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통감관저 터’ 아닌 ‘녹천정 터’로 정할 듯…시민단체 반발
100년 전 일본과 대한제국 사이에 강제병합조약이 조인된 서울 남산 통감관저 터에 세워지는 표석의 이름이 ‘통감관저 터’가 아닌 ‘녹천정 터’로 정해질 전망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시는 18일 표석설치자문위원회를 열어 관계 전문가들의 자문을 들어본 결과 표석의 이름으로 ‘통감관저 터’보다는 ‘녹천정 터’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아 이를 토대로 표석 설치를 위한 자료 검토 등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녹천정은 조선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신 박영원이 1851년에 지었다고 전해지는 정자로, 1984년께 이 터에 일본공사관이 들어서면서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사관은 이후 통감관저(을사조약 이후), 총독관저(병합조약 이후)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날 자문위에 참여한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는 “남산에서 가장 경치가 좋았다고 전해지는 이 터의 표석을 녹천정이라 하면 일본이 한국의 명당을 차지한 역사적 맥락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100여개가 넘는 한·일 시민단체들이 모여 만든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실행위원회는 국치일인 오는 29일 이 터에 ‘통감관저’라는 표석을 설치할 계획이었다.
통감부 터의 정확한 위치를 고증한 역사연구가 이순우씨는 “녹천정이 이 터에 들어선 첫 건물일 수는 있겠지만, 이 터가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는 이곳에서 치욕적인 병합조약이 체결됐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라며 “녹천정 터라는 이름은 너무 뜬금없고 몰역사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용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국실행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도 “우리가 통감관저의 장소성에 주목하는 것은 강제적이고 불법적으로 체결했던 아픈 역사를 기억하자는 것”이라며 “국치 100년을 맞아 역사를 바로세우려는 한·일 시민들의 노력이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