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성당에 건 ‘오송회는 조작’ 펼침막 내걸었더니 / 문정현

등록 2010-07-07 19:23수정 2010-07-07 22:50

1982년 11월 이른바 ‘오송회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7년형을 받은 군산제일고 교사이자 시인 이광웅(왼쪽)씨는 4년8개월 만인 87년 사면을 받아 풀려났으나 92년 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금강 하굿둑에 있는 그의 시비(오른쪽)에 친필시 ‘목숨을 걸고’가 새겨져 있다.
1982년 11월 이른바 ‘오송회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7년형을 받은 군산제일고 교사이자 시인 이광웅(왼쪽)씨는 4년8개월 만인 87년 사면을 받아 풀려났으나 92년 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금강 하굿둑에 있는 그의 시비(오른쪽)에 친필시 ‘목숨을 걸고’가 새겨져 있다.
내가 전주 중앙성당에 있을 때 겪은 또하나의 큰 일은 이른바 ‘군산 오송회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82년 전두환 정권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공안조작사건이다.

군산제일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이광웅 시인은 선배 신석정 시인 집에 있던 오장환 시집 <병든 서울>을 복사해 갖고 있었다. 그 시집을 동료 교사들과 나눠 보기 위해 다시 복사를 했고, 박정석 선생이 갖고 있던 복사본을 서울대에 다니던 한 제자가 빌려가서 버스에 두고 내렸다. 그 시집을 버스 안내양이 발견해 경찰에 갖다 주자, 경찰은 전북대 철학과 한 교수에게 시집의 내용에 대해 감수를 구했다. 그 교수는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 등의 구절을 지적하며, 지식인 고정간첩이 복사해 뿌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경찰은 시집 겉장을 싼 종이가 인문계 고교 국어 시험문제인 것을 단서로 석 달 이상을 추적해 82년 11월2일 이광웅 시인을 비롯해 독서모임을 꾸린 교사들을 비밀리에 연행했다. 대공 경찰은 43일 동안 교사들에게 북한의 연계 여부, 광주항쟁의 중심인물인 윤한봉과의 관계를 추궁하며 통닭고문, 전기고문, 물고문 등으로 위협한 끝에 ‘오송회’라는 반국가단체를 조작해 발표했다. 사실 오송회란 이름도 당국에서 지어줬다. 82년 4월19일 교사 5명이 학교 뒷산 소나무 아래서 4·19혁명이 국가기념일에서 제외된 것을 한탄하며 막걸리를 마시고 4·19와 5·18 희생자를 위해 잠깐 묵념을 했다고 붙였단다.

나는 서울의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에 이 사건의 전말을 전하고 변호인단을 구성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오송회를 널리 알리기 위해 중앙성당에다 펼침막을 걸기로 했다. 그런데 안기부 사람이 오더니 내게 넌지시 말했다. “신부님 현수막을 걸려면 빨간 바탕에 쓰십시오, 정보계통이 예민하게 받아들입니다.” 나는 그 말대로 빨간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오송회는 조작이다’라고 써서 중앙성당 입구에 걸었다. 중앙성당은 전주시를 관통하는 가장 큰 도로 옆에 있다. 주변에는 전주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 있고,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 정류장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런 까닭에 대형 펼침막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기부에서 왜 현수막을 빨강색으로 걸었느냐고 따져 물었다. 나는 “아니, 우체국이랑 소방서 가면 다 빨강이던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받아쳤다.

83년 전두환 대통령이 전북도청으로 시찰을 나오게 되자 안기부 쪽에서 그 펼침막을 대통령이 지나갈 때만이라도 떼어달라고 사정을 했다.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날짜가 임박하자 급해진 안기부 쪽에서 협상을 해왔다. 펼침막을 내려주면 오송회 사건을 8월15일 안으로 풀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목회 임원인 오종원·차규복과 같이 안기부 전북지부로 갔다. 안기부 실장은 각서를 써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너 믿는다. 인격적으로 믿는다. 약속은 꼭 지켜라” 하고는 펼침막을 잠시 내리기로 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그런데 8월15일이 지나도 오송회 구속자들은 풀려나오질 않았다. 속았다는 생각에 안기부 지부장에게 계속 전화를 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연결을 안 해 주었다. 그래서 승용차를 타고 안기부로 들어갔다. 정문에서부터 곧장 차를 몰아 현관에 세웠다. 안기부 직원들은 내가 당당하게 들어오니까 지부장하고 약속이 되어 온 줄 알고 인사까지 하며 안내를 했다. 지부장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따져 물었다. “당신 8월15일까지 오송회 풀기로 약속했어 안 했어?” 그러자 그는 “아, 신부님 어떻게 제가 그런 약속을 합니까?”라며 얼버무리려 했다. “뭐? 정말로 약속 안 했어?” 세 번을 더 묻고 나서 나는 책상을 뒤엎고 화분을 내던지며 항의했다. 그 사이 직원들이 들어와 나를 말리자 지부장은 “이건 문정현 신부와 내 개인 일이다”라며 직원들을 내보냈다. 그렇게 그한테 욕설을 퍼붓고 한바탕 분풀이를 했지만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일이 있은 뒤로 안기부 전북지부는 정문에서 현관까지 직선으로 나 있던 길에 담을 지그재그로 쌓아 한 번에 들어가지 못하게 공사를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셈이다.

하지만 그들은 진짜 고쳐야 할 것은 끝내 고치지 못했다. 1심에서는 선고유예로 9명 모두 석방됐던 오송회 사건 관련자들은 2심 재판 때 모두 법정구속을 당했고, ‘조작사건’이라는 재심 판결이 나온 2008년 11월25일까지 오랜 세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