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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우리 땅 군산 미군기지의 주소는 캘리포니아?! / 문정현

등록 2010-08-16 20:14수정 2010-08-17 16:13

1998년 3월 군산 미공군기지를 기습방문한 필자를 비롯한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사제 20여명이 비행단장 접견을 요구하고 있다. 긴 실랑이 끝에 ‘민간항공기 활주로 사용료 인상 반대’ 성명서를 전달하고 나온 사제들은 이후 미군기지 출입금지 대상자에 올랐다.
1998년 3월 군산 미공군기지를 기습방문한 필자를 비롯한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사제 20여명이 비행단장 접견을 요구하고 있다. 긴 실랑이 끝에 ‘민간항공기 활주로 사용료 인상 반대’ 성명서를 전달하고 나온 사제들은 이후 미군기지 출입금지 대상자에 올랐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56
군산 시내에서 약 13㎞ 떨어진 옥서면에 있는 미공군기지(울프팩)는 1990년대 당시 면적이 1000만㎡(310만평)나 됐다. 미군 2500명이 주둔하고 있고 한국인 근무자를 합하면 3100명 정도가 상주하고 있었다. 제8전투비행단이 주둔해 F15, F16 같은 전투기가 60대 이상 있었고, 기지 안에는 비행장과 격납고 말고도 야구장·골프장 같은 부대시설이 방대했다. 그런데 93년 대한항공이 군산에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노선을 신설하면서 국내 민간항공사가 미공군기지의 활주로를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 이때 정부는 미국과 ‘군산 미군비행장 공동사용에 관한 합의각서(양해각서)’를 맺고 5년마다 재협상을 하기로 했다. 그 협상의 만료 시한인 97년 12월7일을 앞두고 미군은 갑자기 기존 사용료의 5배가 넘는 인상안을 발표했다.

우리 영토를 빌려 쓰면서 되레 터무니없는 사용료를 내라는 미군의 태도에 군산의 시민운동단체들은 즉시 모임을 꾸리고 반대운동을 하기로 했다. 군산 노동자의 집에서 활동하던 김종섭이 내게 ‘미군기지 사용료 인상 거부를 위한 군산시민모임’의 대표를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나는 오충일 목사, 문재곤 스님과 함께 기꺼이 대표를 맡고 금요일마다 미군기지 정문 앞에서 규탄집회를 시작했다. 뒤이어 오룡동성당을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과 나운동성당의 보좌신부였던 최종수 신부도 가세했다.

그때는 국방부에서도 시민사회단체의 싸움이 협상을 유리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방부 대표단이 군산으로 협상을 하러 내려올 때면 우리에게 날짜와 시간을 미리 알려주었다. 그러면 우리도 바로 집회를 조직해서 반대운동을 했다. 시민모임의 끈질긴 투쟁과 협상 난항으로 늦어진 최종 합의는 협상 기한을 90일 가까이 넘긴 98년 2월27일에야 이뤄졌다. 최종 협상은 인상안 자체를 철회하지는 못하고 어려운 한국 경제를 감안해 5년간 평균 30%씩 점진적으로 인상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국방부에서는 우리 시민모임의 투쟁 덕분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며 군산공항으로 대령을 파견해 보고회를 열었다.

민항기 활주로 사용료 인상안 반대운동을 계기로 미군기지 공여지·자주권·환경·소음·범죄·인권 문제에 대해 총체적으로 깨닫게 된 시민모임은 거기서 투쟁을 끝낼 수 없었다. 그래서 민주노총·군산농민회·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군산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군산미군기지 우리땅 찾기 시민모임’을 만들고 금요일마다 계속 집회를 하기로 했다. 98년 3월에는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사제 20여명이 기습적으로 미군기지로 들어가 비행단장 접견을 요구하고 오랜 실랑이 끝에 성명서를 전달하고 나왔다. 그 뒤 시위에 참가했던 사제들에게는 미군기지 출입금지 조처가 내려졌다.

금요일마다 미군기지 앞에서 열린 집회는 보통 정오에 시작해서 오후 2시 정도에 끝났는데 때로는 길어져 주말에 외출을 나가야 할 미군들의 발목이 잡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자 부근 ‘아메리카 타운’의 주민들이 장사가 안된다며 반발을 해서 수요일 집회로 옮기게 되었다.

미군 쪽은 우리가 미군기지에 접근만 하면 한국 경찰한테 전화를 했다. 또 우리가 공문을 접수시키려 할 때도 경찰이 나서서 저지했다. ‘한국 시민단체가 미군에 공문도 접수시키지 못하냐’고 항의했더니 공문을 울타리 안으로 넘겨 달라고 했다. 그것은 우리를 대화 상대로 취급조차 하지 않는 오만불손한 태도였다.

우리는 공문을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미공군기지 담당자에게 우편물로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공문이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됐다. 우체국장에게 따져 물으니 ‘다 알면서 왜 그러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알고 보니 미공군기지의 주소는 군산이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주였던 것이다. 우편번호조차 미국식이었다. 한국에서 우편물을 보내면 캘리포니아를 거쳐서 다시 군산으로 보내 전달이 되는 상황이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군산 미군기지 근처에 있었던 착한목자회 수녀원의 원장도 ‘미군기지는 미국 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를 지켜달라고 넘겨준 땅’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미군기지 터는 어디까지 미군에게 빌려준 우리 땅이었다. 미군은 그 땅을 사용료 한 푼 내지 않고 어떤 제약도 없이 무기한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곳이 미국 땅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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