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스탈린은 얄타회담 합의에 따라 일제 패망 직전인 1945년 8월8일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이어 8월21일 소련군이 북한 원산항에 상륙하고 있다.
김자동-임정의 품 안에서 70
1940년 말 선거에서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3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 미국에는 3선을 금지하는 법률적 제한은 없었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3선 출마를 사양한 이래 아무도 3선에 도전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루스벨트는 3선에 이어 44년 다시 4선에 출마했다. 전시라는 특별한 상황이었으나 민주당 안에서도 반발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 미국에서 부통령 출마자는 대통령 후보가 지명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루스벨트는 이때 4선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양보로서 부통령 후보 지명권을 포기하고 이를 전당대회의 경선에 맡겼다. 당시 헨리 애거드 월리스 부통령은 루스벨트의 외교노선을 적극 지지했는데, 남부 출신 보수파들은 월리스의 진보적 성향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지명권 포기는 사실상 해리 트루먼의 부통령 후보 당선을 전제로 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트루먼은 결국 부통령에 당선됐다. 트루먼은 부통령이 되기 전 상원 국방특별조사위원장이란 막강한 자리에 있었다. 트루먼은 이 위원회에서 군수산업과 관련한 독직 및 낭비 등을 폭로해 그의 청렴성 부각과 더불어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동시에 이권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되었다. 한편 그는 국제문제에 대해서는 깊은 지식이 없는 반면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막연한 위구심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루스벨트의 죽음과 함께 소련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트루먼의 대통령직 승계는 루스벨트가 희망했던 미-소 협조에 의한 전후 질서를 단숨에 사라지게 했다.
45년 초까지는 원자탄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편 미 군사정보당국은 일본의 저항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군이 일본을 항복시키는 데는 독일이 완전 패망한 뒤에도 18개월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보았으며, 그러는 동안 미군 사망자가 100만명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일본 본토 평정 뒤에도 만주지역의 막강한 관동군과 중국 동남부에서 후퇴하는 남방군이 합세해 한반도와 만주 및 중국 화북지방 일부를 근거로 다시 장기전을 펼칠 가능성도 걱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때 관동군 상당수는 이미 다른 전선으로 빠져나가 전투력이 크게 저하된 상태인 것을 미국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대륙에는 국민정부 휘하 100만명 이상의 중앙군이 있었으나 전투력은 믿을 수 없었다. 미국은 장제스 총통에게 중국군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미국 지휘하에 90개사로 정예화시키는 재훈련 계획을 제시했으나 장제스는 이에 미온적이었다. 결국 미군의 희생을 줄이는 것은 소련군을 대일전에 끌어들이는 길뿐이라고 미국은 판단하게 된 것이다.
얄타회담에서 루스벨트는 소련이 일본 공격 참가를 조건으로 뭐든 대가를 요구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소련의 스탈린도 미국의 요청을 미리 예측했던 것이 분명하고, 요구할 대가를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탈린은 자신은 미국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돕고 싶지만 소련 인민의 동의를 받기 위해서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솔직히 말했다. 결국 소련은 제정러시아가 만주에서 가졌던 기득권의 회복을 요구했다. 중동철도의 소유권과 다롄·뤼순항의 조차권을 요구한 것이다. 그 대가로 소련은 만주에 대한 중국의 완전한 주권을 인정하며, 중국 국민정부와 친선동맹을 맺어 장제스 총통의 국민당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그리고 스탈린은 독일이 패망한 뒤 소련군을 대일전선으로 이동시키는 데 적어도 3개월은 걸릴 것이라는 시간표까지 제시했다.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인 45년 4월30일, 히틀러는 그의 정부 에바 브라운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직후 동반자살했다. 그리고 전쟁은 5월2일 정식으로 끝났다. 유럽전쟁이 거의 결말에 이르자 소련은 4월5일 일본에 불가침조약의 폐기를 일방적으로 통고했다. 그러고는 얄타에서 약속한 기일에 맞추어 8월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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