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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민주여성단체 ‘송백회’ 이끌며 시민군 지원

등록 2010-05-03 21:05수정 2010-05-04 19:48

1979년 5월 송백회 창립 첫돌을 기념해 광주 부근 화순의 송석정으로 야유회를 갔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회원들 모습은 5월항쟁 이후 거듭된 탄압으로 대부분 자료가 사라진 까닭에 거의 유일한 사진이 됐다. 뒷줄 왼쪽부터 총무 홍희윤, (한 사람 건너)김경천, 초대 회장 나혜영씨 등이다.
1979년 5월 송백회 창립 첫돌을 기념해 광주 부근 화순의 송석정으로 야유회를 갔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회원들 모습은 5월항쟁 이후 거듭된 탄압으로 대부분 자료가 사라진 까닭에 거의 유일한 사진이 됐다. 뒷줄 왼쪽부터 총무 홍희윤, (한 사람 건너)김경천, 초대 회장 나혜영씨 등이다.
5·18 30돌-5월을 지켜온 여성들 ② 홍희윤




아들 밟혀 마지막 순간 도청 떠나
부채의식에 몸일으켜 ‘깃발’ 집필

“5월은 뭔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 여전히 벌떡이고 불끈거린다. 아마도 5월 넋이 아직 잠들지 못했나 보다. 투혼…업인가 보다. 나도 그랬다. 갑자기 자다 벌떡 일어나 밤을 새우며 미치도록 뭔가를 쓰게 만드는… 그것이 깃발이다.”

‘순 서울내기 이화여대 출신 문학도’ 홍희윤(사진·필명 홍희담)이 광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6년 당시 남편인 작가 황석영이 <장길산> 집필과 새로운 문화운동을 꿈꾸며 전남 해남으로 내려오면서부터다. 해남의 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토론을 벌이고… 그는 그 뒷바라지를 말없이 수행했다. 그러던 78년 윤한봉을 만났다. ‘합수’(똥·오줌 섞인 거름물)란 별명처럼, 윤한봉은 ‘80년 5월 수괴’로 몰려 수배·밀항·귀국·병사로 이어진 파란의 삶을 살다 떠난 ‘광주 민주화운동의 기둥이자 거름’ 같은 인물이다.

“얼마나… 그 눈빛이 말이야 아이처럼 맑고… 그러면서도 말할 때는 결의와 기운이 있었어. 열정과 자신감, 맑고 순수함, 그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어.”

이어 광주로 살림을 옮긴 홍희윤은 그해 12월 지역의 첫 독립 민주여성단체 ‘송백회’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총무를 맡은 그는 유신 반대 운동권 남성들의 부인들 친목모임으로 시작해 이듬해에는 운동단체로 조직을 넓히고 다졌다. 우선 민주인사들의 옥바라지 사업을 내걸고 매월 1회 정기 학습모임을 통해 사회과학·사회운동·근대사·정치경제사 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 나갔다. 구속 또는 수배자 가족, 교사, 시민운동가, 노동자 등 다양한 배경의 여성들이 참여했지만 목표는 ‘여성·민중 해방’을 향하고 있었다. 송백회는 특히 바자회나 그림전 등을 열어 구속자 옥바라지와 수배자 도피 자금을 꾸준히 제공했다. 그중에서도 은신처 마련은 서울에 연고가 있고 예술인들과도 인맥이 넓었던 홍희윤의 몫이었다. 그가 부탁을 할 때면 어떤 이는 아예 발도 못 들이게 했고 어떤 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숨겨줬는데, 대체로 여성들이 훨씬 온정적이고 잘 도와줬다고 그는 기억한다.


홍희윤(필명 홍희담)씨
홍희윤(필명 홍희담)씨
이런 조직적 활동은 80년 5월항쟁 초기부터 여성들이 모금, 대자보 작성, 투사회보 편집·배포, 깃발·리본 제작, 선전·홍보 등 투쟁의 전 과정에 적극 가담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5·18’ 그날 마침 황석영은 자신이 꾸린 극단 광대의 <한씨연대기> 공연을 준비하며 소극장 자금을 구하고자 서울로 가고 없었다. 홍희윤과 송백회 회원들은 공수부대의 만행과 진상을 널리 제대로 알리고자 1년 전 미술품 판매로 모아둔 회비를 모두 투쟁기금으로 내놓고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광대 단원으로 절친했던 임영희는 홍희윤이 집을 판 돈까지 일부 보탰다고 귀띔했다. 그는 날마다 양림동에서 도청을 오가며 시민군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투쟁 소식을 알렸다. 당시 8살 외동아들(황호준)이 걸려 마지막 순간 도청에 남을 수 없었던 그, 하지만 그때 만난 노동자들의 그 선한 웃음과 따뜻한 마음, 죽음을 넘나드는 절박한 순간에 꽃피던 동지애…, 홍희윤에게 그것은 평생을 안고 살아갈 자산이 됐다. 그는 그렇게 새로운 역사의식에 눈을 떴다.

이후 홍희윤은 두 차례나 수사기관에 끌려가 모진 협박을 당했다. 80년 5월항쟁의 합법화를 위한 투쟁 때 송백회의 자금책으로 몰려 경찰에 시달렸다. 결국 그해 송백회는 겉으로 해체를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이후에도 여성 노동자들과 구속자 지원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89년엔 황석영의 평양 방문을 간첩사건으로 조작하려던 안기부에서 닦달했다.

홍희윤은 인터뷰를 지독히 싫어한다. ‘나는 한 일이 없어. 그냥 광주시민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거야.’ 수줍게 손사래를 칠 뿐이다. 하지만 환갑이 넘어서도 여전한 소녀 같은 열정과,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이 어느 5월 그를 벌떡 일어나게 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쓴 글이 바로 88년 ‘작가 홍희담’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인 <깃발>이다. “깃발의 주인공은 5월 도청에서 살아 숨쉬었던 모든 노동자들이다.”

“예술가들은 날마다 들썩여.” 아들과 며느리까지도 모두 예술의 길을 걷고 있으니 자신만이라도 일상의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며 기꺼이 손주들을 보살피고 있는 할머니. 그래도 ‘5월은 그를 미치게 하는 그 무엇이다.’ 해마다 그날이 되면 한번씩 그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는 그 어떤 폭풍 같은…, 잠들지 않는, 잠들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정리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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