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츠담회담에 따라 1945년 8월8일 일본군에게 선전포고한 소련군은 즉각 청진과 원산항을 통해 진주해 2주일 만인 22일 평양에 입성했다. 이후 26일 평양시내에서 대대적인 시민환영대회가 열렸다.
김자동-임정의 품 안에서 76
1945년 8월 소련의 참전과 더불어 관동군의 완강한 저항이 있을 것이라는 미국의 예상과 달리 소련군은 무서운 속력으로 만주지역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함경북도에 상륙해 한반도 북부로 쳐들어갔다. 일본의 저항은 무참하게 무너져가고 있었다. 항복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소련군의 진격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자 미국은 소련군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소련을 동맹국보다는 전후 세력경쟁의 대상으로 관점이 달라진 미국은 이것을 막을 계획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는 외교와 군사상의 문제를 조정하는 ‘국무부·육군부·해군부 조정위원회’(SWNCC)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내가 번역해 소개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986년)에서는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1945년 8월10일과 11일 사이 자정 무렵 본스틸 대령과 러스크 소령은…, 미국과 소련이 점령할 지역을 확정짓는 개괄적인 명령을 기초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SWNCC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 초안을 30분 안에 완료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국무부 쪽에서는 분할선을 가능한 한 북으로 올려 그을 것을 희망했으나 미국이 상륙하기도 전에 소련이 한국 전역을 점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군부 쪽에서는 보다 조심성 있게 움직였다. 본스틸과 러스크는 될 수 있는 한 서울 북부의 도(道) 경계선을 따라 분할선을 작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 갖고 있던 지도는 벽에 거는 극동 지도뿐이었으며, 마감시간은 점점 가까워 오고 있었다. 본스틸은 서울 북방으로 선이 통과하여 이것이 한국을 거의 똑같이 양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점을 포착해 그것을 분할선으로 건의하였다.”
이렇게 38선이 그어진 것이다. 훗날 국무장관에 오른 러스크 소령은 당시 미국 쪽에서 이 한국 분할점령안을 제시했을 때 소련이 쉽게 받아들여 “약간 놀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련이 이후 미-소 대립을 염두에 뒀다면 이 제안을 거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동맹국과의 협력관계를 고려해 미국의 건의를 그대로 수락했던 것이다. 이것이 ‘대소 봉쇄’의 첫출발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또 미국 쪽에서 일본 분할점령(홋카이도)안을 일축하는 바람에 내심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수락한 결정을 번복하지 않고, 9월 초에야 한반도에 진주할 미군을 위해 38도 이남을 남겨두었다. 이렇게 미국은 한반도 인구의 3분의 2 이상, 경공업과 농업생산의 대부분이 집결된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다. 38선에 의한 한국 분할점령에 대해 임시정부와 우리 국민은 모두 오래가지 않기를 희망했으며, 실제 이렇게 장기화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충칭의 여름은 4월부터 시작된다. 5월에도 40도에 육박하는 고온이 계속될 때가 흔했다. 나는 오후 시간을 종종 임정 청사와 그 근처에서 보냈다. 임정에서는 청사의 왼쪽 옆집 한 채도 세를 내어 사용했으며, 그 집에서 100~200m 떨어진 곳의 집 한 채도 쓰고 있었다. 옆집에는 앞서 67회에 말한 권일중 선생이 방 하나를 썼는데, 영어공부도 하고 미국에 관한 얘기도 듣는 재미로 자주 들렀다. 좀 떨어진 집에는 학병 출신으로 광복군에 배치받기를 기다리는 청년 몇 사람과 인도-버마 전선에 파견됐다가 건강 때문에 휴양하고 있는 나동규씨가 있었다.
그곳이 우리 집보다는 약간 더위가 덜한 편이라 나는 책을 갖고 가서 공부도 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했다. 남은 침대가 있어 그곳에서 잘 때도 자주 있었다. 일제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게 된 것도 그 집에서였다. 8월15일 밤 9시쯤 나동규씨가 “일본이 항복했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며 들어섰다. 방 안에 있던 우리들은 모두 벌떡 일어섰다. 그때의 기쁨과 흥분은 진정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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