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는 올여름 학생과 교직원들이 함께 아이티로 지진참사 봉사활동을 나갈 계획이다. 채수일 총장은 “대학마다 글로벌 리더십을 구두선처럼 외치지만 모두가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는 없다. 한신은 우리 지역사회는 물론 세계의 분쟁지역, 재난지역에 사랑과 평화를 심는 ‘글로컬 서번트십’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개교 70주년 한신대 채수일 총장
한신대학교는 전신이 한국신학대학이다. 1940년 조선신학교로 출범하여 1951년 한국신학대학이 된 우리나라 진보 신학의 모태이자 요람이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수많은 ‘한신인’들이 반체제 투쟁에 헌신해 한국 민주화운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박정희 정권은 이런 한신대를 미워해 캠퍼스를 지금의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으로 쫓아내다시피 이전시켰고 2년 동안 신학생 모집을 금지하기도 했다. 그 한신대가 개교 70돌을 맞았다. 서울 수유동에 있는 기존의 신학캠퍼스와 오산의 일반캠퍼스 두 곳을 거점으로 1980년 종합대학으로 재출범한 지는 꼭 30년이 되었다. 개교 70년, 종합화 30년을 맞은 이 학교의 역사와 미래에는 어쩌면 한국의 진보세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암시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산 캠퍼스를 찾아 채수일 총장을 만났다. 한 가지라도 더 한신대를 알리려는 채 총장의 열정에도 진보 신학에 기초한 한신의 인간적인 학풍이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한신대는 16일 개교 70주년 기념식을 시작으로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70주년 기념 주제는 ‘더불어 가는 실천지성 한신 역사의 새로운 도약’. -우선 개교 70주년을 축하한다. 한신대는 한국 사회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해왔는가? “한신대 70년의 역사는 교회와 민족과 함께 걸어온 역사입니다. 한신은 교권과 근본주의가 지배하던 당시 상황에서 학문적이고 비판적인 신학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한국 교회의 성숙한 성장에 기여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 신학에 근거하여, 1960년대 한일협정 반대, 1970년대 개발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와 인권운동, 1980년대 평화통일운동, 1990년대 생명살림 운동에 앞장섬으로써 역사의 화살촉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 기독교 신학에서 한신대가 차지하는 위치는? “한국 교회의 병폐 가운데 하나는 ‘반지성주의’와 ‘성장 지상주의’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분열되어 있고, 천민자본주의적 시장논리에 사로잡혀 있지요. 그러나 한신 신학은 학문적 대화에 열려 있고,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세계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컬 정신을 담은 신학운동이었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을 기반으로 도시산업선교, 빈민 선교, 농민 선교 등 소외된 이웃과 민중의 고통을 함께 나눔으로써 선교의 지평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전통문화와 이웃 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와 대화의 자세를 견지해 옴으로써 배타적이고 공격적이고 심지어는 제국주의적인 선교시각을 수정하는 데도 기여했습니다. 한국의 신학계가 수입신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한신은 ‘민중신학’의 산실이 되었고, ‘민중신학’을 세계의 신학으로 만들어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신대의 70년 역사 중 특히 자랑할 만한 것은? 또 고난의 시기가 있었다면?
“한신은 지난 70년대와 80년대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참여함으로써 고난을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제약은 물론 1980년 종합대학이 되면서 2년 동안 신학과는 학생 모집을 금지당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제적당하고 투옥당했습니다. 교수들마저 탄압받던 시대에 한신의 교수들은 학생들과 함께 삭발단식 투쟁을 했고, 마침내 해직당하기도 했습니다. 교수와 학생이 함께 투쟁하고 함께 고난받은 경험은 한신의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밥을 나누면 모두가 배부르게 되고, 고난을 나누면 강해진다’는 옛말이 있지만, 한신은 고난을 함께 나눔으로써 그 어느 대학 공동체보다 강한 결속력과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70~80년대 민주화 등 현실참여 자부심
시장에 대항할 ‘새로운 가치’ 창출 노력 -한신이 배출한 인물 중 한국 사회의 성장에 기여한 분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어떤 분들을 꼽을 수 있을까? “노석 김대현(1876~1940, 당시 승동교회 장로로 거금 25만달러를 쾌척해 학교 설립의 초석을 놓음)과 한국인에 의한 신학 교육의 기치를 든 만우 송창근(1898~납북, 제4대 교장), 장공 김재준(1901~1987, 제6대 학장, 한국기독교장로회 창립 주도)을 먼저 꼽아야겠지요. 졸업생으로는 광복군 출신으로 박정희 군사독재와 정면으로 맞섰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1918~1975, <사상계> 발행), 70~80년대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최선두에 섰던 늦봄 문익환(1918~1994) 목사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교수로는 70~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 젊은이들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민중신학자 심원 안병무(1922~1996), 죽재 서남동(1918~1984) 교수, 그리고 한국크리스챤아카데미를 통해 젊은이들의 사회의식화 교육과 종교간 대화 운동을 주도한 여해 강원용(1917~2006) 목사도 빼놓을 수 없는 분들입니다.” -학교 개황을 간략히 소개해 달라. “한신은 기독교장로회 소속이나, 대학 운영의 자율성은 최대한 존중되고 있습니다. 현재 6개 단과대학에 23개 학과, 3개의 학부, 5000명의 재학생, 150여명의 교수와 120여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 대만 등에 있는 대학들과 파트너십을 나누고 있는데, 앞으로는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이른바 ‘제3세계’와의 교류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70주년을 계기로 ‘진보대학으로서의 대학 정체성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다짐이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한신의 진보성은 역사의식과 현실참여에서 돋보였는데, 민주화와 인권운동, 평화통일운동, 생명운동에서 구체화되었습니다. 지금은 세계가 훨씬 더 복잡해졌습니다. 기후변화, 종교적·군사적 갈등의 심화, 경제위기와 양극화, 기술과학의 비약적 발전 등 인류가 대응해야 할 도전들이 급진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시대의 도전을 체제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의 대안적 가치, 곧 지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가치를 모색하고 개인적·사회적 차원에서 실천하는 일이 우리 시대의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가는 실천 지성인’을 교육 방향으로 삼고 있다. 어떤 모습인가? “한신은 지금까지 다른 누구하고도, 다른 어떤 대학하고도 경쟁해오지 않았습니다. 한신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우리 자신과 역사의 미래와만 경쟁할 것입니다. ‘더불어 가는 실천 지성’은 이웃을 경쟁의 대상으로 보도록 강요하는 현실에서 배려와 협동, 소통과 참여, 도전과 창조의 정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지성을 의미합니다.” -요즘 대학 같지 않다.(웃음) 독특한 ‘한신의 가치’를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기 바란다. “한신은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 용기 있고 상상력이 넘치는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데 더하여, 소통과 공동체적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태도, 위험을 감수하고 개척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길러주려 합니다. 자신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바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되는 것이 한신이 지향하는 한신인입니다.” -그게 곧 한신대의 교육 목표인가?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대학사회도 ‘시장근본주의’ 가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만 평가되기 때문에, 사회는 물론 대학까지 서열화·양극화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를 오직 그 쓸모에 의해서만 평가하기 때문에 오늘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가족, 가난한 사람들,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입니다. 저는 시장근본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의 주류가치에 대항하여 새로운 대안가치를 만들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오늘의 한신의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취업은 가장 현실적인 과제입니다. 직업은 생활의 근거이자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의 직업세계가 급변하고 있고, 또 직업에 대한 의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기업, 미래 사회가 요청하는 인물은 전문적 역량과 창조성, 자기 변화에의 열정과 책임적 참여의식을 가진 인물일 것입니다. 이런 인물을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근본가치교육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저는 폭넓은 의미에서 인문학적 교양교육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과정에서 경쟁이 없을 수는 없으나, 교육목적을 경쟁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을 이겨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배려와 협동의 파트너로 이해하도록 돕는 데 교육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글로벌 사회’가 차별과 양극화의 극대화가 아니라, 공생의 관계망이 되어야 인류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글로벌 리더십’보다 ‘글로컬 서번트십’이야말로 한신이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기후·군사갈등·경제양극화 ‘세계적 도전’
현 체제선 역부족…진보세력이 기여해야 -한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구체적인 학교발전계획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학 특성화를 주요 발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어떻게 특성화한다는 뜻인가? “저는 미래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풍부한 인문학적 창의성 위에 전문적 역량을 갖춘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교양과 인성교육, 고전공부, 글쓰기와 말하기, 봉사 등이 교육의 형식과 내용에 모두 구현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유교양인’, ‘르네상스적 인간상’의 실현을 특성화의 목표로 삼고자 합니다. ‘평화와 공공성’이란 의제도 매우 중요한 교육 과제입니다. 공공의식을 강화하고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래로부터의 협의와 합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진보포럼’, ‘공공성 이니셔티브’ 등 교직원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여러 운동체들을 도우려고 합니다. 한신이 가진 또다른 잠재력은 사회복지, 재활, 특수체육학과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장애우와 노인 문제, 인간복지가 갈수록 중요하게 대두될 것에 대비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한신이 기여할 수 있는 방향에서 특성화를 모색하고자 합니다.” -학생들은 일상적인 교육의 질 향상에도 관심이 높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한국의 그 어느 대학보다도 교수와 학생, 교직원 사이의 인격적 신뢰가 크다는 것이 한신의 또다른 자긍심의 근거입니다. 대학은 이른바 ‘큰 공부’ 하는 곳입니다. 졸업 후의 취업만이 아니라 급변하는 직업세계에서 긴 인생을 헤쳐나갈 수 있는 신념과 철학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곳입니다. 인생의 큰 공부는 대학과 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경험세계의 폭을 넓히고 수많은 만남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 공간도 민주적 의사소통이 활발할 수 있도록 바꿔가고 있습니다.” -수도권 대학으로서 지역의 특성에 맞춰 발전을 도모할 필요도 있을 것 같은데. “한신이 위치한 지역에는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족이 많이 있고, 대기업은 물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지역거점대학이란 한신이 위치한 경기지역의 발전 틀 안에서 산학협력, 관학협력을 강화하고, 지역 고등학교들과의 연계교육, 다문화가족 교육, ‘무한 돌봄’ 등의 사회봉사 기회를 넓혀 학생들의 현실경험 깊이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한신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는 교육과제의 하나입니다.” -한신대는 신학대학과 진보적인 대학의 이미지가 강하다. 장단점이 다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이미지를 넓혀갈 계획인가? “본래 진보적인 신학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신학대학이 종합대학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학이 왜 대학 안에 있는지, 이웃 학문에 신학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 신학에게 이웃 학문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웃 학문은 신학으로 하여금 학문의 게토에서 벗어나 대화의 능력을 키우도록 도울 수 있고, 신학은 이웃 학문이 몰가치적 상업주의적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학은 제가 아는 한 본래부터 대화하는 학문이었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신학이 있는 종합대학은 한국 사회에 적지 않게 있지만 한신만이 그런 도전과 대화를 간섭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풍토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신대가 그런 철학을 잘 구현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명문으로 자리잡길 바란다. 발전 동력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그동안 학교법인과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다양한 형태로 지원을 해왔습니다. 또한 기장의 성도들 가운데 거액의 기부를 해주신 분들도 많습니다. 기장 교회는 물론 그동안 한신이 배출한 동문들의 지원을 활성화하려고 합니다. 개교 70주년을 기해 매달 7000원씩의 발전기금을 기부하는 7만명의 한신가족을 모으려고 합니다. 작은 돈을 모아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아기 예수가 ‘말구유’에 눕혀졌다는 것은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생명의 양식을 담은 그릇 안에서 스스로 생명의 양식이 되신 분처럼, 우리도 작은 정성으로 생명을 키우는 양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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