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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패전도 승전으로…기막힌 ‘전시 보도통제’ / 김자동

등록 2010-03-14 18:58

1942년 10월 충칭에서 구성된 임시정부의 제34차 임시의정원 기념사진. 좌우를 망라한 통합의회를 구성했다. 앞줄 왼쪽부터 유동열 박찬익 조성환 홍진 김구 최동오 조완구 김원봉, 둘쨋줄 둘째부터 윤증우 차이석 조소앙 방순희 이복원 김의한 심광식 유진동, 셋쨋줄 마초군 고운기 유자명 양우조 엄항섭 김규광(성숙) (한 사람 건너) 김재호 (한 사람 건너) 신익희 박건웅, 넷쨋줄 다섯째부터 유림 이상정 (한 사람 건너) 김관오 이준식 이상만 이종희, 맨 뒷줄 신환 조경한 문일민 김상덕 강홍대.
1942년 10월 충칭에서 구성된 임시정부의 제34차 임시의정원 기념사진. 좌우를 망라한 통합의회를 구성했다. 앞줄 왼쪽부터 유동열 박찬익 조성환 홍진 김구 최동오 조완구 김원봉, 둘쨋줄 둘째부터 윤증우 차이석 조소앙 방순희 이복원 김의한 심광식 유진동, 셋쨋줄 마초군 고운기 유자명 양우조 엄항섭 김규광(성숙) (한 사람 건너) 김재호 (한 사람 건너) 신익희 박건웅, 넷쨋줄 다섯째부터 유림 이상정 (한 사람 건너) 김관오 이준식 이상만 이종희, 맨 뒷줄 신환 조경한 문일민 김상덕 강홍대.
김자동-임정의 품 안에서 49
전쟁 상황일 때 대부분의 언론은 전황에 관한 한 자국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상례다. 따라서 자국의 승리는 과장되는 사례가 많고, 피해는 줄여서 보도하는 것이 보통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서도 전황 보도가 철저히 통제되어, 예를 들어 1942년 일본 해군이 궤멸상태였던 미드웨이 해전도 그 패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엉터리 보도의 극단적인 예로, 오래전 어디에선가 읽었던 웃지 못할 이야기도 떠오른다. 제2차 대전 직전 일본 사람들이 외국으로 대규모 이민을 갔다. 남미, 특히 브라질에 많이 이주했는데, 브라질 제2도시인 상파울루에는 지금도 상당히 큰 일본인 거주지역이 있다. 이곳에서는 일본어 신문도 발행되고 있었는데, 전세가 일본에 유리했던 전쟁 초기 이 신문은 대본영의 발표를 늘 크게 보도했다. 전세가 역전되어 일본군이 패퇴를 거듭해도 이 신문은 정반대의 엉터리 뉴스들을 조작해 일본군이 계속 승리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급기야 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을 했을 때, 이 신문은 마지막으로 기상천외한 오보를 했다. 미국이 항복해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당연히 상파울루의 일본인들은 거리로 나와 폭죽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브라질 사람들이 일본인들의 이런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 당시 일본인 중에도 일본의 패전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나 다른 동포들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 때문에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지냈던 모양이다.

진실을 아는 소수가 그것을 밝히지 못하고 지내는 일이 이 땅에서도 있었던 것을 우리도 보아왔다. 예를 들면 1980년대 중반까지도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항일전의 영도자였다고 하는 주장은 완전히 조작된 것으로 믿고 있었다. 나는 중국에서 환국했을 때 ‘이북의 김일성은 가짜다’라는 말을 듣고 동북지방 출신 어른들에게 물어본 일이 있어 그가 실재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까지는 그런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군사독재 치하에서는 그런 말을 함부로 꺼내지도 못했던 것이다.

43년은 연합국의 승전 행진이 계속된 1년이었다. 북아프리카에서는 5월에 독일군이 완전 투항했으며, 가을에 이르러 소련 경내의 독일군도 일패도주했다. 중국의 전시 수도 충칭에서도 연일 승전의 보도를 읽을 수 있었다. 아버지(김의한)는 이때 임시의정원 의원으로서 선전과 외교 두 개 상임위원회의 위원이었으며, 한국독립당의 조직부 주임도 겸임하고 있어 상당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해 여름방학 때부터 우리 가족은 충칭 시내에서 자리를 잡았으며, 9월에는 내 학업 때문에 투차오로 돌아왔으므로 양쪽에 집을 두고 지낸 것이다. 또 그해부터는 일본 항공기들의 충칭 폭격도 끊겼다. 중국에 기지를 둔 미 육군 항공대에 제공권을 완전히 빼앗긴 것이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그 무렵 우리 가족 셋은 충칭 시내 화평로에 있는 한독당사에 딸린 방에서 살게 됐다. 한독당은 창당 이래 처음으로 당사를 갖게 됐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땅에 연립식 건물을 지었는데, 그중 2채를 우리가 세내어 사용했다. 한 채는 한독당이 썼는데, 아래층에는 제법 넓은 회의실이 있었다. 2층 3분의 2 정도는 사무실로 사용됐으며, 그 3분의 1이 우리가 사는 방이었다. 여전히 단칸방에서 우리 세 식구가 기거하고, 한쪽 구석은 부엌과 식당으로 썼다. 밖에 사무실이 있었으므로 책상은 따로 필요치 않았다.

옆집은 임시의정원에서 썼다. 같은 구조로 아래층은 회의실이었다. 2층도 우리 쪽과 같은 구조였는데, 여기서 임시의정원 의장 만호 홍진 선생과 백강 조경한(안훈) 두 분이 자취를 했다. 백강은 오랜 자취생활에 익숙해서 살림을 잘했다 한다.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나은 반찬을 만들면 두 분에게도 보내드렸다. 45년 초에는 임정에서 제법 큰 건물로 이전하게 되자 의정원도 사무실을 그쪽으로 옮겨갔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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