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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노동운동 만나게 한 태창메리야쓰 노조 탄압 / 문정현

등록 2010-07-06 23:27

1983년 7월 필자가 주임을 맡고 있던 전주중앙성당에서 열린 ‘고통받는 노동자를 위한 기도회’를 마친 뒤 태창메리야쓰 해고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자들이 거리시위를 나서려다 경찰과 대치하자 신부들이 노동자들 주위에 둘러서서 안전판 구실을 하고 있다.
1983년 7월 필자가 주임을 맡고 있던 전주중앙성당에서 열린 ‘고통받는 노동자를 위한 기도회’를 마친 뒤 태창메리야쓰 해고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자들이 거리시위를 나서려다 경찰과 대치하자 신부들이 노동자들 주위에 둘러서서 안전판 구실을 하고 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27
1970년대 말부터 활발해진 여성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활동은 섬유노조를 중심으로 여성 조합장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민주노조를 탄압해 80~82년 사이 동일방직, 반도상사, 원풍모방, 청계피복노조가 강제로 해산되거나 와해되었다. 내가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무렵이다.

당시 전북지역에는 한국노동청년회(JOC)에서 상근간사로 일하며 와이에이치(YH) 노조 지원활동을 했던 이철순이 79년부터 익산에 내려와 살면서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야학을 하고 있었다. 그가 창인동성당에 ‘노동자의 집’을 만든 뒤에는 노동운동이 더 활발해졌고 서울 쪽 노동운동가들도 전주에 자주 내려왔다. 그래서 나도 제이오시 전국회장이었던 이창복·정인숙, 동일방직 지부장 이총각, 원풍모방 부지부장 박순희 등의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을 통해 구체적인 노동현장의 실정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노동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60년대 후반 전동성당 보좌신부 시절 노동자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는 노동운동에 대해 잘 몰랐다. 78년 4월 동일방직 노동자 124명이 무더기로 해고되었을 때는 당시 사목국장이었던 리수현 신부와 함께 전주 가톨릭센터 옥상에서 동일방직 사건에 대한 유인물을 뿌렸다. 그때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이 싹튼 셈이었다. 이후 82년 전북지역에서 유일한 민주노조였던 태창메리야쓰 노조 탄압 사건을 겪으면서 노동운동의 일선에 나서게 되었다.

태창메리야쓰에 민주노조가 생긴 것은 81년 제이오시 회원인 박복실이 위원장에 뽑히면서다. 그는 회사 쪽의 부당노동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그런데 82년 4월3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최기식 신부가 연행되자, 태창 쪽에서 제이오시를 불순세력이라고 몰아가면서 거짓 소문을 냈다. “창인동성당 김영신 신부도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며, 제이오시도 도시산업선교회 계열이다. 제이오시가 들어오면 회사가 망한다.” 그런 가운데 82년 5월29일 태창 노조의 새 위원장 선거에서 민주노조인 문진주가 당선됐다. 그러자 회사와 반노조 세력은 대의원대회를 방해하고, 위원장과 대의원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8월3일 태창 쪽은 끝내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강제해고했다.

그때부터 태창 노동자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해고노동자들 중에는 제이오시 회원이 많았는데 회사 쪽과 정보기관은 합세해 이들을 용공으로 몰며 흑색선전을 했다. 당시 전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었던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했다. 정평위에서는 태창메리야쓰 사건은 단순히 한 회사에서 자행한 노동자 탄압 사건이 아니라 전두환 정권이 집권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조직적으로 민주노동운동을 탄압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태창의 해고노동자들은 다른 공장에 들어갔지만 그들이 제이오시 회원이고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다시 해고되었다. 소기화·박복실·문진주·김덕순·박종순·김선옥 6명의 해고자는 83년 7월7일 ‘태창은 해고자를 모두 즉각 복직시켜라’고 주장하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전주교구 사제단은 창인동성당에서 ‘부당해고자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전주교구 각 성당마다 ‘태창 해고노동자 복직, 노조 탄압 중지’라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전주교구 전체가 한마음으로 노동자의 탄압에 항의하고 노동자들의 아픔에 함께한 것이다.

83년 7월26일에는 내가 주임신부로 있던 중앙성당에서 ‘인권 회복을 위한 전국 기도회’를 열어 태창사건·오송회·부산미문화원 사건에 대해 보고했다. 그 기도회에는 전주교구 사제들뿐 아니라 광주·원주·서울·인천·안동 교구의 사제들과 신자 1000여명이 모였다. 민통련 의장 이부영, 문익환 목사, 이창복, 김근태, 윤순녀·박순희·이영순 등 여성 노동운동가들을 비롯한 재야운동가들도 참석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태창메리야쓰 민주노조 운동은 이듬해까지 계속되었고 중앙성당 주임신부로서 태창을 비롯한 노동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계급적 의식은 전혀 없었다. 노동자들이 사회의 구조적 악으로 탄압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노동자의 아픔에 동참하지는 못하고 그저 한명의 지도자로 군림했을 뿐이다. 그 점이 지금도 아쉽다. 내가 노동자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노동운동에 좀더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된 것은 88년 창인동성당으로 옮겨간 뒤였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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