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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절 ‘유골예치장’ 명단, 징용 조선인 신원 ‘실마리’

등록 2010-03-09 21:03

아소 가문이 운영했던 산나이 탄광 근처에 있는 절 고쇼지의 유골예치장. 맨 왼쪽에 조선인 광부들이 아소 저택 방화 모의를 했다는 기술이 보인다.
아소 가문이 운영했던 산나이 탄광 근처에 있는 절 고쇼지의 유골예치장. 맨 왼쪽에 조선인 광부들이 아소 저택 방화 모의를 했다는 기술이 보인다.
[2010 특별기획 성찰과 도전] 경술국치 100년 새로운 100년
<2부> 잊혀진 기억 아물지 않은 상처 ⑥ 유골 신원 단서 담긴 사찰 문서





결혼전날 탄광사고로 사망
18살 무연고희생자 등 이름
과거장 등 절 문서에 빼곡
일본인 광부 구하려다
참변당한 조선인도 기재
한-일 불교 협력활동 필요

일본 규슈 지쿠호 지역의 중심도시는 이즈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수십년간 탄광 도시로 번성했던 이곳에는 아소 가문의 웅장한 저택이 있다. 아소 다로 전 총리의 3, 4대 선조들이 탄광 개발로 모은 돈으로 철도·시멘트·은행·병원 등에 사업을 확장해 지역의 영주로 군림했던 자취라고 할 수 있다. 이 저택이 분노한 조선인 노동자들의 손에 불타 없어질 뻔했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아소 저택 습격을 모의했다는 기록은 일제 때 사상경찰인 특고 문서나 아소 계열 기업의 자료가 아니라, 한 사찰의 문서에 남아 있다. 아소 가문이 지쿠호 일원에서 운영하던 7개 탄광의 하나인 산나이 탄광의 입구에 고쇼지라는 절이 있다. <한겨레>가 입수한 고쇼지의 유골예치장에 아소 저택 방화계획이 언급돼 있다. “쇼와 7년(1932년) 여름 심야 본당에서 아소 본저(本邸) 방화 모의를 하다”라고 써 있다. 다음에 “방화미수사건, 약 15~16명이 참가했고 주지가 사전에 막으려 설득했다”는 부분이 이어진다.

방화 모의는 사실일까? 필적의 주인공은 당시 주지였던 후지오카 세이준이다. 그의 기재는 당시의 정황에 부합된다. 1929년 뉴욕 증시의 대폭락 이후 경기불황이 계속되자 지쿠호 지역의 탄광도 된서리를 맞았다. 재벌계의 탄광회사에 맞서 저임금과 하청고용으로 버티던 아소 가문은 일부 갱을 폐쇄하고 고령자와 조선인부터 해고하기 시작했다. 조선인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던 일본석탄갱부조합과 처우 개선을 바라는 조선인 광부들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1932년 8월 이즈카 일대에서 총파업이 벌어졌다. 경찰, 청년단, 조선인 노무담당 등이 파업 분쇄를 위해 폭력을 휘둘렀지만 조선인 노동자들은 신사·사찰 등에 흩어져 3주간 투쟁을 계속했다.

유골예치장에는 탄광에서 사고로 죽은 무연고 희생자들의 명단이 빼곡히 실려 있다. 서식에 맞춰 사망연월일·법명·속명(본명)·연령·사인·비고(참조사항) 순으로 적도록 돼 있다. 희생자 명단을 보면 조선인들의 이름이 확 눈에 띈다. 일본 이름이 병기돼 있거나 일본 이름만 기재된 경우도 있다. 연령대는 10대부터 40대까지 걸쳐 있다. 사인은 갱내 즉사나 순직으로 기재된 것이 많다. 순직이라고 해야 사고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37년 9월29일 갱내 사고로 18살에 숨진 노갑성은 어린아이들을 제외하면 명단에서 최연소자다. 그의 칸 밖에는 ‘결혼식 전야’라고 따로 적혀 있다. 김제군 백구면 출신으로 혼인식을 올리기 바로 전날 비극적 죽음을 당한 조선 총각에 대한 후지오카 주지의 착잡한 심정이 담긴 듯하다. 예치장에 반도 출신 보국대 소속으로 일본 이름만 기재돼 있던 한 조선인은 일본 시민단체와 강제동원진상규명위의 노력으로 본명이 밝혀졌다. 당시 신문 보도와 화장인허증을 조사한 결과, 최영식(28)은 충남 서산 출신으로 43년 9월3일 낙반사고로 깔린 일본인 광부를 구하려다 참변을 당했다.

유골예치장에는 이렇게 여러 정보가 있다. 더 상세한 정보가 담긴 사찰문서로는 과거장이 있다. 17세기 초엽부터 일본의 모든 절에 비치된 과거장에는 고인의 계명·속명·사망연월일·향년 등이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절에 따라서는 사인·신분·생전의 행적 등이 포함되고 여러 대에 걸친 가문의 기록도 나온다. 요즘 말로 하면 개인정보의 데이터베이스라고 할 정도다. 강제연행의 실태 파악과 희생자 검증과 관련해 과거장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패전 직후 관련 문서를 소각하거나 은닉했기 때문이다. 김광열 같은 일부 재일동포 연구자들은 수십년 전부터 지쿠호 지역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주지들에게 과거장 열람을 간청했다. 어렵게 수집된 정보는 몇 권의 연구서로 나왔다.


하지만 현재 과거장 열람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부락민 차별이라는 일본 내부사정 때문에, 개인 사생활을 보호한다는 명분에서 엄격히 금지된다. 부락민은 백정 같은 천민 등을 가리키며, 이전에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로 비인(非人)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신입사원의 신원조사를 할 때나 결혼을 앞두고 상대방 집안을 알아보기 위해 흥신소에 과거장 조사를 의뢰하는 일이 예전에 많았다고 한다.

조선인 희생자의 유골 문제와 과거장 열람의 상관관계에 대한 인식은 일본의 종단이나 사찰별로 차이가 크다. 그 격차를 해소하려면 양국 불교단체의 교류와 신뢰 회복이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는 관심 있는 승려가 개별적 접촉을 하는 정도여서 종단 차원의 관심 표명과 체계적 활동이 아쉽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즈카/글·사진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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