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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물안경·마스크 쓰고 “최루탄 무섭다면 나처럼…” / 문정현

등록 2010-07-29 19:19

문정현-길 위의 신부 44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 익산 창인동성당 시절, 시내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하면 삼남극장 골목과 중앙시장 사거리에서 경찰과 맞붙었다. 시위대가 한곳에 몰려 있을 때 최루탄이 터지면 꼼짝없이 눈물 콧물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저마다 최루탄을 피하려고 뛰다 보면 돌멩이에 맞아 나가떨어지고 자동차에 부딪혀 코가 깨지고, 또 신발이 벗겨져도 내팽개치고 달아나야 했던 통에 거리는 쑥대밭이 되었다.

최루탄과 엮여 기억나는 시위는 ‘박창수 의문사 진상규명 대회’다. 90년 들어 노태우 정권의 전노협과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던 와중이었다. 91년 5월6일 새벽 한진중공업의 박창수 노조위원장이 안양병원 마당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박 위원장은 전날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이마에 세로 6㎝의 상처가 나서 안양병원으로 이송돼 입원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노조 파괴 공작을 자행해왔던 안기부는 그의 부상과 사망 경위에 대해 몇번씩이나 번복을 했다.

처음에는 공놀이를 하다가 다쳤다고 하다가 나중엔 콘크리트 모서리에 이마를 박아 자해했다고 말하는 등 일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입원실에서 도망쳐나와 자살했다는 사람이 왜 6층 옥상까지 링거병을 끌고 갔는지, 20m 높이에서 추락한 사람이 왜 하늘을 향해 누운 채 죽어 있었는지, 발목 외에는 뚜렷한 외상이 없는 까닭은 무엇인지…,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유족과 노동자들 쪽에서 부검을 요청했고 검찰도 받아들였다. 그런데 17시간 만에 검찰은 영안실을 부수고 들어가 주검을 탈취하더니 부검 결과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자 ‘박창수 의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투쟁이 안양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익산에서도 시위가 계획된 어느 날, 최루탄을 막는 데 좋다는 물안경을 샀다. 또 마스크는 농민들이 농약을 칠 때 쓰는 걸로 구하고 복대에는 치약도 챙겨 넣었다. 경찰에 밀리고 밀려 시장 골목에 시위대 몇명이 몰려 있을 때였다. 나는 노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시위대 앞으로 나와 서서 외쳤다.

“전경들이 와도 도망가지 마세요. 최루탄이 무서우면 나처럼 하세요” 하면서 사가지고 간 물안경을 쓰고 치약을 꺼내 눈밑 코밑에 바르고 마스크를 썼다. “이러면 최루탄 냄새를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내 얘기가 재미있었던지 시장 골목의 상인들도 몰려들었다. 그러자 경찰은 갑자기 시위대가 커진 줄 알고 최루탄을 쏘아댔다. 상인들은 놀라서 흩어졌다. 나는 마침 물안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게 다가가 한 경찰 간부의 허리춤을 붙잡고 항의했다. 부하들이 달려들어 나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나동그라진 내 몸 위에 최루가루를 흠뻑 뿌렸다. 전투경찰들은 주검인 양 내 몸뚱이 위로 넘어갔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 시민이 최루가루로 뒤범벅이 된 나를 업고 병원으로 가준 덕에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 옆에 노동자의 집 대표 오두희도 함께 있었지만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두고두고 미안하다. 이처럼 경찰 최루탄에 맞서보려고 별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실상은 기대와는 달리 혹독했다.

그해 익산 영등동성당 사목회 임원들이 노동자의 집을 폐쇄해야 한다는 뜻을 자기네 주임신부에게 전했다. 안복진 주임신부는 익산지구 지구회의에 이 사안을 안건으로 내놓았다. 노동자의 집을 없애려면 익산지구 지구회의에서 결정해 교구의 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지구장은 나였다. 나는 지구회의에 참여해 임원들에게 말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여러분 생각해 보시오. 박정일 주교님은 운동권을 지지하는 분이 아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창인동성당 구내에 노동자의 집을 승인한 분이 박 주교님이다. 노동자의 집은 교황 레오 13세의 ‘새로운 사태’의 정신을 바탕으로 외국의 원조를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운 사태’는 세계사로나 교회사로나 기념비적인 문건이다. 산업혁명을 겪은 뒤 사회나 교회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 제대로 없을 때 발표된 ‘새로운 사태’는 지구촌 노사관계에서 표준양식처럼 되었다. 바로 그 헌장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 노동자의 집이다. 노동자의 집은 창인동성당이 아니라 하더라도 익산 어디에든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를 없애는 결의를 한다는 것이 올바른 신앙행위라고 생각하는가?” 그 일은 그렇게 유야무야되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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