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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광주의 가슴에 리본 달았던 ‘지명수배’ 여성대표

등록 2010-05-05 18:37

1980년 5월27일 진압작전 직후 계엄군들이 시민항쟁 지도부가 있었던 당시 광주 와이더블유시에이 건물에 진주해  있다. 수많은 총탄자국이 새벽의 처절한 상황을 짐작게 한다.(위·<광주를 말한다> 신복진) 와이더블유시에이 간사로 이곳에서 싸웠던 이윤정은 이후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라 도피해 다녔다.(아래)
1980년 5월27일 진압작전 직후 계엄군들이 시민항쟁 지도부가 있었던 당시 광주 와이더블유시에이 건물에 진주해 있다. 수많은 총탄자국이 새벽의 처절한 상황을 짐작게 한다.(위·<광주를 말한다> 신복진) 와이더블유시에이 간사로 이곳에서 싸웠던 이윤정은 이후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라 도피해 다녔다.(아래)
[5·18 30돌-5월을 지켜온 여성들] ④ 이윤정




마지막까지 투쟁 사수 주장
5·18 알리며 민주화 앞장서

1980년 5월항쟁을 총칼로 짓누른 직후 신군부가 전국에 배포한 60명의 지명수배 전단에는 여성이 2명 들어 있다. 전남대 학생회 간부 정경자와 이윤정이었다.

당시 25살 아가씨였던 이윤정은 전남여고 시절부터 ‘해방신학’ 그룹과 함께 스터디 모임을 결성해 활동하며 해방신학자 백영흠 목사의 “무엇을 먹고 입을 것인가를 걱정하지 말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에 큰 감명을 받아 사회운동에 눈뜨게 되었다. 이후 송백회와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등에서 활동하며 ‘가톨릭노동청년회’(JOC)와 손잡고 노동현장(전남방직·일신방직·로케트전기·남해어망·전남제사 등등)에서 노동자들의 권익 신장을 위한 조직화와 교육활동을 펼쳤다.

80년 5월18일. 당시 전남대 정문 앞에 있던 사레지오고교 안의 수도원에서는 가톨릭노동청년회가 주관하는 노동교육이 한창이었다. 호남전기, 삼양제사 등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70여명이 대상이었다. 같은 시각 금남로 광주와이더블유시에이에서도 삼양제사, 일신방직, 전남제사, 전남방직 등의 여성노동자 90여명이 같은 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윤정은 와이더블유시에이 사회문제부 간사로서 이 교육프로그램의 책임자였다. 그날 공수부대의 만행 소식을 들은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시위대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두 여성노동자 그룹은 항쟁 내내 지칠 줄 모르고 투쟁에 나섰다.


이윤정씨
이윤정씨
이윤정은 정현애·임영희·김정희 등과 함께 와이더블유시에이에 구성된 투쟁위원회 지도부로 참여해, 정유아와 함께 리본제작위원장을 맡았다. 그의 손을 거쳐간 수많은 리본들은 유족들의 가슴에, 일반시민들의 가슴에, 시민군들의 가슴에, 그리고 광주 거리 곳곳에서 의연하게 펄럭였다.

항쟁 마지막날, 도청 항쟁 지도부의 비상대책위원회에 정현애와 함께 여성 대표로 참여한 이윤정은 총기 반납을 반대하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주장한 ‘강경파’였다. 5월27일 새벽 총소리와 함께 진압은 시작됐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이윤정은 ‘현상금 100만원에 일계급 특진’이 걸린 수배자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 82년 붙잡힌 그는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렇게 그는 폭도가 되었던 것이다.


‘폭도’. 5월 이후 끝임없이 따라다니던 그 ‘낙인’을 벗어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날을 망월동과 금남로에서 싸워야 했던가. 30년 세월 동안 이윤정은 폭도에서 민주투사로, 여성운동가로, 통일운동가로, 정치인으로 변신하며 지치지 않고 싸워왔다.

95년 말 ‘반쪽짜리’ 특별법 제정으로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이 되고 ‘폭도’가 ‘민주투사’가 됐다고들 했지만 ‘광주의 5월’은 끝나지 않았다. 이윤정은 이후 광주민주화항쟁동지회장, 5·18민중항쟁 공동의장 등을 맡아 ‘진상규명’과 ‘책임자 사과’ 등 진정한 명예회복을 위해 앞장섰다. 특히 89년 독일 녹색당의 초청으로 4개월 동안 유럽을 방문했을 때, 총회에 참석한 각 당의 당수나 지도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돌아와 정치에 뛰어들었다. 91년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무소속 시민후보로 시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다 일본 사회당 의원들을 만나 ‘정신대문제해결 대책위원회’ 설립을 제안하고, 국외 민주화운동 인사들과 만나 5·18 정신의 세계화와 통일문제 등을 논의한 것이 빌미가 되어 9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또다시 3년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양심수’ 이력을 추가한 그는 풀려난 이후 광주·전남 민중연대, 통일연대 등 다양한 민주화운동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았고 여성단체의 가족과 성문제상담소 이사장으로서 활동을 재개했다. 2008년 민주당 광주광역시 남구위원장을 맡아 정치무대 일선에 나선 그는 “인권·평화·민주도시 광주의 이미지와 예향 광주,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광주의 이미지를 통합하고 브랜드화하여 광주를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만들어가야 한다”며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도시경영 전문가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윤정은 ‘5월 광주와 여성’을 이렇게 얘기한다. “흔히 ‘주먹밥’과 등치시켜 여성을 항쟁의 보조자로 묘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조직적이고 주체적으로 나서서 민주화와 공동체 정신을 꽃피우게 한 항쟁의 주역으로 재조명해야 한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의 시인 김준태는 이윤정을 두고 이렇게 표현한다. “여자의 젖은 남자의 피보다 강하다.”

정리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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