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는 강의 주인은 유역의 주민과 생태계라고 믿는다. 4대강 사업이 위험한 것은 강을 제일 잘 아는 유역공동체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 데 있다.
[한겨레가 만난 사람] ‘1370회 답사’ 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
4대강 사업을 두고 학계, 시민사회, 종교계까지 온통 들고 나왔지만 정부는 오불관언, 공사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엔 각 분야 대표적 지식인 77인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4대강 사업 일시 중단과 해법을 찾기 위한 면담을 공식 요청하고 나섰으나 대답이 없다. 이렇게 4대강 사업이 흘러간다면, 이제 몇 달 안 가 우리는 수천년간 보아오던 강을 영원히 잃게 된다. 그 한복판인 낙동강에서 발을 동동거리는 이가 있다. 김상화(58) 낙동강공동체 대표는 36년째 강원도 태백에서 강 하구 구포까지 발품을 팔며 사람들을 만나고 환경변화를 지켜봐 왔다. 너무 걸어서, 다리마저 절뚝이는 그는 “30여년 전에는 강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는데, 요즘엔 강을 보면 안타까워 눈물이 난다”고 했다. 강이 알아서 해주던 기능을 모두 인공화하고 그것을 인간이 관리하겠다는 오만은 재앙을 부를 것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낙동강 지킴이’로부터 과연 낙동강은 무엇인지, 4대강 사업으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지도자란 사람이 헬기서 한번 훑어보고
‘시궁창이다’ 얘기하는 것 터무니없어
강이 죽었다는 말은 개발론자들의 왜곡 -지난해 낸 책 <강은 흘러야 한다>를 보면, 1973년 스물한살 생일날 봇짐 하나 둘러메고 낙동강 끄트머리 을숙도에서 발원지 강원도 황지까지 42일간 도보순례를 한 것이 낙동강을 걷게 된 시작이더군요. 왜 그런 일을 하게 됐습니까? “서울에서 음악을 전공했는데 3학년 때 집에서 음악 한다고 학비를 대 주지 않아 접고 낙향했습니다. 부산 금정구 서동 철거민촌에서 야학을 하면서 민요 같은 우리 문화를 찾는 운동을 모색했습니다.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와 에덴공원에서 갈대밭과 갯벌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방황하던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그곳엔 바람과 물결이 만들어놓은 대자연의 오선지가 펼쳐져 있었지요.” -‘점아 점아 콩점아 밥 해주게 나온나’로 시작하는 민중가요 <점치는 아이>를 비롯한 환경노래도 그렇게 만들게 됐군요. “그렇습니다. <점치는 아이>는 구전가요로 잘못 알려졌지만 이달희의 시에 제가 곡을 붙인 것입니다.”
-과거 낙동강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천상병 시인은 1980년대에 을숙도나 명지 둔치를 자주 찾았습니다. 하구의 일몰을 보며 그는 ‘아름답제? 좋제?’ 하며 그저 눈물을 흘렸지요.”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우리나라 산업화가 절정에 이를 때였고 낙동강은 그 한가운데여서 오염과 훼손이 심각했지요. “그 시절부터 강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9월에 다섯번째 낙동강 도보순례차 석탄 찌꺼기로 뒤덮인 강원도 황지에 갔었지요. 그 외진 산속에 시커먼 강물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병들면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데, 낙동강, 당신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리고 이 구절을 포스터 1000장에 찍어 낙동강 유역 곳곳에 붙이고 다녔는데, 경찰서에 잡혀가 ‘무슨 의도냐’고 추궁받기도 했지요.” -낙동강 답사를 1370회, 주민과의 사랑방 좌담회를 800회 가까이 하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지켜본 낙동강은 과연 죽었습니까? “강이 죽었다고 하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낙동강은 펄펄 살아있습니다. 강은 썩어도 죽지 않습니다. 할퀴고 괴롭힌 만큼 고통스러워할 뿐입니다. 고통의 사슬을 풀어주면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줄 아는 능력을 강은 가지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 돌보듯 사람이 정성껏 보살펴 주는 게 중요하지요.” -사실 1990년대 이후 시민 주도의 강 살리기 운동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 아닌가요? “1991년 낙동강 페놀오염사태는 우리나라 환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계기가 됐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강의 오염을 줄이는 운동에 나섰고, 강에 대한 환경의식이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20여년 동안 국민이 이룩한 이런 성과를 깡그리 무시하고, 지도자란 사람이 헬기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시궁창이다. 살려내겠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지난 12월부터 100번 이상 사랑방 좌담회를 열었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요즘 4대강 사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처음 주민들은 대개 저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왜 일 잘하려는 대통령에게 딴지를 거냐는 거죠. 하지만 대화를 하면 차츰 인식이 바뀝니다. 주민들은 4대강이 개발 이득을 줄 것으로 막연히 믿고 있을 뿐 부작용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낙동강의 평균수심이 1~2m에 불과하기 때문에 백로, 왜가리, 두루미 같은 새들이 얕은 물가에서 먹이를 찾는데, 앞으로 수심이 6~7m로 깊어지면 먹을 게 없어 사라지고 대신 오리들이 올 것이라고 설명하면 쉽게 이해를 합니다. 낙동강에 30㎞마다 높이가 13m에 이르는 보(댐)가 건설되면 아침에 해뜰 무렵 온도차이로 안개가 발생해 딸기나 과수 재배가 어려워지고, 보 아래에선 지하수위가 낮아져 우물이 마르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호수가 된 강물에는 블루길과 배스 같은 외래물고기가, 강변에선 가시박 같은 외래잡초가 판을 칠 거라고 말해 줍니다.” -낙동강변에선 찬성여론이 높은 게 사실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낙동강 유역은 한나라당 지지가 높은 곳입니다. 청계천 복원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일 잘한다고 믿는 일종의 맹신주의가 퍼져 있습니다.” -4대강 사업은 하천정비 차원을 넘어 강의 기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는 규모입니다. 특히 4대강 사업은 홍수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물그릇을 키운다고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홍수를 무조건 죄악시할 수는 없습니다. 홍수에는 묵은 찌꺼기를 제거하고 새로운 영양분을 공급해 강의 자정능력을 도와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강변 저지대에까지 인구가 밀집해 있으니 홍수의 좋은 기능만을 강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더라도 강 본류의 물그릇을 키워 홍수를 막는다는 정부의 주장은 거짓입니다. 그동안 낙동강에서 일어난 홍수는 성주의 신천 범람과 후포벌 홍수, 회천 범람, 태풍이 올 때마다 하류정체 현상이 빚어내는 합천 청덕의 황강 범람, 함안 법수지구 저지대의 상습 침수, 김해 화포천 하류의 병목화로 인한 상습 범람 등 모두 본류가 지류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일어났습니다. 지류에 물이 정체돼 제방의 약한 곳이 뚫린 거지요. 본류의 홍수방어 능력은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그리 허약하지 않은데, 왜 자꾸만 부풀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본류 제방은 이미 튼튼하고 높이도 충분합니다.” -본류보다 지류가 문제라는 얘긴데 그렇더라도 본류의 용량이 커지면 홍수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낙동강 하구에서 경북 안동까지 낙동강의 길이는 약 340㎞인데 표고차는 80m밖에 안 됩니다. 그만큼 물의 속도가 느린 강이란 뜻이죠. 또 낙동강 서쪽 유역의 산악지역에는 동쪽보다 연간 500㎜ 이상 비가 많이 오는 다우지역입니다. 게다가 지구온난화로 집중호우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만일의 사태를 상정해 봅시다. 물의 속도는 느린데 태풍과 함께 국지성 집중호우가 쏟아집니다. 만조에 해일이 겹쳐 하구의 물이 바다로 빠지지 못하면 홍수는 오갈 데 없이 유역 안의 낮은 곳을 기웃거리게 될 겁니다. 여기에 본류에 설치한 거대한 보가 미리 홍수를 예견해 물을 비워놓지 못했다면 체증의 폭발력은 가공할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게다가 2002년 태풍 루사 때 정전사태가 김해 ‘한림 대범람’을 불러온 것처럼 사고까지 겹친다면 대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뭄 피해도 본류가 아니라 지류에 집중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만, 4대강 사업이 강의 본류를 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문제이군요? “낙동강 본류는 지류들을 실핏줄처럼 거느린 중추신경계입니다. 비유한다면, 어머니 낙동강은 안동에서 부산까지 96명의 자녀와 그들의 손에 매달린 825명의 손자·손녀를 거느리고 바다에 이르기까지 열흘간의 여행을 하는 겁니다. 본류는 지류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수량, 수질, 생태 등 모든 면에서 강 본류는 지류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와 관련됩니다. 중추신경인 본류에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이유이지요.” 표고차 낮고 다우지역 끼고 있어 불안
‘강살리기’ 유역공동체 관점서 접근을
“요즘 낙동강 보면 안타까워서 눈물나” -낙동강에서만 4억4000만㎥의 모래와 자갈, 펄을 준설할 예정인데,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낙동강은 모래가 흐르는 강입니다. 그래서 1970년대에도 강의 깊이는 1~2m가 고작이었고 하구에 가야 2~3m 수심이 나왔습니다. 낙동강의 모래 등 퇴적물을 죄악시하는 발상에 화가 납니다. 금호강 합류지점 등 몇몇 곳을 빼고는 강바닥이 오염돼 있지 않습니다. 또 하상이 높아 준설해야 한다고 정부가 주장하지만, 낙동강 바닥은 과거에 견줘 눈을 씻고 보아도 높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낮아진 곳이 많습니다. 준설은 모래가 하던 자연정화와 생태적 기능만을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는 준설 뒤 본류의 하상을 유지하기 위해 지류의 합류점에 콘크리트 낙차공을 설치할 예정인데, 자연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하는 겁니다. 사람의 관절마다 쇠로 만든 인공관절을 끼우는 셈이지요. 강과 유역의 생태적 연결고리가 차단됩니다. 준설한 토사는 현재 하천변 농지를 돋우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과거 홍수 때 물이 차던 저지대를 모두 높여놓으면 범람하는 물은 갈 곳이 없어 더 큰 홍수피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지요. 게다가 큰비가 올 때마다 지류를 통해 유입될 막대한 양의 토사를 강 본류에서 쳐 내는 관리비용은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습니다. 4대강 사업이 생채기를 낼수록 강은 점점 취약해지고 예민해지고 있습니다. 조그만 충격에도 비틀거릴 겁니다. 전에는 아무런 대가 없이 강이 우리에게 해 주던 수질정화, 홍수통제 등의 기능을 이제는 인간이 비싼 비용을 들여 임시변통하려 하고 있지요. 만용이자 무지한 일입니다.” -김 대표는 강을 살리기 위해서는 유역 차원의 공동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낙동강 공동체란 어떤 개념입니까? “강과 인간은 뗄 수 없는 여러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강 옆에 사는 고등동물인 인간이 공동체를 만듭니다. 이것이 유역입니다. 인간이 조금만 강을 도와주면 강은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유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 유역에서 사회적 관계를 이루기 때문에 강과 유역을 책임져야 합니다. 강이 더러워졌다는 것은 유역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는 경제적 판단만 해서 강이 엉망이 됩니다. 강을 유역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단순히 경제적 목적으로 접근하면 강을 해치고 맙니다.” -강을 사람을 뺀 자연의 관점이 아니라 사람의 활동이 중요한 문화의 시점에서 보고 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4대강 개발을 하면서 문화재가 훼손될까 걱정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강이 지닌 무형적인 문화가치입니다. 강에서 시와 소설이 싹트고 영성을 기르고 추억을 간직하는 건 기본권입니다. 곽재우, 남명 조식 등 걸출한 인물이 나온 곳도 낙동강변입니다. 몇 가지 경제적 이유를 들어 강이 지닌 이런 문화적 여백을 지우는 것은 횡포입니다.” -강변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빗물에 흘러나간 비료와 농약이 수질오염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농민을 내쫓는 근거가 됐습니다. “그런 말은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무책임한 발언으로 농민에 대한 엄청난 모독입니다. 부분적으로 오염물질을 내보내는 사례도 있겠지만 농민이라면 거름이 유실되지 않도록 물로 바로 흘러들지 않는 가로 고랑을 내는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오히려 농민들은 강을 먼저 생각했고 수변 관리자 구실을 해 왔습니다. 농지를 없애고 그 자리에 공원이나 위락시설이 들어온다면 더 많은 오염물질이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농지를 없앤 강변엔 자전거도로가 생깁니다. “얼마나 많은 이가 자전거도로를 이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강변 산길을 복원하는 편이 생태관광을 위해서 더 나을 겁니다. 낙동강변에는 황산 잔도길, 임해진 노리언덕길, 남지 개비리길, 개포 고갯길, 하빈 넝쿨길, 퇴계 예던길, 영남대로 고모산성의 토끼비리길 등 빼어나게 아름다운 옛 길이 많습니다.” -지난 10일 종교계·언론계·학계·시민단체의 지식인 77인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4대강사업 일시 중단과 해법을 찾기 위한 면담을 공식 요청하고 나섰습니다. 그 한 사람으로서 4대강 논란의 해법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결국 돌파구는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준설 깊이를 낮추고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등의 대안도 나오고 있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에선 어떤 논의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최고 결정권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담판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인터뷰/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정리·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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