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오·칸·뉴욕 페스티벌 수상
착한사람에 힘 주려 공익광고
‘빼는 게 더하는 것’ 깨달음
나눔-한겨레 정신 표현할 것
<한겨레>의 ‘2010 나눔꽃 캠페인’에서 ‘나눔꽃 1호’로 나선 이제석(29)씨. <한겨레>에 ‘나눔꽃 광고’를 제작하며 재능을 이웃과 나누는 그는 세계 유수의 광고상을 휩쓸고 있는 신예 광고기획자다. 광고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클리오 광고제, 유럽 최고의 칸 국제광고제, 그리고 미국의 뉴욕 페스티벌 등 3대 광고제를 휩쓸었다.
한창 ‘주가’가 올랐는데도 그는 다른 길을 걷는다. 축적하는 광고가 아닌 나누는 광고, 유혹하는 광고가 아닌 성찰하는 광고, 곧 ‘나쁜 광고’가 아니라 ‘착한 광고’를 위해 머리를 싸맨다고 말한다.
이씨는 여러 기부단체의 광고기획도 도맡아 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이나 시민단체의 착한 광고를 만드는 데도 열심이다. (아래 이제석씨 작품 참조)
아름다운가게의 초콜릿 광고. 공정무역 제품인 만큼 정직함에 초점을 맞췄다. 오른쪽은 천장 형광등 주변에 포스터를 부착해 하얀 이를 표현한 치위생용품 광고.
-최근 한국에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차리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요.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4.5점 만점에 4.47점으로 대학을 수석 졸업했죠. 그런데 토익점수가 없고 광고공모전 수상 경력도 없는 지방대 출신이 국내 광고사엔 취직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간판 디자인을 했어요. 세계 최고의 간판장이가 되겠다면서요. 30만원짜리 간판을 만들 때도 전략기획서를 썼죠. 그런데 누가 ‘10만원이면 하겠네’라고 하더군요. 속상했지만 그 말이 맞았어요. 그래서 더 공부를 하기로 했죠.”
2006년 8월 이씨는 미국 뉴욕으로 갔다. 쥐와 빈대가 사는 저소득층 주택가에서 살면서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를 마쳤다. 지난해 세계 유수의 광고전에서 수상한 것도 미국에 있을 때였다.
국제적십자사의 물부족 광고. ‘마을 주민 모두가 일년을 먹을 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라는 카피가 적혀 있다.
-미국 생활이 도움이 됐나요?
“내가 열정을 갖고 작업할 때, 코치(교수)가 내 열정을 발견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어요. 학부 시절부터 미국의 주요 광고사에서 일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동양인으로서 ‘유리천정’이 보였어요. 어차피 광고사에서 오래 일할 생각은 없었고 공익광고에 뜻이 있어서 뛰쳐나왔죠.”
-왜 공익광고를 고집하죠?
“무엇보다 착한 사람들과 일해서 좋아요. 착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줘 강한 사람과 싸우도록 돕고 싶어요. 그래서 <한겨레>와 일하는 거예요. 착한 사람이 득세해야 세상이 좋아지잖아요? 물론 국내 신문에 작품을 고정적으로 싣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한국의 신문 관행에서 광고 지면을 특정인에게 할애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씨는 최소한의 제작비만 받고 나눔꽃 광고 제작을 수락했다.
물부족 현상을 호소하기 위해 만든 광고. 빈곤층과 부유층이 쇼핑백과 사람을 통해 상징적으로 대비된다.
-일종의 재능나눔이죠?
“지금도 적십자사, 사랑의열매, 월드비전 등의 광고기획을 돕습니다. 어린이 11명을 후원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풀뿌리 시민운동단체를 돕고 싶어요. 내 재능을 나누는 거죠.”
-광고는 상품을 많이 팔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요?
“나 스스로에게 ‘내가 광고를 왜 하나’라고 수천 번 물었고, 결국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라는 결론을 내렸죠. 행복을 유혹하는 광고는 많지만 행복하게 해주는 광고는 적어요. 좋은 아파트에서 산다느니, 이 옷을 입으면 예뻐진다느니…. 끊임없이 소비를 조장하는 광고는 없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인 빈곤감과 열등감을 주잖아요. 소수를 위한 광고 말고 다수를 위한 광고를 하고 싶어요.”
그의 광고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다. 그의 대표작인 ‘반전 광고’는 보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병사가 총을 겨누고 있다. 이 모습을 담은 포스터를 전봇대에 둥글게 붙이면 총구는 다시 그 병사의 뒤통수를 겨눈다. 카피(문구)는 ‘뿌린 대로 거둔다’다. 아름다운가게가 낸 공정무역 초콜릿 광고도 이씨 작품답다. ‘생긴 건 이래도 그럭저럭 먹을 만 하다-초코렛.’, ‘자기 전에 많이 먹지 마라 이빨 썩는다-초코렛.’.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예요. 브랜드 정체성까지 같이 만들었죠. 공정무역으로 만든 초콜릿의 ‘정직함’ 같은 거 말이예요. 초콜릿에 대해선 부정적인 생각이 많잖아요. 그걸 정직하게 담았어요.”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공익광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의 나눔꽃 광고는 <한겨레>에 이미 세 차례 게재됐다. 첫 회가 지난 설날 연휴에 나온 ‘그림의 떡’ 광고다. 떡국 옆에 ‘설날 연휴에 집집마다 끓여먹는 떡국 한 그릇이 누군가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라는 카피가 있다. 광고장이의 직감이 통했던 걸까. 그날 신문에는 떡국 한 그릇으로 설날을 버티는 빈곤 가정의 기사가 실렸다.
“우연의 일치죠. 광고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빼는 게 더하는 것이다’라는 거예요. 나눔꽃 캠페인의 철학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빼는 게, 결국 사회에 더하는 거니까요. 나눔의 정신과 <한겨레>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광고를 만들 겁니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