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월22일 성균관대 수원캠퍼스에서 전국 14개 지역 노조협의회와 2개 업종 노조협의회가 주축이 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립대회가 열리고 있다. 87년부터 시작된 노동자대투쟁의 첫 결실이자 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결성의 출발점이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45
1987년 울산에서 시작된 노동자 대투쟁은 88, 89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건설의 불길로 이어지며 전국으로 퍼져갔다.
전북에서도 88년 본격적인 임금인상 노동자 대투쟁을 시작으로 89년 전북지역노동조합협의회(전북노련)를 결성했다. 전북에서 가장 먼저 투쟁을 시작한 곳은 택시노조였다. 택시노동자들은 정보가 빠르고 감각이 뛰어난 편이었다. 익산뿐 아니라 전주에서도 택시가 먼저 앞장섰고, 그 뒤로 제조업이 따라가서 민주노조 운동이 활기를 띠었다.
‘노동자의 집’에서는 노조 상담을 해주고 현장에서 노조가 만들어지면 지원활동을 했다. 그래서 전주·익산·군산의 노동자의 집은 전노협의 지역조직인 전북노련으로 가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 나는 그 세 곳의 책임신부였고, 전주교구 노동사목위원회의 위원장을 4년 동안 맡았다. 노동자의 집은 정보기관이나 기업체 등 반노조 세력의 표적이었고 나는 노동자의 집을 지키는 울타리 구실을 해내야 했다.
노동자의 집처럼 가톨릭 정신에 따라 노동운동을 하는 가톨릭 노동사목은 서울·부산·인천·부천·대구·전주·구미·광주·성남·안산의 교구마다 한두 곳이 있었고 각 지역 노동사목은 87년부터 민주노총 출범 때까지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몫을 해왔다. 노동사목에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노동운동에 투신한 활동가들이 많았다. 특히 70년대부터 민주노조 운동을 해온 여성 활동가들인 박순희·정인숙·이총각·조금분이 지역 노동사목 책임실무자로 일했다. 전주교구 노동사목인 노동자의 집에는 박순희·오두희 같은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전국 가톨릭 노동사목의 연대에도 큰 구실을 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익과 결속을 위해 전국에서 들고일어났고, 정부와 자본가들은 전노협 건설을 막기 위해 엄청난 탄압을 하고 있었다. 노동사목은 전노협 결성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보수적인 교회 인사들은 노동사목을 못마땅해했고 주교들도 무척 버거워했다. 노동사목은 현장 중심의 활동을 바탕으로 진보적인 노동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노동사목은 ‘지오세’(가톨릭노동청년회)와는 활동이 구분되었다. 지오세는 70년대 말 80년대 초까지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민주노조 운동을 지원하고 노동사목의 모태가 되었지만, 그 무렵에는 회원들 중심의 교회 내 노동자운동을 지향했다. 지오세는 주교단의 공인단체이지만, 노동사목은 가톨릭신자인 노동운동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탓에 주교단의 공인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주교단은 교회 내의 공인과 비공인이라는 기준을 내세우며 가톨릭 노동사목을 교회 안에서 배제하려 했고, 심지어 ‘가톨릭’이라는 말을 빼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특히 서울교구·대구교구·수원교구에서는 교구 이름으로 노동사목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천교구·부산교구·전주교구에서는 산하 노동사목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그나마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공인과 비공인의 문제로 가장 큰 갈등이 빚어진 곳은 수원교구의 반월노동사목에서였다. 반월공단은 70년대 말부터 경기도 안산시에 조성한 공업지역이다. 90년 당시에는 염색, 도금, 피혁 같은 유해업소가 밀집해 있고 자동차부품회사, 제약회사, 식품회사가 들어 서 있었다. 반월공단의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유해한 작업환경으로 인한 산업재해와 직업병이 빈발하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있었다.
85년까지 안산지역에는 가톨릭노동청년회 지회인 ‘장미회’가 있어서 원곡공소(현 원곡성당)의 교리실을 빌려 노동야학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의 기리암 신부와 계인선이 지도투사로 활동하며 5명의 투사를 양성하였고 회원도 30~40여명이 되었다. 86년 1월에는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본격적인 노동사목 활동을 하기 위해 원곡성당에 노동사목 상담소를 개설했다. 87년 2월 부임한 모리세이 미카엘 신부는 공단 노동자들을 위한 사목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조여옥을 비롯한 노동사목 실무자들을 성당 안에서 일하게 했다. 반월 노동사목은 노동자 교리와 피정, 신심활동과 더불어 산업재해·체불임금·부당해고 따위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률상담과 노동자 교육활동을 활발히 했다. 처음 노동사목을 시작할 때는 편견으로 원곡성당 신자들의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오해가 풀리고 89년부터는 성당에서 다달이 정기적인 활동지원금을 지급받았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문정현 신부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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