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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면회 온 어머니 웃으시며 “김대건 신부 돼야해” / 문정현

등록 2010-06-21 20:46수정 2010-06-21 22:23

필자가 1976년 전북 군산 월명동성당에서 ‘김지하 문학의 밤’을 열어 박정희 정권 비판과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강연을 하고 있다. 이후 필자는 ‘3·1민주구국선언’을 빌미로 구속됐으나 진짜 ‘죄목’은 바로 이런 반유신정권 활동이었다.
필자가 1976년 전북 군산 월명동성당에서 ‘김지하 문학의 밤’을 열어 박정희 정권 비판과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강연을 하고 있다. 이후 필자는 ‘3·1민주구국선언’을 빌미로 구속됐으나 진짜 ‘죄목’은 바로 이런 반유신정권 활동이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16
박정희 정권과 검찰은 ‘3·1절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 사건’이라는 걸 조작해 놓고는 그동안 있었던 여러 집회나 각 종교의 기도회를 엮어 사건을 크게 부풀렸다. 나는 1976년 2월16일 전주에서 천주교 전주교구사제단 주최 기도회에서 김지하 시인을 언급하고 유인물을 나눠준 일 때문에, 신현봉 신부는 1월23일 원주성당에서 한 강론 내용과 ‘민족의 긍지를 찾기 위한 원주선언’에서 독재정권의 문제를 낱낱이 비판한 것 때문에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기소된 것이었다.

그해 3월10일께 구속된 나는 서대문구치소 5사 3방에 갇혔다. 1.75평짜리 독방이었고, 양쪽 방은 모두 재소자가 없는 공방이었다. 교도관이 3교대로 24시간 감시했다. 책은 들어올 수 있지만 검열이 철저했다. 가장 지독한 것은 필기도구가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3월2일 연행된 이후 두 달 동안 면회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 시절엔 워낙 공안사범이 많아 입방하자마자 통방을 하며 서로 아는 척을 했다. 같은 구치소에 나병식, 최열, 예수회 수사였던 김명식 수사, 김지하가 있었다. 김지하는 아예 통로 한 줄을 다 비워버려 혼자 갇혀 있었다. 그래도 교도관을 통해 내게 쪽지를 보내주었다. 징역살이하는 요령, 냉수마찰 방법, 재판과정에 대한 충고 등을 적어 보냈다. 그가 사형선고를 받은 뒤 열심히 구명운동을 했던 터라 그와 같은 감옥에 있다는 것이 큰 위안과 힘이 되었다. 나는 김정남이 쓴 김지하 어머니의 호소문과 김지하의 양심선언문을 복사해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기만 하면 그 글을 낭독했다. 나를 비롯한 정의구현사제단의 이런 활동은 갇혀 있는 그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가족과 면회를 한 것은 첫 재판 직전인 5월3일이었다. 사제서품을 받은 동생 문규현 신부가 어머니와 함께 특별면회를 왔다. 나는 어머니를 만나기 전부터 걱정이 컸다. 수의를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까무러치지는 않을지, 나를 끌어안고 우시지는 않을지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내가 변호사 접견실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큰신부”라고 부르며 끌어안으셨다. 전에는 “우리 신부”라고 했는데 규현이 사제서품을 받았으니 그렇게 부르신 거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나를 끌어안고 내 등을 탁탁 두드리면서 “우리 신부, 김대건 신부님 되어야 해” 하셨다. “순교해야 돼”라는 말과 똑같은 얘기였다. 어머니가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어머니 앞에서 울 수도 없었다.

나는 그때 문규현 신부에게 첫 강복을 청했다. 서품식에 참석해서 축하도 해줘야 하고, 여러 가지 필요한 것도 있으니 도움을 줘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 해줘 마음이 아팠다. 문규현 신부로부터 강복을 받은 나는 동생을 뜨겁게 부둥켜안고 물었다. “사제의 길은 험난한데 이런 꼴을 보고도 신부할 테여?” 그러자 규현은 답했다. “아, 형님 내가 그 전에 말했잖습니까? 형님 보고 가요? 나는 내 갈 길 가는 거요. 이제 동지 하나 생겼잖아요.” 새 신부, 문규현은 사제가 되자마자 내 옥바라지를 하고, 나 대신 전주의 월요기도회를 이끌며 농민운동, 노동운동으로 지평을 넓혀갔다. 어머니와 동생을 면회한 뒤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래서 내 방으로 돌아와 김재덕 주교와 김수환 추기경, 지학순 주교께 편지를 썼다. “감옥에 있는 게 전혀 수치스럽지 않다, 우리를 심판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울 날이 올 것이다. 감옥에 있지만 주교님과 일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서대문구치소에 있을 때 나와 같이 수감된 재소자들 중에 정치범이 아닌 사형수들이 있었다. 이름이 요셉이었는데 부산 시체토막사건 관련자였다. 그 사람 말고도 알베르또, 그레고리라는 사람이 더 있었다. 사형수라 활동이 자유로운 편이었던 그들은 내 방에 다가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강복을 요청하기도 했다. 나는 가끔 그들에게 사식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그해 12월27일 교도소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원래 하던 대로 사형수들 앞으로 사식을 보냈는데 되돌아왔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그들의 사형이 집행된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도한다. 그때 나는 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한다는 것을 절절히 느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겪은 수많은 사건들과 관련된 날짜들은 거의 잊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죽은 날짜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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