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이 주최하는 ‘전국고등학생 토론대회’는 해마다 9월 광주에서 2박3일 합숙을 하며 청소년들의 사회의식을 키우고 있다. 2004년 제3회 대회 참가자들이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5·18기념재단 제공
고2 때 전국토론대회 국회의장상
버마 난민촌서 항쟁 질문에 고민
“우리세대에 5·18은 빚 아닌 유산”
버마 난민촌서 항쟁 질문에 고민
“우리세대에 5·18은 빚 아닌 유산”
[5·18 30돌-5월을 지켜온 여성들]
(19)신한슬 신한슬(20·연세대 2). 이우학교 2학년 때인 2007년 9월 광주 5·18민주묘지를 답사했다. 외가 친척들을 만나러, 어머니 손잡고 광주비엔날레 구경하러, 어릴 적부터 자주 오간 도시라 친숙했지만 민주묘지는 처음이었다. 5·18기념재단에서 주최한 ‘제6회 전국고등학생 토론대회’에 같은 반 친구 성유진(성공회대 2)과 짝을 이뤄 참가한 길이었다. 앞서 1년 전 부산 민주공원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민주캠프’에 참가했던 유진이의 제안으로 이뤄진 특별한 경험이었다. “‘근현대사’ 시간에 5·18민중항쟁에 대해 처음 배웠어요. 이우학교에서는 국정 국사교과서 대신 선생님들이 직접 준비한 교재로 수업을 했는데, 특히 그때 본 다큐멘터리가 인상적이었어요.” ‘인권의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전국에서 선발된 2인1조, 서른 팀이 겨룬 이 대회 결선에서 그는 최고상인 국회의장상을 받았다. “인권은 당연히 누려야 한다고들 대부분 주장했지만, 우리는 조금 다르게 접근했어요. 인권이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것인 만큼, 요구하고 때로는 싸워서라도 지켜야 한다. 억압과 대립의 요인들을 먼저 이해하고 서로 존중해야만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죠.” 내친김에 고3 때는 민주공원의 청소년 민주캠프에도 참가해 그는 ‘경쟁’이란 토론 주제를 개성있게 소화해 또 한번 대상을 차지했다. 이런 경험들은 그가 대학 진로 선택은 물론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신한슬(20·연세대 1)
“민주주의는 한두번의 투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다.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았다고 해서 민주화가 당연히 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예를 들며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자 애쓰다 문득 깨달았다. ‘아, 몇마디 말로 가르쳐줄 일이 아니다.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방법을 찾는 데 필요한 뭔가를 찾아보자.’ 그러자면 우선 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이르러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그는 앞으로 사회복지학도 복수전공할 참이다. “지금 가장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도서관이라고 생각했어요.” 난민촌 방문 때마다 학생조직과 함께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그는 청소년들에게 책을 많이 읽도록 한다면 스스로 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 기금 마련을 위해 지난해 3차 방문 때 찍어온 영상자료를 편집해 난민촌 다큐를 제작중인 그는 이우학교 후배들에게 이 프로젝트를 대물림해 지속적으로 도울 계획이다. 또 한가지, 두 차례 토론대회 경험을 떠올리면 “무엇보다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으며 공감을 끌어낸 과정이 재미있었다”는 그는 대학생활에서도 즐거움을 찾고자 율동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저 춤추고 노래하며 놀자는 모임은 물론 아니다. “5·18 30돌을 맞아 이번 주말 1박2일로 광주 민주묘지 답사를 가는데 아르바이트 때문에 동참하지 못할 것 같아 아쉽다”는 그의 얘기는 어느새 다시 ‘5·18’로 돌아왔다. “광주 시민들이 추구했던 ‘5월 정신’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면, 지금 우리 삶을 억압하는 가장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싸워 나가는 것도 그 계승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저 같은 대학생을 비롯한 20대 젊은이들의 주거권 확보 같은 거죠.” 맨 처음 5·18민주묘지에 갔을 때의 느낌이 궁금해졌다. “사실 그땐 뭔가 부담스러웠어요. 80년의 희생 덕분에 오늘 우리가 편히 누리고 있다는, 어떤 부채감 같은 거요. 그런데 이듬해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난 뒤 유진이와 얘기하면서 공감했어요. ‘우리 세대에게 5·18은 빚이 아니라 유산’이라고요.”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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