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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지학순 주교 구속에 분노해 ‘운동권 신부’로 / 문정현

등록 2010-06-13 20:11수정 2010-06-14 15:27

1975년 2월17일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수감됐던 지학순(왼쪽 둘째) 원주교구 주교와 김지하(가운데) 시인이 10개월 만에 구속집행 정지로 풀려나 원주시 입구에서 필자(오른쪽 둘째)를 비롯한 사제단과 신도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있다.
1975년 2월17일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수감됐던 지학순(왼쪽 둘째) 원주교구 주교와 김지하(가운데) 시인이 10개월 만에 구속집행 정지로 풀려나 원주시 입구에서 필자(오른쪽 둘째)를 비롯한 사제단과 신도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10
내가 유신독재와 싸우는 이른바 ‘운동권 신부’가 된 발단은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의 구속 때문이었다. 내 분노의 출발은 단지 감히 어떻게 가톨릭 주교를 불법연행하느냐는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1974년 7월6일 지학순 주교가 로마 바티칸에서 돌아오던 길에 김포공항에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김포공항에서 끌려간 것이다. 민청학련 배후라는 죄목이었다. 민청학련 사건은 71년 이후 계속되어 온 민주화운동을 쐐기를 박으려고 벌인 박정희 군사정권의 조작이었다.

민청학련 주모자로 몰려 중정의 추적을 받던 이철·유인태·김지하와 일본인 2명을 포함한 55명이 긴급조치 1호와 4호 위반,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내란예비음모·내란선동 등 어마어마한 혐의로 구속된 것은 그해 5월27일이었다. 이들에게는 6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가 무기로 감형됐다. 뒤이어 7월 그날 민청학련에 자금을 대준 혐의로 윤보선 전 대통령, 박형규 목사, 김동길·김찬국 교수 등과 함께 지 주교가 잡혀간 것이다.

이에 7월10일 윤공희 대주교의 주례로 명동성당에서 시국 미사가 거행됐다. 성직자 200여명, 수도자 400여명과 많은 평신도들이 참석했다. 주교단에서는 ‘지학순 주교의 연행에 관하여’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날 김수환 추기경이 대통령과 면담을 한 뒤 지 주교는 풀려났으나 당시 명동성당 옆에 있던 성모병원에 연금됐다. 성모병원에는 정보부원이 상주하면서 감시했다. 그러나 7월23일 지 주교는 ‘유신헌법 반대’ 양심선언을 발표해 다시 수감이 되고 말았다. 8월1일 원주교구 신부들이 기도회를 열고 항의를 했으나 비상 군법회의는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지 주교 등 3명에게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전국의 각 교구에서 지 주교의 구속을 규탄하는 기도회가 열려 전주교구에서도 동참했다. 그 열기를 타고 그해 9월23일 원주에서 열린 전국 성직자 세미나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됐다. 사제단은 인권과 민주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결의하고 기도회 뒤 거리시위를 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행동 강령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원제도 아니었다. 사안에 따라 모이고, 기도회나 시국미사를 주최할 때는 몇 사람이 모여 논의해 사발통문처럼 알리면 전국에서 사제들이 모여드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제 회원들 자신도 어디서 어떻게 모이는지 잘 모를 때도 있었다.

당시 사제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사제들은 원주의 신현봉·최기식·안승길 신부, 서울의 함세웅·안충석·김택암 신부, 부산의 송기인 신부, 안동의 유강하·정호경 신부, 인천의 김병상·황상근 신부 그리고 전주에서는 내가 주로 연락망 구실을 했다. 서로 연락이 되면 서울로 올라가 논의를 했고 주로 함세웅 신부가 주도했다.

사제단은 조직이라기보다 이심전심으로 모여 활동하는 단체였다. 그러니 중정이나 공안기관은 사제단의 움직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쩔쩔맸다. 중정 쪽에서 보면 사제단의 활동은 늘 오리무중이었다. 사제단이 주최하는 시국미사에는 사안에 따라서는 주최 쪽에서조차 예측할 수 없는 대규모 군중이 모이기도 했다. 그래서 공안당국에서는 미사 자체를 원천봉쇄하기로 하고 아예 성당에서부터 안기부, 경찰이 합동으로 신부 개개인을 모두 감시했다. 나 역시 집을 나설 때부터 목적지까지 미행을 당했다. 심지어는 집을 나서자마자 정보부원들이 내 몸을 들어 경찰차에 싣고 양쪽에서 지키고 있다가 행사가 끝날 때쯤 성당에 내려다 놓은 적도 있었다. 물론 그런 식의 불법연금은 사제단 신부들뿐만 아니라 다른 기독교나 민주인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백주대낮에 시민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도 우리를 잡아갔다. 고속터미널, 휴게소, 톨게이트 등, 그러나 아무리 고함을 쳐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엄혹했다. 그래서 명동에서 시국미사를 할 때면 신부들마다 천신만고로 갖은 방해를 뚫고 모여야 했다. 승용차를 막다 못해 뺏어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부들은 몰래 버스나 기차를 타고, 때로는 차를 얻어타고 어떻게든 미사에 참가했다. 그때 우리 신부들은 막으면 막을수록 더 악착같이 시국미사에 참여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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