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발발 1년 뒤인 1938년 10월10일 쌍십절을 맞아 후베이성 우한시의 한커우에서 창립한 조선의용대의 기념사진. 직업혁명가부터 학자, 군인, 여성, 선원, 상인, 학생까지 참여한 중국 관내 최초의 한국인 무장집단이다.
김자동-임정의 품 안에서 40
임시정부는 ‘민국 1년’인 1919년 12월 이미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를 결정했으며, 20년 7월에는 ‘대한광복군총사령부 규정’을 공포했다. 또 임정 군무부 산하에 19년 말부터 ‘임시정부 사관학교’를 개설해 20년 5월 1회 19명, 12월 2회 24명을 배출했으나 2회 졸업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앞서 얘기한 임정 산하의 한국노병회가 22년 상하이에서 결성돼 28년까지 활동했는데, 이 기간에 가장 의미있는 활동은 한인 청년들을 중국 각지의 군관학교에 입교시키는 일이었다. 이는 모두 항일투쟁을 위한 임정 산하의 국군 창설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34년 12월 임정의 위임을 받은 백범은 중국중앙군교 10기 재교생 중심으로 ‘특무대 독립군’이라는 조직을 결성했는데, 이들은 중일전쟁이 터진 뒤 39년 광시성 류저우에서 결성된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의 핵심이 된다.
37년 7월7일 중일전쟁이 터지자 임정에서는 본격적인 군사조직을 계획하는 데 착수했다. 전쟁 발발 1주일 남짓 만인 7월15일, 국무회의는 군무부 산하에 군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다음날 유동열·이청천·이복원·현익철·김학규·안공근 등 6명을 위원으로 선임하여 군무부장 청사 조성환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 무장 군대를 설치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던 까닭에 우리 뜻대로 추진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난징이 위태로워지면서 임정은 후난(호남)성 창사(장사)시로 옮겨갔고 군 창건 작업도 자연히 지연되었다.
한편 중일전쟁이 터지고 임정 참여 단체들이 광복진선을 창설한 직후 민족혁명당 등 임정 외의 항일단체들은 난징에서 조선민족전선연맹(약칭 민족전선)을 결성했다. 이들도 항일무장부대 창설을 모색했는데, 중국 당국의 정책에 발을 맞추기로 결정한 듯하다.
중국 정부는 중일전쟁 개시 직후 예비역 군관 3000명을 장시(강서)성 주장(구강)시 싱쯔(성자)현에 있는 중앙육군군관학교 싱쯔분교에서 재훈련시켜 전쟁에 내보내기로 했다. 이때 중국 정부는 백범과 약산 김원봉에게도 한인 청년을 보내 이곳에서 훈련받도록 제의했다. 약산은 이에 즉시 호응해 한인 청년 90여명을 모집해 보냈다.
싱쯔분교 특별훈련반 제4중대로 편성된 한인반은 37년 12월1일 입교식을 거행했다. 군사훈련은 중국군과 함께 배웠으나 중국 학생에게는 필수적인 삼민주의 강의는 받지 않았다. 대신 중국 군관(상교=대령)인 왕웅(김홍일)이 중국혁명사를 가르쳤으며, 민족전선에서 파견된 김두봉(백연)·윤세주(석정)·한빈(왕지연·한미하일) 등은 교관으로서 국어·국사·독립운동사와 정치경제학 등을 교육했다.
전세가 불리해져 일본군이 난징까지 점령하게 되자 싱쯔분교는 훈련 개시 한 달도 못 돼 후방으로 이전하게 되고, 중국 학생 1000명은 시안으로, 2000명은 후베이(호북)성 장링(강릉)현으로 옮겨갔다. 한인반도 장링으로 함께 이전돼, 38년 5월24일 그곳에서 졸업식을 했다. 약산과 해공 신익희 등 민족전선 지도자 다수가 여기에 참석했다.
38년 7월7일 중일전쟁 발발 1돌을 계기로 민족전선에서는 중국 군사위원회에 조선의용군을 조직해 중국 각 전구에 배속시켜 항일전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 장제스 위원장은 모든 한인 항일세력을 참여시키는 것을 전제로 이를 재가했다. 동시에 규모로 보아 조선의용대로 명칭을 정할 것과, 배속된 대원들은 대적 선전과 포로 심문 등 비전투 임무만을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민족전선 쪽에서는 광복진선과의 합작을 제의했으며, 동시에 조선민족혁명당에서 탈퇴해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조선청년전위동맹(약칭 전위동맹)의 합류도 종용했다. 광복진선 쪽은 독자적 군대 창설을 구상하고 있었으므로 호응하지 않았으나, 전위동맹은 약산의 권유를 받아들여 조선의용대 창설에 참여했다. 싱쯔분교 출신은 거의 다 조선의용대에 합류했다.
조선의용대는 38년 10월10일 중국의 신해혁명 제27주년 기념일을 맞이해 후베이성 한커우시에서 결성식을 거행했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조선의용대는 38년 10월10일 중국의 신해혁명 제27주년 기념일을 맞이해 후베이성 한커우시에서 결성식을 거행했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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