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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폭격장 폐쇄” 3500명 인간띠 철조망 걷어내다 / 문정현

등록 2010-08-26 18:54수정 2010-08-26 19:39

2000년 6월6일 경기도 화성 매향리에서 불평등한 소파 개정 국민행동과 매향리 미군폭격장 폐쇄 주민대책위원회가 연 평화대행진에서 필자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쿠니사격장’을 둘러싼 철조망을 돌고 있다.
2000년 6월6일 경기도 화성 매향리에서 불평등한 소파 개정 국민행동과 매향리 미군폭격장 폐쇄 주민대책위원회가 연 평화대행진에서 필자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쿠니사격장’을 둘러싼 철조망을 돌고 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64
미군에게 경기도 화성의 매향리 쿠니사격장은 아시아 최적의 폭격훈련장이었다. 오산기지에서 이륙해 2∼3분 만에 사격이 가능하고, 육상과 해상 훈련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사격장 반경 2.4㎞ 안에 200여가구 7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환경이 조종사들한테 실전에 버금가는 긴장감을 준다는 것이었다. 매향리에서 폭격 훈련을 하는 전폭기는 F-4E, A-10, F-16, OV-10 공격용 헬기 등 다섯 종류쯤 되고, 로켓포·기관포·기총·레이저포 등등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년이면 250일 정도 폭격을 해댔다. 1년에 5~6회 원폭 투하 훈련도 하고 있었다. 또 주한 미공군 소속 전폭기만이 아니라 오키나와·타이·괌 그리고 미군 철수 이전의 필리핀·미 태평양함대 소속 항공모함 같은 곳에서도 전투기가 날아오는 국제훈련장이었다.

불평등한 소파 개정 국민행동에서 매향리 문제를 알리기 시작했을 무렵인 2000년 5월8일 미군에 의한 오폭 사건이 터졌다. A-10기가 마을을 폭격해 벽에 금이 가고 유리가 깨지는 피해를 입힌 것이다. 이 사건이 한국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사회문제가 되자 미군은 조사를 마칠 때까지 폭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이어 한-미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5월18일, 국민행동 대표단과 매향리 미공군 국제폭격장 철폐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 대표는 청와대로 가서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을 만났다. 서로 대화를 나눈 끝에 전만규 주민대책위 위원장이 말했다. “지금까지 한 얘기는 다 필요 없고,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매향리 폭격장을 폐쇄시키세요. 땅 넓은 미국으로 폭격장을 옮겨가라는 분들도 있지만 미국사람들도 폭격장 옆에서는 못 삽니다. 그냥 폐쇄시키세요.”

6월1일, 한-미 합동조사단에서 발표를 했다. 주민들의 피해를 확인할 수 없지만 부서진 집 일부를 보수해주고 앞으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튿날부터 폭격훈련을 재개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6월2일 아침 7시, 발표대로 폭격 재개를 알리는 주황색 깃발이 올랐다. 그날 오전 11시 주민대책위에서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여는데 A-10기가 보란듯이 폭격을 해댔다. 분노한 전 위원장이 경찰 저지선을 피해 철조망을 넘어 사격장으로 들어가 깃발을 찢었다. 그 일로 그는 구속됐다.

6월3일, 매향리 주민 200여명은 화성경찰서로 몰려가 먼저 도착해 있던 국민행동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6월6일 매향리에 집결해 평화대행진을 열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홀로 외롭게 싸워온 매향리 주민들은 최용운 임시위원장을 뽑아 처음으로 사회단체와 연대를 하게 되었다.

6월5일 밤 10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을 비롯한 국민행동 참가 단체들과 환경운동연합, 인권단체 회원들이 주민대책위 사무실에 모였다. 다음날의 평화대행진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토론하기 위해서였다. 철조망을 걷어낼 것인가, 아니면 온전히 평화적으로 인간띠 잇기 행사만 할 것인가를 두고 새벽 3시까지 격론을 벌였다. 토론 끝에 철조망을 걷는 행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마침내 6월6일, 사람들이 얼마나 모일까 걱정하고 있는데 아침 일찍부터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바닷가의 작은 시골 마을에 3500여명이 모이니 대책위가 있는 앞마당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민들도 힘을 얻어 대형 깃발을 들고 앞장을 서고 대표단이 그 뒤를 따라 행진을 시작했다. 각 부문의 대표 연설이 끝나고 인간띠 잇기를 하기 위해 정문에서부터 늘어선 사람들이 철조망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철조망을 손으로 잡고 뜯어내기 시작했다. 일부는 미리 커터를 준비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평화의 상징으로 뜯어낸 철조망을 가져가기도 했다. 철조망의 반을 걷었다. 제지하려는 경찰과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 과정은 폭력적이지 않았다. 그날의 평화대행진은 주민과 시민사회단체의 승리 분위기 속에 해산됐다. 그날 집회 참석자들의 자발성으로 이루어진 철조망 걷기는 전날 밤 5시간 동안 진행된 활동가들의 토론을 무색하게 했다. 이처럼 매향리 평화대행진은 대중들의 자발적인 투쟁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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