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폭격 피하고…배 끌고…40여일만에 류저우로 / 김자동

등록 2010-02-10 18:44

1938년 10월 임시정부 일행이 피난길에 잠시 체류한 광시성 구이핑현은 1851년 1월 배상제회를 창시한 홍수전(왼쪽)이 태평천국의 건설을 선언하고 봉기를 일으킨 곳으로, 당시 청나라 공친왕(오른쪽)과 영국군을 상대로 한 ‘15년 전쟁’의 시발지다.
1938년 10월 임시정부 일행이 피난길에 잠시 체류한 광시성 구이핑현은 1851년 1월 배상제회를 창시한 홍수전(왼쪽)이 태평천국의 건설을 선언하고 봉기를 일으킨 곳으로, 당시 청나라 공친왕(오른쪽)과 영국군을 상대로 한 ‘15년 전쟁’의 시발지다.
김자동-임정의 품 안에서 29
중국에는 가장 부유한 삼각주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창장(장강)·첸탕장(전당강) 삼각주이고, 다른 하나는 광저우를 중심으로 한 주장(주강) 삼각주다. 주장 삼각주에는 시장(서강)강, 둥장(동강)강, 베이장(북강)강, 주장강 외에 몇 개의 작은 강이 어울렸다가 다시 여러 갈래의 물길로 갈라져 난하이(남중국해)로 흘러간다.

싼수이현(현재는 광저우시 싼수이구)은 이 삼각주 서북부의 교통 요지다. 싼수이 서쪽에서는 광시성으로부터 흘러오는 중국 5대강의 하나인 시장강과 북쪽 후난성부터 내려오는 베이장강이 합쳐진다.

1938년 10월 우리 임시정부 피난행렬이 이곳에 이르렀을 때 일본 항공기의 공습을 받았다. 우리는 곧 기차로 돌아와 각기 진땀을 흘리며 짐을 내려놓았으나, 기관총 소리가 들리는 위급한 상황에서 모두 피난 가기에 바빴으므로 역에서 짐꾼을 구할 길이 없었다. 다행히 우리가 타고 떠날 선박을 구하러 부두 쪽으로 먼저 간 일파가 위수사령부의 사용허가를 미리 받은 덕분에 쉽게 배를 구해 왔다.

우리가 탄 배는 큰 목선으로, 작은 증기선이 이런 목선 몇 척을 끌고 주장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짐을 옮기는 데는 역 근처에 있는 공병부대 병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중대장(롄장)에게 상당한 사례금을 주면서 잘 설득했다. 병사들에게도 각기 담배 10갑씩을 나누어줬는데, 병사 100여명이 우리 일행 100여명의 짐을 옮기는 것은 별로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번에 부두로 옮겨갈 수가 있었다.

그해 10월19일 밤 싼수이를 떠난 배가 물길을 거슬러 광시성(현재의 광시좡족자치구) 중부의 류저우(유주)까지 가는 데는 40일이나 걸렸다. 요즘 같으면 자동차로 하루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배가 싼수이를 떠난 다음날 아침부터 또 일본군의 공습을 받았다. 싼수이에서 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가오야오(고요)라는 곳이었는데, 우리는 사탕수수밭에서 폭격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가오야오 근처에는 돤시(단계)라는 마을이 있는데 벼루를 만드는 단계석의 산지로 유명하다.

광시성의 유서 깊은 구이핑(계평)이란 곳까지 가는 동안 공습을 서너번 더 당했으나 우리가 탄 배는 무사히 지나갔다. 구이핑은 중국 5대강의 하나인 시장강 상류에 있는 도시로서 이곳에서 위장(욱강)강과 첸장(검강)강이 합쳐져 시장강이 되어 동쪽으로 흘러간다. 수상교통이 중요시되던 시기에는 교통의 요충이었으나 지금은 주요 도로가 지나가지 않아 작은 현으로 전락했다.

이곳은 중국 근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인 태평천국의 혁명이 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태평천국 혁명은 우리의 동학혁명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 한때 중국 남부 대부분 지역까지 점령했던 태평천국은 반청, 반외세를 내세웠으므로 영국 등 열강이 남의 나라 내전에서 청나라 정부를 지원해 결국 패망했다.


구이핑에서 우리는 뜻하지 않은 일로 20일이나 출발이 지연됐다. 우리 목선을 이곳까지 예인하던 증기선이 수로가 얕고 물살이 급한 첸장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어 여기서부터는 힘은 세지만 더 작은 기선이 우리 배를 끌고 가야 했다. 그런데 선금을 받은 그 예인선이 우리 배를 끌지 않고 몰래 떠나버린 것이다.


구이핑에서 첸장강을 따라 약 200㎞ 올라가면 강이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류저우로 가려면 더 험하고 물결이 가파른 류장(유강)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여기서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기선 예인이 불가능해 선원들이 밧줄로 배를 끌고 가는데, 어떤 곳에서는 빤히 보이는 여울 한 곳을 넘는 데 하루 종일 걸리기도 했다. 심지어 밧줄을 바위에 묶은 뒤 뱃머리에 있는 둥근 나무통에 연결하고 여러 사람이 이 원통을 돌려 줄을 감는 식으로 배를 움직이는 곳도 있다. 이렇게 해서 류저우에 도착한 것은 38년 11월30일, 포산을 출발한 지 거의 40여일 뒤였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