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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한인 기독교회관 지어준 스웨덴 루터교회 / 김자동

등록 2010-03-22 18:29

1940년대 초부터 광복 이후 귀국 때까지 필자와 임시정부 가족들이 살던 충칭 인근 투차오의 한인촌 터. 2005년 봄 임정 대장정 순례단이 답사했을 때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1940년대 초부터 광복 이후 귀국 때까지 필자와 임시정부 가족들이 살던 충칭 인근 투차오의 한인촌 터. 2005년 봄 임정 대장정 순례단이 답사했을 때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김자동-임정의 품 안에서 55




1941년 초 임시정부 가족이 충칭으로 옮겨오기 직전 투차오에서 서남쪽으로 2㎞쯤 되는 둥칸 마을의 언덕 위에 지은 집에서 살게 된 것은 앞서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던 중 43년 우리가 사는 집에서 약 300m 떨어진, 좀더 높은 언덕 위에 멋있는 집 한 채가 들어섰다. 이것은 스웨덴의 루터교회에서 우리 한인사회에 준 선물이었다. 2차대전 때 중립국인 스웨덴에서는 항일투쟁 단체인 임정에 정식으로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원조를 주어도 추축국 쪽에서 알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문제가 없겠으나, 이들은 아마 국제법은 그대로 지키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기독교청년회관’(YMCA)이라고 이름 붙여 우리에게 선물한 것이다.

1층인 이 건물의 앞쪽에는 십자가가 달린 탑이 있으며, 200~300명이 예배를 볼 수 있는 강당이 있었다. 이것을 우리는 실제로 교회로 사용해 일요일에는 몇 안 되는 교인이나마 모여 예배를 봤다. 그러나 이 강당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때가 더 많았으며, 루터교회에서도 선교의 목적보다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쓰도록 이 건물을 지어준 것이다. 교회당 바로 뒤편에는 북향으로 작은 방 두 개가 있어 사무실 혹은 숙소로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찾아오는 손님들이 여기에서 묵고 가는 일도 있었다.

44년 초에는 청두(성도)에서 대학교 영어교수로 있다가 이곳으로 오게 된 김윤택이란 멋쟁이 부인이 얼마 동안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지내기도 했다. 중국인과 결혼했으나 이혼한 이분은 중국어와 영어를 다 완벽하게 구사했다. 김윤택은 30대 중반이었는데, 광복군 총사령부의 정령(대령에 해당)대우 비서로 부임하기로 하고 우선 투차오에 잠시 와 있었던 것이다. 이 두 방과 등을 댄 남향에는 제법 큰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탁구대를 놓았으므로 나는 매일 여기서 탁구를 즐길 수 있었다. 그 뒤쪽에는 상당히 넓은 폭(앞쪽의 예배당 넓이와 같음)에 훨씬 더 긴 방이 있어 우리가 적당히 칸막이를 해 쓸 수 있었다. 이 구역은 45년 초부터 광복군에서 대원 숙소로 사용하였으며, 칸을 막아 뒤쪽에는 제법 큰 식당과 주방도 만들었다.

투차오에는 가끔 진객들도 찾아왔는데, 그중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정환범이란 이도 있었다. 지금은 그가 케임브리지대학 출신 박사라는 주장이 그리 믿어지지 않으나, 그때 다들 그를 ‘박사’라고 불렀으므로 그냥 정 박사라고 칭하겠다. 아버지와는 20년대 초 상하이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고 하며, 나는 그를 ‘정 박사 아저씨’라고 불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정부에서 많은 중국 학생들을 프랑스로 데려다 취업시키고 학교를 다니게 했을 때 정 박사도 이에 응시해 프랑스로 간 것은 내 부모도 잘 알고 있었다 한다. 정 박사는 파리에서 공부를 마치고는 영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해 박사까지 됐다고 한다. 그리고 홍콩을 거쳐 30년대 말에 상하이로 귀환, 그곳 프랑스 조계 안에 있다가 국민당 지하조직과 접선이 되어 충칭까지 온 것이다. 임시정부 주변에는 20년 전 상하이에서 그를 알았던 사람이 많았으므로 그가 온 것을 크게 반겼다 한다. 그뿐만 아니라 조소앙 외무부장은 주석에게 말해 그를 외무부 차장으로 영입했다. 임정의 고관이 된 셈인데 그때 임정에는 차장이 없는 부서가 많았다. 정 박사는 그 이후에도 투차오에 자주 들렀는데 그것은 김윤택 여사를 만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44년 봄 연합군은 각 전선에서 주도권을 장악했다. 소련군은 이제 남부전선으로부터 반격에 나서서 이미 우크라이나의 대부분을 탈환했다. 43년 여름 이탈리아 남부에 상륙한 연합군은 44년 5월에는 로마 이남의 대부분 지역을 해방시켰다. 태평양전선에서는 43년 여름 북부의 알류샨열도에서 일본군을 완전히 쫓아냈다. 중태평양에서도 뉴기니섬 전체와 캐롤라인제도를 탈환한 미군이 6월에는 사이판섬까지 점령했다. 버마에서도 인도에 침입한 일본군과 윈난성에 진입한 일본군이 모두 반격에 부딪혔으며, 북단을 가로지르는 중-미 연합군도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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