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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썩은 기름 서해로 쏟아내는 미군을 막아라 / 문정현

등록 2010-08-17 21:43

1998년 5월8일 필자가 주임신부를 맡고 있던 전북 군산 오룡동성당에서 ‘군산미군기지 우리땅 찾기 시민모임’ 결성식이 열렸다. 앞줄 왼쪽부터 김연태 군산대 노조위원장, 한상렬 목사, 필자, 문성주 군산농민회장, 최종수 신부 등이다.
1998년 5월8일 필자가 주임신부를 맡고 있던 전북 군산 오룡동성당에서 ‘군산미군기지 우리땅 찾기 시민모임’ 결성식이 열렸다. 앞줄 왼쪽부터 김연태 군산대 노조위원장, 한상렬 목사, 필자, 문성주 군산농민회장, 최종수 신부 등이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57
1970년대만 해도 나는 미군 문제에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여서 미군을 그저 고마운 존재로만 여겼다. 언젠가 군산 미군기지 부대장이 전주교구 김재덕 주교를 초대한 자리에 같이 참석해 기지 안을 돌아보고 전투기에도 올라가 보았다.

내가 미군기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72년 기지 옆에서 성매매여성을 위한 사목활동을 하는 ‘착한목자회 수녀원’의 이사로 참여하면서였다. 착한목자회 수녀님들은 대부분 필리핀인이었고 책임자는 미국인이었다. 수녀회는 미군기지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사인 나도 자연스레 미군기지의 군종신부와도 알게 되었다. 군종신부의 요청으로 내가 기지에 들어가 영어미사를 드리거나 군종신부가 종종 오룡동성당을 찾아와 친밀해졌다. 그런데 97년 ‘군산 미군기지 우리땅 찾기 시민모임’을 만들어 기지 정문 앞에서 시위를 한 이후 그 군종신부는 떠난다는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된 것이다.

70, 80년대 군산의 기업가들이나 출입증을 가진 지역의 유지들은 미군기지를 출입할 수 있는 것을 커다란 특권으로 여겼다. 특히 기지 안에 골프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골프를 치고 난 뒤에는 칵테일 바에 가거나 피자를 사오기도 했다. 또 기지 안의 음식점에서 엘에이갈비나 곰탕 따위를 먹고 나와서 마치 미국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간혹 한국인 군무원들을 통해 한국인 출입증(패스)을 얻기 위해 금품이 오가기도 했다.

사실 90년대 후반까지도 미군의 범죄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80년 광주민중항쟁 때 미군이 군부독재를 승인했다는 실체가 드러났고,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같은 반미투쟁이 있었지만 미군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군산에서도 87, 88년에 미군의 범죄가 드러나 시위도 일어났지만 곧 잊혀졌다. 그러다가 98년 5월 활주로 사용료 투쟁을 계기로 ‘우리땅 찾기 시민모임’이 만들어진 뒤 비로소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SOFA)의 불평등 문제가 불거진 것이었다. 나 역시 이를 통해서 미군의 실체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 무렵에도 군산 기지 미군의 범죄는 끊임이 없었다. 한 부부가 술에 만취한 미군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해 남편은 즉사하고 부인은 중퇴에 빠진 사건이 일어났지만 한국 경찰은 미군을 체포하지 못했다. 아메리카 타운에서는 환전상을 하던 노인이 미군에게 살해당한 사실이 확실한데도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항의집회가 더 거세지고 대응하는 한국 경찰도 과격해졌다.

그러는 와중에 99년 미군기지로부터 기름이 유출돼 주변의 농토와 지하수가 오염돼 악취가 나고, 식당·화장실 등에서 발생하는 생활하수도 정화시설 없이 배출되고 있는 현장이 발각됐다. 미군은 하루에 3000t의 오폐수를 방류했는데 시민모임 쪽에서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 측정을 해봤더니 135ppm이 나왔다. 공장지대에서는 20ppm만 나와도 제재를 하는데 무려 6배가 넘게 나온 것이다. 탄약고와 사격장으로 인한 안전 위협 문제도 드러났다. 주민들이 사는 동네 바로 앞에 탄약고가 들어서 어떤 곳은 민가와 30m도 안 떨어졌고, 사격훈련장의 유탄이 민가의 벽을 관통하고 들어와 터지는 사고도 일어났다.

공여지 문제는 황당할 지경이었다. 정부에서 자기 땅을 미군에게 공여한 것도 모르고 주민들이 건축물을 세우자 미군이 나와 집을 부수거나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했다. 국방부에서는 그 땅에 ‘미국 정부 재산’(US GOVERNMENT PROPERTY)이라고 못을 박고 주민을 몰아냈다. 대대로 물려받아온 농토가 주인도 모르는 새 미국 정부의 재산이 됐다니 말이 되나?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전투기로 인한 소음공해도 심각했다. 미군은 하루 평균 50회 이상, 비상훈련 때는 100~150회까지 출격 연습을 했는데 전투기 이착륙 때마다 115db(데시벨)이 넘는 소음이 발생했다. 청력장애를 일으키는 90db 수준을 훨씬 넘는 수준이다.


하루는 미군기지의 오폐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9시간에 걸쳐 기지를 한바퀴 답사하다, 썩을 대로 썩은 기름덩어리가 미군부대로부터 콸콸 쏟아져 나와 서해안으로 그대로 흘러들어가는 현장을 확인했다. 시청·검찰·청와대까지 공문을 보내 사태를 직시하게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노동자 300여명이 모여서 그 폐수 배출구를 막아버렸다. 그런데 며칠 뒤 가보니 다시 임시 배출구를 만들어 놓았다. 포클레인을 끌고가 임시 가리개를 긁어버리니 오폐수가 그냥 터져 나왔다. 어떻게든 미군의 잘못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오기’가 솟는 순간이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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