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5월3일 미국 뉴욕주에 있는 메리놀신학교 대학원에서 1년 반 만에 석사과정을 마친 필자(왼쪽)가 졸업식에서 학장한테 축하를 받고 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51
메리놀신학교 대학원에서 내 졸업논문의 주제는 ‘교회 안의 공인과 비공인의 문제’였다. 한국 교회에서는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가 복을 실천하기 위해 하는 일이라 해도 제도교회의 인준을 받지 않은 활동은 인정받지 못했다. 교회는 그런 활동을 반교회적인 것처럼 매도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역사는 비공인으로 시작되었다.
18세기 후반의 유학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영세자였던 이승훈은 1784년 중국에서 교리서적과 십자고상·성화·묵주 등을 가지고 와 이벽·최인길과 함께 권일신·정약용 형제에게 전도를 하고 스스로 영세를 집전했다. 또 다음해에는 명례동의 중인 김범우 집에서 한국 최초의 천주교회를 창설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신앙모임을 갖고 교리서를 한글로 번역해 배포하다가 을사추조 적발사건에 걸려 배교를 하지만 몇 년 뒤 다시 비밀리에 복교하여 자치적인 교회활동을 하고 이승훈은 스스로 성사를 집행하기도 했다. 1789년에는 베이징으로 사람을 파견해 조선 자치교회의 존재를 알리고 조상 제사에 대한 교리 해석과 성직자 파견을 부탁했다. 그러나 베이징 교구장은 조상의 제사를 허락하지 않았고 자치교회도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 천주교회는 그제야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해 국가의 박해를 무릅쓰고 나섰다.
그렇다면 성직자가 없던 시절의 천주교는 공인된 교회가 아니니 천주교회가 아니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핵심은 복음정신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의 천주교 자체가 비공인으로 시작됐듯, 가톨릭 농민회, 가톨릭 노동사목 모두 공인된 교회가 하지 못한 복음 실천을 앞서서 한 것이다. 그것은 훌륭한 복음정신이고 그 활동을 교회가 배척할 수는 없는 것이다. 논문을 쓰면서 교계 제도, 성직 제도보다 복음정신으로 사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 복음정신에 따라 억압받고 가난한 이들 편에 서왔던 정의구현전국사제단 활동도 그 자체로 공인된 활동이었다. 사제는 그 존재 자체가 공인이다.
신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교구를 택하고 신학교 생활을 통해 학식과 영성을 쌓아 신학교와 교구장의 인정을 받고 서품된 공인이다. 사제단은 그 바탕 위에서 인권과 민주화,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했다. 윤리·도덕적, 특히 신앙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사제단은 교구장의 권위를 무시하려 하지 않았고 대화하려고 노력해왔다. 논문을 쓰는 동안 사제단 활동도 복음 실천이었음을 다시 확신할 수 있었다.
교회라는 것은 건물이 아니고 사람들의 모임이다. 초대 교회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거룩한 장소가 되었고 그런 작은 공동체들이 서로 연결돼 복음을 나누고 정보를 나누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건물과 사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성찬례를 한다. 90년대 말부터 기초공동체 운동이 일어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운동마저 한 본당 안의 소공동체를 통해 지역 본당 운영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버렸다. 기초공동체 운동은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복음적 시선으로 분석하고 신앙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을 내린 다음,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관점으로 다시 판단한 뒤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지역의 성당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기초공동체는 말만 사회 안의 교회일 뿐 자기들만의 교회가 되는 사례가 많았다. 늘 그것이 안타까웠다.
1995년 5월3일 나는 1년 반 만에 석사 졸업을 했다. 교수 한 분이 박사과정을 해보자고 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졸업식 바로 다음날, 그동안 타고 다니던 88년형 혼다 어코드 승용차에다 조그마한 밥솥, 아이스박스, 쌀을 싣고 여행을 떠났다. 논문을 쓰는 동안, 미국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와보니 미국의 앞마당이라는 중남미의 현실이 더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40여일 동안 직접 밥을 해 먹으며 미국의 주요도시를 거의 다 돌았다. 때로는 도시와 도시 사이를 12시간 내내 쉬지 않고 운전할 때도 있었고, 몸이 안 좋을 때는 한 도시에 이틀씩 머물기도 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문정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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