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2월 류저우에서 조직된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는 광복군의 전신으로 임시정부의 새 장을 열어가는 주역이었다. 그해 4월4일 중국인들과 헤어지며 찍은 기념사진으로, 앞줄 맨 오른쪽이 필자의 사촌형 김석동씨다.
김자동-임정의 품 안에서 30
앞서 얘기한 대로, 1937년 8월 임시정부 계열의 세 정당은 광복진선으로 연합체를 만들었으나 사무는 따로 봤다. 그러나 창사 때부터 3당 소속 청년 대부분은 합숙을 하면서 한 식구로 움직였다. 류저우에 도착한 이듬해인 39년 2월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가 결성돼 3당 청년들은 통합된 조직을 갖게 됐다. 임정은 이것을 새로운 독립군 조직의 중심으로 삼을 예정이었다.
류저우 시내에 당나라 때의 문인 유종원을 기념하는 류허우공원이 있는데, 광복진선계 청년들의 합숙소가 그 근처에 있었다. 공원은 공기도 좋고 운동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었다. 임정이 류저우에 머무는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공원과 합숙소에 들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류저우에서도 일본군의 공습이 몇 차례 있었다.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면 모두 근교로 피신했다. 류장강 건너편은 산과 가까웠으므로 천연동굴로 피했으며, 시 중심 쪽에 있던 우리는 공동묘지 쪽으로 나갔다. 묘지 사이에 방공호를 파놓아 비행기가 접근하면 그 속으로 들어가게 돼 있었는데, 실제로는 경보가 해제될 때까지 묘지 사이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방공호 속에는 길이가 한 자 넘는 큰 지렁이들이 보일 때도 있었다. 훗날 알게 됐지만 그곳 사람들은 이 지렁이를 별미로 요리해 먹고 있었다.
중국의 전면 항일전이 펼쳐진 지 만 2년이 되어가는 시기였다. 그사이 중국군의 희생은 막대했으며, 상병(상이군인)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발생했다. 정부 외에 이들을 구호하기 위한 민간단체들도 있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큰 조직은 쑨원의 부인 쑹칭링이 이끌던 ‘상병지우’(상이군인의 벗)였다. 청년공작대에서는 3월초 중국 문화단체와 협력해 이 기구를 위해 상이군인의 위문과 모금 연예활동을 벌였다. 3·1절 기념행사에 이어 있었던 이 행사를 위해 청년공작대는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공작대에는 소년부도 두었는데, 나도 또래인 오희옥(오광선의 차녀), 엄기선 등과 함께 참여했다.
행사는 류저우에서 가장 큰 류저우대희원에서 치러졌는데 대성공이었다. 1층 일반석은 매진됐으며, 2층은 상이군인 초대석이었는데, 반일 정서를 고무하는 연극들을 보고 이들은 환호했다. 창사에 있을 때도 무대 위에서 노래·춤·연극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내가 큰 극장의 무대에 선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청년공작대의 소년대원들은 ‘푸른 하늘’ 등 가요를 부르며 춤도 췄다. 나는 중국인 연예단과 합동으로 하는 연극에서 피난민 소년 역을 맡았다. 연극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공작대의 막내둥이 여성대원 오희영이 나의 누나 노릇을 했다. 노래는 우리말로 했으나, 연극은 모두 중국어로 했다. 동북항일유격대를 배경으로 한 <전선의 밤>이란 연극은 전원 우리 청년대원이 출연했지만, 역시 대사는 중국어였다.
주연배우는 김원영이라는 미남이었는데, 그는 그후 중국 항공대 조종사로 활동하다 추락사했다. 이날의 스타는 형 석동이었다. 형은 독창도 하고 합창대의 지휘까지 했다. 그리고 국내에서 작은숙부에게 배운 탭댄스까지 보여줬다. 미소년으로 여자친구들에게 늘 인기가 있는 형이 이날도 인기를 독점한 듯했다.
내가 지금 회장직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에서 2005년 8월 광복 60돌을 맞아 대학생을 주축으로 100여명의 답사단을 조직해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열흘간에 걸쳐 임정 발자취를 답사한 적이 있다. 그때 류저우에 들렀더니, 당시의 연예활동이 보도된 신문이 남아 있었고, 기사를 썼던 기자가 90대 노인이 되어 생존해 있었다. 청년공작대에서 모금활동을 했던 극장은 우리가 떠난 직후 일본군의 폭격으로 완파되어 없어지고 말았다 한다.
이 극장에서는 영화도 상영했는데, 찰리 채플린 주연의 나치 히틀러 풍자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본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포산을 떠날 때 최종 목적지는 충칭이었으며, 류저우는 일시 머무르는 중간 기착지였다. 류저우에서부터 우리는 버스로 충칭 근처까지 가게 되어 있었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이 극장에서는 영화도 상영했는데, 찰리 채플린 주연의 나치 히틀러 풍자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본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포산을 떠날 때 최종 목적지는 충칭이었으며, 류저우는 일시 머무르는 중간 기착지였다. 류저우에서부터 우리는 버스로 충칭 근처까지 가게 되어 있었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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