료는 10만원이 나왔다. 기름값까지 합하면 한달 30만원 수준이라 월수입의 10%가 넘는다. 전씨는 “집을 좀 고쳐 틈새만 막아도 기름값이 적게 들어갈 것 같다”고 했다.
가난한 이들은 겨울이 특히 춥다. 돈이 없어 난방을 못하고, 난방을 해도 그렇게 따뜻하지 않다. 고소득층보다 난방비를 더 써도 집에서 춥게 지내는 역설적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주택 단열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돈은 돈대로 쓰지만 열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방 한 칸짜리 7평 무허가 주택에 홀로 사는 이상수(77·서울 관악구 삼성동)씨는 한 달 난방과 취사로 프로판가스 20㎏짜리 3통을 쓴다. 한 통에 3만6000원 정도여서, 한 달 기초생활보장비 37만원 가운데 30% 정도가 가스비다. 그런데도 집은 썰렁하다. 시멘트 벽돌로 된 그의 집은 벽 두께가 10㎝ 정도밖에 안 된다. 이씨는 “방바닥은 따뜻해도 벽에서 찬바람이 나온다”며 “집을 지을 때 스티로폼 하나만 넣었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이 주로 사는 지역에 도시가스가 들어가지 않는 것도 저소득층의 ‘에너지 소외’ 현상을 부추긴다. 난방비가 비싼 기름보일러나 연탄, 프로판가스를 사용하고, 전기매트나 온풍기 등 전기난방기구를 따로 쓰니 덩달아 전기료도 올라간다. 8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소득계층별 난방형태’ 자료를 보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는 석유보일러(프로판가스 포함) 사용 비율이 42.0%로 가장 높고 가스보일러(23.3%)가 그다음이다. 이런 상황은 소득이 올라가면 역전돼, 정부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을 뺀 일반가정의 경우 가스보일러 사용률(58.4%)이 석유보일러 사용률(23.2%)의 2배 이상이다. 연료별 열량당 가격(지난달 17일 기준)은 도시가스가 ㎉당 74.54원인 반면 등유는 119.44원으로, 가난한 이들이 더 비싼 연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통계청 자료를 봐도, 하위 10% 계층의 연료비는 전체 소득 중에서 8.9%를 차지하지만, 상위 10%는 0.9%에 불과하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한쪽에서는 에너지를 펑펑 쓰고 다른 쪽에서는 추위에 시달리는 에너지 소비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며 “저소득층이 열효율이 높은 에너지 소비 구조를 갖추도록 정부가 구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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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이 주로 사는 지역에 도시가스가 들어가지 않는 것도 저소득층의 ‘에너지 소외’ 현상을 부추긴다. 난방비가 비싼 기름보일러나 연탄, 프로판가스를 사용하고, 전기매트나 온풍기 등 전기난방기구를 따로 쓰니 덩달아 전기료도 올라간다. 8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소득계층별 난방형태’ 자료를 보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는 석유보일러(프로판가스 포함) 사용 비율이 42.0%로 가장 높고 가스보일러(23.3%)가 그다음이다. 이런 상황은 소득이 올라가면 역전돼, 정부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을 뺀 일반가정의 경우 가스보일러 사용률(58.4%)이 석유보일러 사용률(23.2%)의 2배 이상이다. 연료별 열량당 가격(지난달 17일 기준)은 도시가스가 ㎉당 74.54원인 반면 등유는 119.44원으로, 가난한 이들이 더 비싼 연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통계청 자료를 봐도, 하위 10% 계층의 연료비는 전체 소득 중에서 8.9%를 차지하지만, 상위 10%는 0.9%에 불과하다.
영등포 쪽방촌 ‘무거운 발걸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사는 한 주민이 지난해 겨울 난방용 연탄을 자신의 집으로 옮기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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