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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일 시민단체, 과거사 조사 공유해 신뢰 쌓아야”

등록 2010-08-17 20:13수정 2010-08-17 20:16

히다 유이치 고베학생청년센터 관장이 30여년에 걸친 한-일 시민운동의 교류를 얘기하고 있다.
히다 유이치 고베학생청년센터 관장이 30여년에 걸친 한-일 시민운동의 교류를 얘기하고 있다.
[2010 특별기획 성찰과 도전]
③ 동아시아 시민운동으로
‘강제동원진상규명 네트워크’ 공동대표 히다 유이치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강동위)는 2008년 초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과거사 정리 위원회들의 폐지·축소 움직임 속에서 한때 존폐 위기를 맞았다. 당시 국내의 시민단체 못지않게 사태의 추이를 우려했던 일본인들이 있다. 이들은 강동위의 존속을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청와대 등 국내 정치권에 보내기도 했다. 이들이 구성한 단체 가운데 ‘강제동원진상규명 네트워크’(약칭 진상네트)가 있다. 2005년 7월 도쿄에서 발족식을 하고 활동에 들어간 이 단체의 설립 취지문을 보면 양심적인 일본인으로서의 고뇌가 담겨 있다.

이들은 “본래 가해국인 일본에서 조사기구가 먼저 만들어졌어야 했지만, 우리들의 힘이 부족해 성취할 수 없었다”고 인정하고 적극적 호응을 다짐했다. 각 지역의 전문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진상네트는 자료 입수, 피해사례 조사, 유골 소재 확인 등에 주요한 구실을 했다. 식민지 피해 조사에서 한국의 정부기관과 일본 시민단체 사이의 연계활동이 처음으로 실현된 셈이다.

진상네트의 사무국이 고베학생청년센터(이하 센터)에 있다. 3인 공동대표의 하나인 히다 유이치(60) 센터 관장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고베대학 농학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일제하 조선농민운동> 등의 저서가 있다. 1978년 센터의 주사로 들어와 91년부터 관장을 맡고 있다.

피해사례·유골소재 확인 등
한국 정부기관과 첫 연계
‘조선사세미나’ 38년째 진행

-진상네트 본부가 왜 고베에 있나?

“센터는 조선인 문제와 관련된 역사가 제법 길다. 여기 ‘조선사 세미나’가 꽤 유명하다. 1972년에 시작했으니 38년이나 된다. 재일한국인 실업가로 조선기독교사를 연구하는 한석희란 분이 있었다. 조선 관련 자료들을 모아놓은 ‘청구문고’를 만든 사람이다. 그가 대한제국의 멸망과 항일투쟁을 다룬 매켄지의 책을 번역한 뒤 출판기념회를 센터에서 열었는데 체계적인 조선 역사 강좌를 열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 무렵은 조선사 강좌가 대단히 드물었다.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을 쓴 박경식(1923~98) 선생을 비롯해 유명한 분들이 많이 와서 강연을 했다. 나도 박경식 선생의 제자다. 조선어강좌도 1975년에 시작했다. 처음에는 초급 강좌만 있었으나 1년 뒤 중급, 상급 강좌도 개설됐다.”

-어떻게 박경식 선생의 제자가 되나?

“선생의 꿈은 일본 전역에서 강제연행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70년대에 ‘재일조선인운동사 연구회’를 도쿄에서 만들었고 79년에 간사이지방의 모임도 만들었다. 고베에 후원자가 있어 월 1회 모임을 가졌다. 1990년부터 조선인·중국인 강제연행을 조사하는 시민단체들이 해마다 한번씩 전국교류집회를 열었다. 99년에 일단 끝났고 지금은 다른 형태로 바뀌었지만 그때도 여기가 사무국이었다.”

-재일동포 인권운동을 수십년 전부터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무엇이든 터지면 여기가 중심이었다. 80년대 지문날인 반대운동 때는 효고현 연대회의 본부가 있었고 70년대 히타치의 재일동포 취직 차별이 있었을 때 소송을 지원했다. 그밖에도 공영주택 입주, 연금 가입 문제 등 ‘민족차별과 싸우는 연락협의회’ 등이 구성되면 들어가 활동했다. 지금은 그런 쟁점들이 많이 사라진 반면 스리랑카 등 제3세계에서 온 유학생이나 외국인학교 지원 논의도 한다.”

-마치 운동의 백화점 같은 인상을 받는다. 센터의 정체가 궁금하다. 기독교와 직접 관계가 있나?

“원래는 미국 남장로교회가 1955년 대학생 선교를 위해 ‘롯코그리스도교 학생센터’를 만들었다. 10여년 뒤 센터 운영이 일본기독교단에 넘겨졌고, 다시 ‘사회파 목사’들을 중심으로 단순히 기독교학생센터가 아니라 시민운동, 사회운동의 센터로 하자는 구상이 추진됐다. 1972년 별도의 재단법인을 만들어 현 체제로 출범했다. 여기서 민주주의·인권·환경·난민·기독교 등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 토론회를 연다. 재정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 유스호스텔도 경영하고 회의실 대관 작업을 한다.”

‘YH사건’ 등 한국 민주화 관여
재일동포 인권운동도 수십년
남과 북 양쪽서 비난 받기도

-7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연관이 있다고 하던데?

“나는 간사이지방 도시산업선교를 하는 단체의 성원이다. 일본과 한국의 도시·농촌 선교를 하는 사람들의 교류가 있었다. 지금도 2~3년에 한번은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 오가며 회의를 한다. 처음 한국에 간 것이 78년 동일방직 사태 때다. 당시 조화순 목사를 만났고 와이에이치(YH)무역 사건 때도 갔다. 일본 기독교그룹의 민주화운동 지원활동의 일환이었다. 박형규 목사도 오래전부터 만났다. 한국에 가서 그런 모임에 참석했다가 비자 발급 거부 명단에 오르거나 귀국길에 연행된 사람도 있었다.”

-민주화운동 교류가 어떤 영향을 끼쳤나?

“우리는 주로 기독교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를 했는데 한국에서 농민운동 지도자들이 유기농 실태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함평 고구마 사건의 지도자들이 온 것이 80년께다. 이곳의 유기농단체와 가톨릭농민회가 그때부터 아주 가깝다. 후에 개신교에서도 왔고 명동성당 소비생활조합도 해마다 온다.”

-특별한 지역적 배경이 있나?

“고베대학에 야스다 시게루라는 농업학자가 있다. 지금은 은퇴해 명예교수로 있지만 유기농업학회 회장을 지낸 사람이다. 초대 관장과 야스다 교수가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아 농민들을 설득하는 영상자료도 만들었다. 1973년에 센터에서 식품공해 강좌가 개설됐고, 효고현 유기농업연구회 창립 모임도 여기서 열었다. 유기농작물을 생산하는 그룹과 소비하는 그룹이 빠른 시기에 움직인 것이다. 가톨릭농민회는 처음에 원로 농학자이자 평화운동 지도자인 이누마 지로 교토대학 명예교수를 찾아갔다가 이곳을 거점으로 교류하는 게 좋다고 해 왔다고 들었다.”

-민단과 총련 사이에서 재일동포 문제를 다루는 게 어렵지 않았나?

“우리는 남과 북 양쪽에서 비난을 받았다. 한쪽에서는 북의 앞잡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남쪽 정보기관과 연관된 조직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지만 고베 한국총영사관은 유학생들을 불러서 센터에 가면 안 된다고 경고를 했다. 무리해서라도 일본인 입장에서 한반도 전체를 본다는 자세를 견지해왔기 때문에 좋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일 시민단체가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사실을 조사해 공유하는 것이 중대한 전제다. 이것이 없으면 신뢰가 조성되지 않는다. 신뢰관계를 깊게 해서, 크게 말하면 각기 국익을 넘어서 인류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센터의 직원이 아주 소수인데 어떻게 여러 운동에 관여를 할 수 있나?

“센터의 기본 임무는 세미나를 하면서 유학생 지원 등을 하는 것이다. 진상네트도 사무국이 여기 있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관계하는 것이다. 다른 분야 운동도 비슷하다. 좀 미묘한 문제이기도 하다.”

고베/글·사진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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