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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임을 위한 행진곡’ 첫 녹음…“울면서 불렀다”

등록 2010-05-04 19:51

1980년 5월19일 광주 시위 진압에 나선 공수부대원들이 금남로 안쪽 구역에 있던 무등고시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대입 수험생들까지 거리로 끌어내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있다. 바로 맞은편 건물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임영희는 그길로 항쟁의 대열로 뛰어든다.  <오월, 민주주의의 승리-신복진 사진>
1980년 5월19일 광주 시위 진압에 나선 공수부대원들이 금남로 안쪽 구역에 있던 무등고시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대입 수험생들까지 거리로 끌어내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있다. 바로 맞은편 건물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임영희는 그길로 항쟁의 대열로 뛰어든다. <오월, 민주주의의 승리-신복진 사진>
5·18 30돌-5월을 지켜온 여성들 ③ 임영희




‘광주의 진실 알리기’ 온힘
‘검은리본…’ 경계속 상연

임영희(54)가 사회운동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70년대 중반 광주 수피아여고 다닐 때 광주일고에서 공모한 ‘무등문학상’에 당선되면서부터였다. 그는 문예운동가들과 어울려 기독청년운동과 학생운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했다. 대학 진학 대신 양림교회의 기독청년회원들과 신학을 공부하던 그는 78년 유신헌법 반대 유인물 배포와 이른바 ‘부활절 벽화’ 사건으로, 79년에는 간첩조작사건으로 연달아 끌려가 국가폭력을 경험했다. 그 후유증으로 3개월 동안 미음으로 연명할 정도로 심신은 피폐해졌고 아버지는 지역에서 전셋집을 얻기도 힘들 정도로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이 임영희의 민주화운동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당시의 임영희를 송백회 회원 홍희윤은 이렇게 말한다. “79년쯤인가, 해남에 살 때 어디서 예쁜 아가씨들이 막 와서 말이야… 겁도 없이… 밤새 사람들이랑 눈빛을 빛내면서 얘기하더라구. … 이뻤어, 아름다웠어. 정말 열정이 있었어.”

그러나 그 열정과 아름다움은 80년 5월항쟁 이후 폭도로 몰리고 오랜 도피생활에 지치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눌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 피어나지 못한 채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해 5·18, 임영희는 윤한봉이 소장인 현대문화연구소의 간사이자 극단 광대 단원으로, 작가 황석영의 작품 <한씨연대기>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19일 금남로 안쪽 골목에 있던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연습실에 있던 그는 공수부대원들이 맞은편 무등고시학원까지 쳐들어가 공부하고 있던 학원생들을 진압봉으로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어린 학원생들의 머리에서 선혈이 쏟아져내렸다. 너무나 잔인하고 폭력적인 모습에 뭐든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뛰쳐나간 그는 항쟁 초기 시위대와 합류해 항쟁 기지였던 녹두서점에서 만들어 온 화염병을 투척하거나 ‘투사회보’ 유인물을 나눠줬다. 그러다 도청이 접수되자 5월22일 이후부터는 투사회보 편집팀, 광대, 송백회 등과 함께 항쟁본부가 옮겨간 와이더블유시에이에서 궐기대회 준비물과 검은 ‘근조 리본’을 제작하며 조직적인 투쟁에 참여했다. 투쟁 지휘부가 꾸려지자 그는 기금 모금조를 맡았다. 그리고 도청에서 마지막 날을 맞았다.


임영희씨
임영희씨
‘나는 지금도 27일 그 새벽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이 없었고 그 적막감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유언이 될지도 모를 그 순간 방 안에 둘러앉아 최후의 막걸리 잔을 돌려마신 뒤 몇 푼 안 되는 돈을, 만약 살아서 이 자리를 벗어날지도 모를 사람들의 차비로 나눠주었습니다. 용준이도… (윤)상원이도… 그것이 마지막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새벽 처절한 총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광주를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슬퍼할 수만은 없어서 도피해서도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과 ‘투사의 노래’ 테이프, ‘항쟁일지’ 제작 등으로 분주했다. 사태가 진정된 뒤 광주로 다시 내려와 부상자 현황 파악과 분류작업을 지속했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광주를 알려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고 생각한 그는 술과 정신과 치료로도 달랠 수 없었던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안은 채, 그는 광주시민들이 폭도가 아님을 알리는 진실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81년 봄, 그 삼엄한 경계 속에서 연극 <누가, 검은 리본을 달았을까?>를 무대에 올렸다. 남도예술회관에서 황석영·홍성담·오정묵 등이 주도한 ‘광주를 위한 연극’이 처음 상연되던 날, 그는 홍성담이 제작한 항쟁 슬라이드 위로 김종률의 ‘검은 리본’이 울려퍼지던 마지막 순간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오늘 검은 리본 달았지… 당신은 하얀 수의를 입었지만… 나는 오늘 검은 리본 달았지.’

그해 겨울 광주 운암동 황석영·홍희윤의 집 2층 서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불러 녹음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오정묵이 첫 소절을 부르고, 그가 “산 자여 따르라”를 울면서 불렀다. ‘노동 열사’ 고 박기순과 ‘마지막 시민군’ 고 윤상원 열사의 영혼결혼식을 노래굿 형식으로 표현한 이 테이프는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에서 제작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패배의식을 떨쳐버리고 전진하는 새 노래가 탄생한 것이다.

“처음 녹음할 때만 해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민주화 선봉에서 민중 애국가로 불려질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오늘도 잠 못 드는 밤이면 혼자 이 노래를 부른다.

정리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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