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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준법 각서 쓰고 출소…땅을 치며 후회하고 통곡 / 문정현

등록 2010-06-24 18:11

1977년 12월31일 형집행정지로 김해교도소에서 풀려난 필자(가운데 한복 차림)가 전주교구청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과 사제단과 만나 회포를 풀고 있다. 왼쪽부터 동생 문규현 신부, 친구 리수현 신부(당시 전주교구청 사목국장), 그 앞이 아버지 문법문씨, 필자의 오른쪽이 어머니 장순례씨다.
1977년 12월31일 형집행정지로 김해교도소에서 풀려난 필자(가운데 한복 차림)가 전주교구청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과 사제단과 만나 회포를 풀고 있다. 왼쪽부터 동생 문규현 신부, 친구 리수현 신부(당시 전주교구청 사목국장), 그 앞이 아버지 문법문씨, 필자의 오른쪽이 어머니 장순례씨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19
김수환 추기경이 다녀간 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1977년 12월25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복역하던 함세웅 신부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이우정 교수, 박형규 목사, 김승훈 신부가 찾아왔다. 면회는 입회 교도관 없이 교도소장 방에서 이뤄졌다. 나는 도청이 될지 몰라서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치며 이야기했다.

그들이 말했다. “신부님이 무엇 때문에 징역살이를 하세요?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람들 다 풀려나는 거 아닙니까? 신부님 공소장도 그 내용이고요. 신부님, 뭐 큰 거 아닙니다. ‘나는 국법을 지킨다’ 그렇게만 쓰면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래서 김지하와 민청학련, 인혁당 관계자들 모두와 함께 풀려나는 조건으로 각서를 썼다.

그들과 한참 이야기를 한 뒤 방에 들어오니 갑자기 김 추기경 말씀을 거절했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보안과장을 불렀다. “각서 무효다. 원천무효야! 가져와!” 그러나 보안과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며칠 뒤 문이 열리더니 군화를 신은 이들이 들어와 말했다. “출소입니다.” 나는 안 나간다며 각서를 도로 가져오라고 버텼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교도관들 손에 번쩍 들려 승용차에 실렸다. 차 안에는 정보부원 2명이 함께 타고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전주 톨게이트에 오자 정보부 전북지부 쪽 사람들에게 나를 인계했다. 그들은 나를 교구청이 아닌 형님댁으로 데려다 놓으려 했다. 가족들과 주교님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면서. 그래서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성당이 우리 집에 있냐? 교구청 성당도 우리 집에 있어? 교구청에 데려다 놔! 교구청 성당에 가서 성체조배하고 주교님을 먼저 뵈어야 한단 말이야.”

그런 소동 끝에 전주교구청에 도착하니 동료 사제들과 신자들이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성당으로 가서 조배를 하고 김재덕 주교에게 갔다. 그런데 주교님은 나를 보자마자 “자네 각서 썼나?” 하고 무섭게 물었다.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을 했다. 주교님은 화가 나서 당신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김 추기경이 직접 찾아와 말할 때는 사제의 양심에 맡겨달라고 큰소리쳐 놓고 스스로 각서를 쓰고 나와 버렸으니 추기경한테도 미안했다. 괜스레 나를 설득했던 박 목사와 김 신부한테 부아가 치밀었다. 각서는 스스로 써놓고 그들에게 ‘왜 나를 끌어내려 했던 거냐’고 원망을 했던 셈이다.

나중에야 김 추기경이 나를 찾아오기 전 김 주교와 미리 전화통화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김 주교는 김 추기경에게 “우리 문 신부는 그럴 사람 아니야. 끝까지 지키다 올 거야”라고 말했단다. 추기경 역시 내가 각서를 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도 면회를 왔던 거였다. 그때 일은 나 스스로 나를 용납할 수 없는, 나의 상처로 남았다. 성서에 나오는 베드로의 이야기와 같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교회의 반석이 되었다. 교회와 세상 사람들은 베드로를 높이 산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도 베드로의 나약한 행위가 잘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지조를 지키지 못한 베드로처럼 말이다. 그런 체험을 가진 까닭에 전향서를 끝까지 거부한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무척 존경스럽다. 숱한 고문, 공갈과 협박, 유혹과 종용이 있었을 텐데도 자신의 신념을 지킨 그들은 나보다 백배 천배 훌륭한 분들이다.

내가 석방이 된 뒤 감옥에 남은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뿐이었다. 3·1 구국사건으로 구속된 사람은 그해 7월17일 제헌절을 기해 윤반웅 목사와 신현봉 신부가, 12월25일에 함세웅 신부, 31일에는 문익환·문동환·서남동 목사와 이문영 교수 그리고 내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나왔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내가 풀려나오자 교구 밖에서는 석방 환영 미사도 하고 분주하게 오갔지만 정작 전주교구에서는 환영 미사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만큼 김 주교의 뜻이 강고했다. 그건 마땅한 일이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진실을 지키는 데 그만큼 나약했기 때문이다. 김 주교를 비롯해 지지해준 이들에게 보답을 다하지 못한 것이 지금껏 짐으로 남는다. 베드로의 눈물이다. 나는 그 상처를 평생 마음에 안고 가야 한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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