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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백주에 백암온천 납치…단식으로 사과 받아 / 문정현

등록 2010-07-14 18:34

‘3·1 명동성당 사건’ 이후 3·1절 때마다 격리를 당해온 필자가 1985년 3월1일 정보과 형사들에게 납치돼 경북 울진의 백암온천까지 끌려갔다 온 뒤 전주교구청에서 7일째 항의 단식을 하고 있다.(왼쪽) 당시 전주 가톨릭센터와 전주교구 산하 성당마다 ‘문 신부 납치사건’을 규탄하는 펼침막을 내걸고 정보 당국의 사과를 요구했다.(오른쪽)
‘3·1 명동성당 사건’ 이후 3·1절 때마다 격리를 당해온 필자가 1985년 3월1일 정보과 형사들에게 납치돼 경북 울진의 백암온천까지 끌려갔다 온 뒤 전주교구청에서 7일째 항의 단식을 하고 있다.(왼쪽) 당시 전주 가톨릭센터와 전주교구 산하 성당마다 ‘문 신부 납치사건’을 규탄하는 펼침막을 내걸고 정보 당국의 사과를 요구했다.(오른쪽)
문정현-길 위의 신부 33
전북 장수 장계성당 시절 잊을 수 없는 일은 내가 백암온천으로 납치됐던 사건이다. 안기부나 경찰에서는 해마다 3·1절만 되면 나를 밀착감시했다. 1985년 3월1일에도 미사를 끝내고 낚시를 하러 방죽으로 가고 있는데 경찰 오토바이와 순찰차가 내 차를 가로막았다. 정보과 형사들이 나를 자기네 차에 강제로 실었다. 안 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차는 장수 읍내를 지나서 88고속도로로 나갔다. “야, 이놈들아, 낚시 가는 사람을 무조건 끌고 가는 게 어디 있어?”라고 소리쳤지만 대꾸도 안 했다.

내가 탄 승용차에는 안기부 계장과 전북 경찰 4명이 타고 앞뒤로 승용차가 호송하듯 따라붙었다. 79년 말 감옥에서 나온 뒤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나는 있는 힘을 다 써서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경찰이 팔짱을 끼고 있는데도 손을 뻗어 차 시트, 천장, 문짝을 다 쥐어뜯고 옆으로 누워 발로 유리창을 깨려고 하다 애먼 문짝만 물러나게 했다. 장계에서 포항까지 그러고 갔으니 나나 경찰이나 다 힘이 빠졌다.

도중에 경찰들만 점심을 먹고 동해안 쪽으로 다시 출발했는데 포항에서부터 ‘울진’ 이정표가 보였다. 그렇게도 멀까? 한참 만에 백암온천 표시를 보았다. 오줌이 마려워서 “너희는 똥도 안 싸고, 오줌도 안 싸냐? 화장실에 가자” 했더니 인적 없는 데다 차를 세워주었다. 나는 오줌을 싸고는 내 손안에 들어가는 돌을 주워서 차를 타는 척하며 앞유리를 깨버렸다. 유리가 깨져 쏟아져 내렸다. 그 길로 뒤창의 유리도 깨버렸다. 그리고 차 위로 올라가 마구 발을 굴렀다. 그 차는 ‘포니’였는데 차 지붕이 양철통처럼 푹푹 들어갔다. 차에서 내려와서는 백미러도 발로 차서 뒤로 젖혀놓았다.

경찰과 안기부 직원들은 기가 막힌 듯이 바라보고만 있다가 차를 돌렸다. 그때 안기부 직원이 차를 타고 따라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의 지시를 받고 차를 돌린 것이다. 그때부터 안기부 차의 거동을 주시했다.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는 3월 초에 앞뒤 창이 없는 차를 타고 달리니 이만저만 추운 게 아니었다. 날이 저물자 형사들은 몸을 떨면서 계속 욕지거리를 해댔다.

그렇게 장계로 되돌아오는 길에 번암지서에 서더니 경찰들이 내려 전화를 걸고 뭔가 의논을 하는 것 같았다. 그사이 나는 뒤에 따라오던 안기부 차마저 작살을 내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실을 간다고 내려 돌을 주워서는 그 차의 유리창을 깨고 차 위로 올라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안기부 너희가 더 나빠. 너희도 이제부터 고생해봐.” 경찰과 안기부 사람들이 얼마나 질렸는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날 밤 나를 짐짝처럼 장계성당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분노가 치민 나는 성당 주변에서 커다란 돌을 구해 차에 싣고 장계 지서로 갔다. 나를 데리고 갔던 경찰과 안기부 직원들이 거기 모여 있었다. 나는 싣고 간 커다란 돌로 현관 대형 유리창을 깨버렸다. 정보과 형사들이 우르르 나와 나를 잡으려 했지만 누군가가 그냥 놔두라고 했다. 나는 다시 그 돌을 차에 싣고 전주 경찰국으로 갔다. 그리고 그 돌로 정문을 깨뜨리고 경찰청장실로 들어가 “안기부, 경찰청장 너희들이 시킨 거니까 박정일 주교한테 사과해!”라고 소리를 쳤다. 그 자리에서 단식을 선언한 나는 그길로 전주교구청으로 가 농성을 시작했다. 열흘 남짓 만에 사과를 받아낸 박 주교의 요구로 분이 풀리지 않은 채로 단식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돌이켜보면, 장계성당에서 나는 비로소 민중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지학순 주교의 구속과 인혁당 가족들과 만남을 시작으로 이른바 운동권 신부가 된 이후, 처음에는 주로 재야인사를 만났지만 그 길을 계속 가다 보니 그 길 위에서 고통 받는 민중들을 만나게 되었다. 예수님이 길 위에서 민중들을 만났듯이 나도 그 길을 좇아가게 된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기 전주 중앙성당에서 노동자·농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고통 받는 농민, 깨어 있는 농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것은 장계성당 때였다. 작은 자매의 집도 농민운동을 하다 우연히 시작한 것이었다. 이후 내가 장계성당에서 창인동성당으로 옮겨가 노동·평화운동으로 지평을 넓히지 않았더라면 작은 자매의 집은 아마 꽃동네처럼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을지 모른다. 본당 사목과 사회운동, 작은 자매의 집을 같이 하며 균형을 잡았던 것은 백번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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