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다시 감옥으로…담장 넘어 날아든 10·26 소식 / 문정현

등록 2010-06-29 21:45수정 2010-06-30 08:17

‘3·1 명동사건’으로 구속됐다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던 필자는 1979년 7월 영문도 모른 채 홍성교도소에 재수감됐다. 사진은 그해 10·26 사태 이후 전주교구 사목국장 김봉희 신부가 면회를 마친 뒤 다시 감방으로 들어가는 필자를 멀리서 찍은 것이다.
‘3·1 명동사건’으로 구속됐다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던 필자는 1979년 7월 영문도 모른 채 홍성교도소에 재수감됐다. 사진은 그해 10·26 사태 이후 전주교구 사목국장 김봉희 신부가 면회를 마친 뒤 다시 감방으로 들어가는 필자를 멀리서 찍은 것이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22
1979년 역시 살벌하게 시작됐다. 정부의 탄압은 날로 가혹해졌다. 민주세력은 원로들을 중심으로 ‘3·1절 60돌에 즈음한 민주구국 선언’을 발표하고, 정의구현사제단은 ‘민주·민족·민생의 복음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그로 인해 종교인들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연금·연행·구금·납치·조사·구속이 이어졌다. 4월16일에는 중앙정보부가 이른바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을 발표하면서 한명숙·신인령 등 7명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시켰다.

그 무렵 전주 경찰국장이 성당 사무실과 성당회장을 통해서 의논할 게 있다며 계속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7월26일 내 발로 경찰국장실로 들어갔더니 그가 말했다. “신부님, 제가 어제 신부님 꿈을 꿨는데 제 손과 신부님 손이 이렇게 합쳐지다가 다시 합치질 못하고 떼어지던데요.” 알고 보니 나를 구속하려는 것이었다. 형집행정지를 취소하고 나를 강제로 연행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날 테니 내 발로 국장실로 들어오게 유인을 한 것이었다.

나는 경찰국장에게 말했다. “좋소. 가겠소. 가는 마당에 김재덕 주교님은 뵈어야겠소. 내가 갈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니 주교님을 모셔 오시오.” 그래서 김 주교님을 모시고 인사를 했다. “주교님, 제가 다시 감옥에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효자동성당은 주교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김 주교는 내가 다시 나올 때까지 효자동성당의 본당 신부를 발령 내지 않았다. 주교는 내가 구속되고 없는 빈자리를 자신의 동창인 김영일 신부에게 맡기고도 “파티마 성당의 신부는 문정현 신부다”라고 대외적으로 말했다. 성당에서 적을 빼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전주교도소에 재수감됐다. 그런데 두번째여서인지 이상하게 모든 것이 단념이 되었다. ‘까짓것 징역살이 오래 하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내가 왜 다시 구속됐는지 이유는 몰랐다. 일주일쯤 뒤 홍성교도소로 이감되었는데 전주교도소를 나와 전동성당 앞을 지나는데 종탑에 ‘문정현 신부 석방하라’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중앙성당에도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힘이 되었다.

홍성교도소 역시 방은 좁았지만 햇볕이 많이 들어와 좋았다. 습기가 많지 않고 책 보기도 좋았다. 교도관들도 심하게 괴롭히는 사람이 없고 같이 이야기도 많이 했다. 또 테니스를 할 수 있게 허락해줘서 다리가 시원치 않은데도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 창문을 통해서 누군가가 “신부님, 신부님” 하고 불렀다. “박정희가 죽었어요.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이랑 박정희를 죽였어요.” 10·26 사태가 터진 것이었다. ‘뭔가 큰 변화가 오겠구나’ 예감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마다 교도소 순시를 도는데 교도소장부터 교도관까지 모두 다 군복을 입었다.

‘유신정권’이 종지부를 찍는다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지만 곧 공포심이 생겼다. 철창문이 열릴 때마다 ‘나를 데리러 가려고 오는 건가?’ 무서움에 떨었다. 그래서 그 좁은 방을 뱅뱅 돌며 기도를 했다. 묵주기도를 그렇게 열성으로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 생명을 구해달라”는 기도는 물론 아니었다. “내가 끌려가 죽더라도 비굴하지 않게, 당당하게 죽게 해주십시오. 저를 지켜주십시오. 저를 일으켜주십시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그런데 끌어가지는 않고 엿보기만 했다. 그러면서 아침운동도 안 시켜주기에 교도관에게 점잖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가 ‘비상’이라고 했다. 나는 “비상이라도 내가 얻어먹을 것은 얻어먹어야 해. 운동시켜줘”라고 떼를 부려 밖으로 운동을 나갔다. 그리고 모르는 척 물었다. “태극기가 왜 조기로 걸려 있습니까?” 교도관은 그걸 왜 자기한테 묻느냐며 화를 냈다. 그러나 다음날, 교도소장이 부르더니 말했다. “신부님이 눈치를 채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를 당했습니다.” 내가 물었다. “시해라는 말은 죽었다는 말이냐?”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예,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하고 경호실장 차지철도 죽였습니다. 더는 묻지 말아주십시오.”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 뒤는 면회가 자주 허락되었다. 전주에서 김 주교가 다녀가고 사목국장 김봉희 신부도 다녀갔다. 그때 김 신부가 멀리서 면회를 하고 들어가는 내 모습을 찍었는데, 그것이 수의를 입고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이다. 면회 오는 사람마다 추워지기 전에 풀려날 거라고 했지만 석방은 금방 되질 않았다. 마음이 심란하니 징역살이가 더 지루해졌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