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불평등한 소파 개정 국민행동에서 ‘한-미 소파 개정 협상’을 압박하고자 파견한 방미대표단을 이끌고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필자(오른쪽)가 국무부 앞에서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대표단의 일행인 이김현숙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대표가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67
2000년 4월에서 8월까지 집중 투쟁을 벌인 끝에, 2001년 매향리 폭격장 폐쇄 주민대책위원회의 전만규 위원장을 비롯한 14명의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법원은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04년 3월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미군은 같은 해 4월 매향리에서 폭격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2004년 마침내 매향리는 폐쇄되었다. 겉으로는 가열찬 투쟁 끝에 미군과 국방부가 굴복한 셈이었지만 사실은 인천 영종도에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비행기 이착륙 횟수가 늘고, 이착륙하는 반경이 매향리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폭격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미 당국은 이미 이런 사정을 알고 대체 폭격장을 물색하고 있었고, 강원도 태백과 군산 직도가 검토되고 있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런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2006년 9월 군산 미공군기지에서 40㎞ 떨어진 직도에 미군 국제폭격장 설치가 승인되어 매향리와 똑같이 해마다 오키나와·괌·나토·미본토의 전투기들이 3~4개월씩 순환배치되어 실전 연습을 하고 있다.
2005년 매향리는 50년 만에 평화를 찾았다. 원래 마을 이름처럼 매화꽃 향기가 그윽하게 차 있는 그런 평화로운 마을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매향리 폭격장 폐쇄운동과 더불어 연이어 터진 미군범죄로 인해 소파(SOFA,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개정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공감대가 커지자 1996년 미국의 일방적인 결렬통고로 중단되었던 개정협상을 4년 만인 2000년 8월2일 재개하게 되었다. 그러나 8월 협상은 별다른 성과를 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미국은 현행 소파를 개악할 움직임까지 보였다.
그때 개정협상에서 유일하게 합의된 내용은 향후 2개월 안에 미국에서 다음 회의를 연다는 것이었다. 국민행동은 9월말에서 10월초 미국에서 협상이 다시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나를 비롯한 5명의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대표단은 국민행동 상임대표인 나를 포함해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의 이현숙 공동대표, 김용한 공동집행위원장,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의 변연식 공동대표 그리고 활동가 최재훈씨로 구성됐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는 과연 미국 입국이 가능할까 걱정을 했다. 비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동안 소문나게 반미운동을 해왔고 미군부대까지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던 터였기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한국을 떠나 미국에 도착하는 과정 내내 나는 불안한 마음에 “어, 내가 출국하네? 어, 비행기를 탔네? 어, 입국이 되네? 드디어 미국에 들어왔구만” 해야 했다.
대표단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탄 뒤 워싱턴 디시로 갔다. 9월22일 오전 도착하자마자 우린 ‘비에케스 폭격장 폐쇄를 위한 행동’ 집회에 참석했다. 비에케스는 대서양에 위치한 푸에르토리코의 작은 섬으로 미 대서양 함대의 폭격장이 있는 곳이다. 비에케스 반대 집회에는 시카고·로스앤젤레스(LA)·필라델피아 등지에서 수천명이 왔는데 성직자도 많았다. 그 모습이 부러웠다. 또 그곳에서 이스마엘 과달루페를 만났다. 그는 비에케스구원개발위원회의 지도자로서 매향리도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집회에서 연설을 했다. “한국의 매향리나 비에케스 해군 폭격장이나 다 똑같다. 매향리나 비에케스의 주민들이 외치는 구호가 똑같다. ‘미군은 떠나라’이다. 우리가 만나면 미국을 저지하기 위한 연대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큰 박수가 나왔다.
그날 오후 ‘정의와 평화를 위한 아시아태평양 센터’(APCJ&P)를 방문했는데 그곳의 앤드루 웰 당이란 분이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그는 워싱턴에 있는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 사람들과 교류가 있어서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 미리 보도자료를 내주고 공문을 만들어 언론기관에도 알려주었다. 그래서 재미 한인언론과 기자회견을 하고, 26일에는 매사추세츠 출신의 민주당 의원인 제임스 맥거번과 면담도 할 수 있었다. 또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과도 연락을 해서 면담을 잡아놓았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문정현 신부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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