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6월 계엄사령부가 수배령을 내린 5·18 및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수배전단(부분 발췌). 왼쪽부터 계훈제 김태종 김태홍 김홍업 박계동 박관현 안희대 윤한봉 정연주 정태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30년 전 수배전단 속 ‘5·18’
그늘진 ‘엄혹의 시대’ 켜켜이
그늘진 ‘엄혹의 시대’ 켜켜이
빛바랜 사진 속에서 앳된 표정의 ‘5·18 최장기 수배자’ 윤한봉(1948~2007)이 눈에 들어온다. ‘신장 160㎝. 얼굴이 길고 마른 편. 광주사태 관련.’ 이후 14년 동안 이어질 미국 밀항과 망명 생활을 예고라도 하듯 그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그늘져 있다.
<한겨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0돌을 맞아 1980년 6월 계엄사령부가 공개 수배령을 내린 68명의 얼굴 사진과 인적사항, 혐의 내용 등이 담긴 수배전단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부터 입수했다. ‘전두환 신군부’는 80년 5월 광주를 유혈 진압한 뒤 6월17일 사회 저명인사와 운동권 학생 329명을 △국기문란 △시위 배후조종 △시위주동 △광주사태 관련 등의 혐의로 공개 수배했다. 이 전단은 자진 신고 기간인 6월30일을 넘긴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 거리에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의 이른바 ‘민주화의 봄’과 5·18 등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 섰던 이들이 담긴 수배전단에선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눈에 띈다. 재야에서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계훈제(1922~99) 선생을 비롯해, 당시 청년·학생 운동권의 주요 멤버였던 장기표 한국사회민주당 대표, 심재권·배기선 전 국회의원,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등이 포함돼 있다. 광주 지역 인사로는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재소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숨진 박관현(1952~82) 전남대 총학생회장, 이성학 제헌 국회의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 축이었던 해직기자 가운데는 김태홍(전 국회의원)·정연주(전 <한국방송> 사장)씨 등이 이름을 올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 김홍업씨도 있다. 이들은 5·18 직후 검거를 피한 덕분에 신군부의 모진 고문을 피할 수 있었다. 정연주 전 사장은 “81년 2월 검거되고 보니 신군부의 각본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정리돼 있었다. 서울 청량리경찰서 형사가 ‘당신 일찍 잡혔다면 몸이 성치 못했을 것’이라고 말해줬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광주 금남로에서 만난 문승훈 광주민주동지회 사무처장은 “옛 전단을 보니 30년 전 광주의 기억이 새롭게 되살아난다. 5·18의 초심을 잊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광주/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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