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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재수감 이유 알고보니 ‘오원춘 사건’ 때문 / 문정현

등록 2010-06-30 22:42

1979년 8월6일 안동성당(현 목성동 주교좌성당) 입구에 특별기도회를 알리는 펼침막이 내걸린 가운데 김수환 추기경(위쪽)이 ‘오원춘 사건’으로 성직자들이 구속된 사태와 관련해 유신정권을 규탄하는 시국 강론을 하고 있다.
1979년 8월6일 안동성당(현 목성동 주교좌성당) 입구에 특별기도회를 알리는 펼침막이 내걸린 가운데 김수환 추기경(위쪽)이 ‘오원춘 사건’으로 성직자들이 구속된 사태와 관련해 유신정권을 규탄하는 시국 강론을 하고 있다.
1979년 7월 내가 재수감된 것은 유신정권의 중간권력자들이 천주교회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벌인 ‘오원춘 사건’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사건을 조작하면서 그 진실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나와 함세웅 신부를 ‘형집행정지 취소’로 서둘러 구속시킨 것이었다.

오원춘 사건은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청기분회장인 오원춘을 경찰이 납치해 울릉도에 유기하면서 비롯됐다. 78년 경북 영양군청은 농민들에게 감자 씨앗 ‘시마바라’를 권장했다. 농민들은 관에서 권장하는 일이니 그 종자를 다 사서 심었지만 종자 자체가 불량품이었는지 대부분 싹이 나오지 않아 폐농하고 말았다. 그러자 가톨릭농민회 회원이었던 오원춘은 그해 10월 ‘청기면 감자피해보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는 안동교구 사제들, 가톨릭농민회와 함께 당국의 온갖 공갈과 협박,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 79년 봄, 34농가의 피해보상을 받아냈다. 이 감자 피해 보상 사례가 농민회 소식지 <파종>에 실려 전국에 알려지게 되자 경찰이 소식지를 빼돌리고 오원춘을 납치해 겁을 주는 비겁한 행위를 한 것이었다.

78년 5월5일 오원춘은 영양 버스정류장에서 납치당해 이유 없는 폭행을 당한 뒤 울릉도에 버려다가 보름 만에 영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영양천주교회 정희욱 신부에게 납치 사실을 고백했다. 정 신부는 두봉 주교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두봉 주교는 당시 안동교구 사목국장이던 정호경 신부에게 이 사건을 조사하게 했다. 안동교구 신부들은 6월27일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조사과정에서 과장이나 허위사실이 드러나면 즉시 중단하고 오원춘의 인격이 훼손되거나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사건을 드러내지 않기로 결의했다. 사제단이 이런 원칙을 전하자 오원춘은 사건이 알려져 위협과 곤욕을 당하더라도 다시는 이런 고통을 당하는 형제들이 나오지 않게 발표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양심선언에 동의를 했다.

안동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안동교구 사제단은 2차에 걸쳐 오원춘 사건을 꼼꼼히 조사하고 7월17일 결과를 발표했다. 그때부터 경찰은 오원춘을 빼돌리려고 혈안이 되었다.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오원춘 사건이 점점 알려지자 경찰은 끝내 7월21일 현장검증을 빌미로 오원춘을 빼돌려 자신의 주장이 허위라고 자백하게 만들었다. 또 오원춘이 여자와 불미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식의 소문을 퍼뜨렸다.

경찰은 7월25일 교구청과 성당을 포위하고 조사를 빌미로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권종대 회장과 정재돈 총무, 정호경 신부를 연행했다. 이에 천주교에서는 8월6일 안동의 목성동 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김재덕 전주교구 주교가 직접 나서 ‘교권 및 신앙자유 수호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정부가 나서서 진실을 왜곡하고 주교관에 경찰이 난입하여 신부를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종교를 탄압하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정부에 항의했다. 그 뒤 기도회는 다른 교구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경찰은 오원춘·정 신부·정 총무를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하고 유강하 신부를 수배했다. 8월10일, 국내 대부분의 언론에는 오원춘 사건은 오로지 오원춘 개인이 조작했으며 정 신부와 정 총무는 이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유인물을 인쇄·배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유포한 것이라고 실렸다. 당국은 이들의 구속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농민들이 죽창까지 들고 시위를 벌였다는 진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정의구현사제단과 김정남, 그리고 유현석·황인철 변호사 등은 오원춘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재판이 진행되는 중 사제단과 변호사들은 오원춘이 술집여성과 불미스러운 관계를 맺었다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해 제시했지만 오원춘은 검사의 눈치를 보며 계속 진술을 번복했다. 오원춘은 안동교구 두봉 주교의 신임장을 가져간 이건호 변호사에게 자신이 납치된 것이 틀림없다고 다시 말했지만 9월4일 공판에서는 검찰의 기소 내용이 사실이라고 했다. 재판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울화를 못 이긴 황인철 변호사는 엉엉 울었고 이돈명·유현석·조준희·홍성우·이건호 변호사도 함께 분루를 삼켰다고 했다. 더 서글픈 일은 그때 정부의 편에 선 주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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