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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경찰봉쇄 뚫어야만 할 수 있던 미대사관 앞 집회 / 문정현

등록 2010-08-23 20:23

1999년 10월 출범 이후 ‘불평등한 소파(SOFA)개정 국민행동’은 서울 태평로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월례집회를 열었다. 대사관 인근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경찰이 대형 쓰레기차로 막아놓자 그 위에 올라선 필자가 ‘소파개정’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노순택 작가 제공
1999년 10월 출범 이후 ‘불평등한 소파(SOFA)개정 국민행동’은 서울 태평로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월례집회를 열었다. 대사관 인근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경찰이 대형 쓰레기차로 막아놓자 그 위에 올라선 필자가 ‘소파개정’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노순택 작가 제공
문정현-길 위의 신부 61
1999년 8월 전국적인 소파(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운동을 벌이기 위해 군산 미군기지 우리땅찾기 시민모임에서는 사무국장인 김종섭을 서울로 파견하기로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으로 나선 일이고 좋은 뜻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8월30일 서울에 올라와 연 첫 회의 때부터 논쟁이 치열했다. 우리땅 미군기지 되찾기 공동대책위원회(대구·평택·군산·의정부·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녹색연합, 전북 평화와 인권연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대표들이 모였다. 그 자리에는 “소파 개정이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다”라고 주장하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소파는 불평등하니까 개정하라고 할 수는 있으나 반미는 못 한다”는 단체도 있었다. 심지어 ‘SOFA’라는 영문 표기에도 불만을 나타낸 단체도 있었다.

우리는 이 갈등이 좀더 많은 단체와 뜻있는 분들이 함께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이해를 구하고 협력을 호소했다. 다행히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같았기 때문에 각자의 견해를 한발씩 양보하면서 ‘불평등한 SOFA 개정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을 결성할 수 있었다. ‘국민행동’이라는 말은 당시만 해도 생소했지만 그처럼 국민들에게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어 좋았다.

사무실을 얻고 사람을 구하는 일들도 만만치 않았다. 고생을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아닌가? 다행히 사무실은 국제민주연대에서 더부살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국제민주연대에서 파견한 김재규는 김종섭과 함께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에 소파 개정의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헌신적으로 전개했다.

마침내 그해 10월6일, 불평등한 소파 개정 국민행동이 출범하자 제법 일이 되기 시작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법률지원팀을 꾸려 지원해주겠다고 나섰고, 인권운동사랑방,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불교 인권위원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제주 4·3 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 등이 참여해 모두 127개 단체가 모인 제법 거대한 기구가 되었다. 그 뒤 매향리 사격장 사건이 일어나면서 스크린쿼터폐지 반대운동, 한국노총까지 참여해서 148개 단체로 더 커졌다.

10월21일, 서울 세종로 미국대사관 인근 석탄회관 앞에서 불평등한 소파 개정 국민행동의 첫 공식집회를 열었다. 국민행동을 만들 때 있었던 치열한 논쟁만큼 집회에서도 여러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내 관심은 온통 성조기가 보이는 대사관에 가 있었다. 분명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하기로 했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은 대사관 건물 끝자락만 보이는 인도의 한 귀퉁이였다. 백악관 앞에서도 집회를 하는 마당에 미대사관 앞에서 자국민들이 집회를 열지 못한다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그 첫 집회가 끝나고 미대사관에 항의문을 전달하기 위해 군산에서 올라온 동지들과 대사관 쪽으로 걸어가자 경찰들이 막았다. 그래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은 미대사관 앞에서는 성직자·시민·여성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이곳저곳에서 고함과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고 10여명이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었다. 남은 사람들은 연행된 이들이 석방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계속 시위를 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국민행동은 정기적으로 월례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미대사관 앞에서 옷이 찢어지고 기진맥진할 정도로 격렬하게 대치해야 했다. 경찰은 우리가 시위나 기자회견을 못하게 하려고 대형 쓰레기차를 세워 놓고 주변을 막았다. 그러면 나는 그 쓰레기차 위에 올라가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다. 한번은 자신이 천주교신자이고 세례명이 ‘요한’이라는 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신부가 기도나 하지?” 그래서 내가 “요한, 너를 위해 아침에 기도하고 왔다” 하고 고함을 치니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어떤 때는 집회가 끝날 때까지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빙 둘러 내가 있는 곳을 조여와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경찰과 미대사관 쪽과 실랑이를 한 끝에야 한 장짜리 항의서한을 전달할 수 있었다. 또 경찰은 국민행동이 월례집회를 열던 미대사관 옆 광화문시민열린마당이 대사관에서 100m 이내 지역이라는 이유로 집회를 원천봉쇄했다. 그런데 그것은 경찰의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법원이 문제를 바로잡아 정상적인 집회가 가능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정부의 처사는 참 옹졸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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