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진단 이명박 정부 2년] 지방·서울 대학 2곳 대졸자 추적해보니
정규직 취업 30~40%뿐 대부분 비정규직·취업준비
“청년실업 절반 낮추겠다” 이 대통령 공약 실현안돼
정규직 취업 30~40%뿐 대부분 비정규직·취업준비
“청년실업 절반 낮추겠다” 이 대통령 공약 실현안돼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최민오(가명·27)씨는 요즘 서울 신대방삼거리역 근처 고시텔에 산다. 월 35만원짜리다. 4월에 있는 국가직 9급 시험이 그의 목표다. 경기도 양평 집에서 노량진 고시학원을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지난달 아예 집을 나왔다. 아침에 고시원에서 주는 밥과 김치로 대충 식사를 때우고 오후 2시까지는 꼬박 책상에 앉아 공무원 수험서를 파고든다. 이어 밤 10시까지는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다. 2008년 8월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그의 꿈은 카피라이터였다. 강원도의 ㄱ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광고홍보학을 복수전공했다. 광고대행사 대여섯 군데에 원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계속 떨어지다 보니 부모님께 눈치가 보였다. 결국 지난해 5월 공무원인 아버지의 권유로 ‘공시’(공무원 시험)로 방향을 틀었다. 앞으로 2년은 공시에만 매달릴 생각이다. 최씨는 “시험 범위도 방대하고 꼭 붙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부담스럽다. 중소기업은 눈높이에 안 맞고 대기업의 좋은 일자리는 별로 없다 보니, 나처럼 아직 취업 못한 대학 동기들이 꽤 많다”고 말했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청년실업 해소 기자회견이 열려 참가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외환위기땐 50대 큰타격
지난달 청년실업률 9.3%
1997년 외환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연령층이 50대였던 반면,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20대다. 17일 한국고용정보원이 연령대별 고용률 회복 속도를 비교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7년 4분기 59.9%였던 20대 고용률은 2009년 1분기에 57.1%로 2.8%포인트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40~50대의 고용률 하락폭이 각각 1.8%포인트, 1.6%포인트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기업이 신규 채용을 대거 줄이면서 20대가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20대 고용률은 40~50대와 달리 회복 속도도 느리다. 지난해 4분기까지도 20대 고용률은 2년 전보다 1.8%포인트 하락한 상태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같은 기간 50대 고용률은 0.5%포인트 증가했고 40대도 하락폭을 0.8%포인트로 줄였다. <한겨레>가 분석한 두 대학 졸업생 가운데 김은혜씨처럼 우선 비정규직 일자리를 구한 뒤 취업 준비를 하는 사례는 쉽게 볼 수 있다. 정부 관련 재단에서 정책홍보 일을 맡고 있는 강진경(가명·27)씨는 ㄱ대 정외과 졸업생 가운데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5명 가운데 1명이다. 지난달 회사와 계약을 1년 갱신했지만, 1년 뒤에도 재계약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사업운영비가 줄어들면 가장 먼저 해고되는 게 비정규직이다. 여러 군데 인턴생활만 돌고 있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한 시중은행에서 3개월간 인턴을 한 송태식(가명·28, ㄴ대 사회학과 졸)씨는 얼마 전 저축은행 인턴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4대 보험 등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장기간 인턴 쓰는 걸 꺼리는 기업도 있다. 정사원이 될 때까지 인턴근무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턴이나 임시·계약직 취업자의 한달 급여는 대략 100만~150만원 수준이다. 졸업생들은 최근 정부가 고용대책으로 중소기업 취업 지원을 독려하고 있는 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강진경씨는 한 중소기업에서 연봉 1700만원을 제시받고 입사할 수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매달 120만원 받는 거나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6개월간의 인턴근무를 거쳐 육아용품업체의 정규직 사원이 된 박성일(가명·28, ㄴ대 사회학과 졸)씨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입사하지 못하면 결혼도 어렵고 수도권에서 기반을 잡고 살기 힘들다 보니 중소기업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60~70개 기업의 입사 지원에 모두 실패하고 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했다. 기업체 입사를 포기하고 고시원을 택한 최민오씨는 “정부가 청년인턴이나 중소기업 취업을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가 원하는 대책이 아니다. 구인난이 심한 곳에 우리를 팔아버리거나, 청년인턴처럼 땜빵식으로 쓰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입사 경쟁률은 갈수록 치솟는다. 2008년 하반기부터 금융권 대기업 입사 지원을 노렸던 황철호(가명·27, ㄴ대 사회학과 졸)씨는 당시 금융위기로 기업들이 채용 인원을 3분의 1쯤 줄였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200 대 1까지 경쟁률이 올라가는 걸 봤다. 입사 전에 준비해야 할 자격증 개수도 훨씬 많아졌다. ‘스펙’ 상한선만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투자상담사 등 자격증 3개를 취득한 그는 지난해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 증권사 인턴으로 선발됐고, 그중 절반이 탈락하는 최종 평가를 뚫고서야 정사원으로 채용됐다. 황보연 황예랑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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