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22일 미군법정에서 효순이·미선이를 죽게 한 장갑차 운전 병사들에게 무죄판결이 나오자 한 누리꾼의 제안으로 시작된 ‘촛불집회’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그해 12월7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촛불 인간띠 잇기 대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72
2002년 11월22일 주한미군 군사법정이 두 미군 병장에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효순이·미선이 두 여중생의 죽음은 가해자 없는 살인이 되었다. 이에 평화통일단체들은 동두천의 미군기지 앞에 모여 무죄판결에 격렬히 항의했다. 한상렬 목사와 내가 삭발을 하고 젊은이들은 태극기에다 혈서를 썼다. 꽃 같은 여학생들이 채 피지도 못하고 그렇게 처절하게 죽었는데도 온 국민은 월드컵에만 열광하고 있던 현실이 참으로 애통하고 참담했다.
그날 이후 여중생 범대위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미국 대통령의 사과, 살인미군 구속,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요구하며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삭발단식기도와 함께 날마다 촛불미사를 올렸다.
그 며칠 뒤 한 누리꾼이 인터넷에다 ‘여중생들이 죽었을 때 나는 월드컵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반성하면서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한다. 광화문을 우리의 영혼으로 채우자. 광화문에서 효순이·미선이와 함께 수천 수만의 반딧불이 되자”고 제안했다. 놀랍게도 11월30일 첫번째 ‘주말 촛불시위’에 1만명, 12월7일에는 5만명, 12월14일에는 10만명의 촛불이 거리를 밝혔다. 여중생들의 죽음이 월드컵 열기에 묻힌 줄로만 알았는데 역설적으로 월드컵 응원 때 하나로 뭉쳤던 경험이 촛불시위를 위한 예행연습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점차 일반 시민은 물론 연예인·정치인까지 모여들면서 촛불은 활활 타올랐다.
마침 16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각 당의 대통령 후보들도 광화문 미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후보들은 사제단 대표와 만나서 소파를 개정하겠다고 앞다퉈 공약하기도 했다.
그해 12월19일 노무현 후보가 극적인 반전 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우리는 그가 소파를 개정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침 노무현 당선자 인수위에서 여중생 범대위 대표들을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범대위 안에서 서로 의견차가 있었지만 당선자를 만나기로 결정이 났다. 나는 만나지 말자고 주장했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대표단으로 뽑혀 어쩔 수 없이 가게 됐다.
나와 오종렬·한상렬 목사 등 다섯명의 대표단과 당선자가 만난 곳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민주당사였다. 노 당선자는 우리에게 말했다. “촛불을 끕시다. 우리에게는 북핵 문제가 큽니다. 북핵은 생존권 문제입니다. 그러나 소파는 자주권입니다. 자주보다는 생존이 더 우선이니까 이 촛불은 내려야겠습니다.” 나는 어떻게 자주와 생존권에 우선순위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자주하지 않으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 소파를 재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노 당선자가 단호한 어조로 다짐했다. “신부님, 제가 소파 재개정하겠습니다.” 그 뒤 언론은 마치 범대위와 합의해서 촛불을 내리기로 한 것처럼 보도했다. 나는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광화문을 메웠던 촛불들이 흐지부지 사라지고 대통령 취임식 분위기로 달려갔다. 명백한 범죄를 일으킨 미군에 대해 조사조차 할 수 없는 소파를 재개정할 기회는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당시 노 당선자로서는 북핵 문제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 간의 불평등한 협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놓고 무엇이 먼저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둘 다 우리의 생존 문제다. 북핵 문제든 한-미 간의 불평등한 문제든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요구와 인권과 평화의 원칙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늘 국민의 알권리와 여론을 차단해왔다.
미선이·효순이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한-미 관계는 이렇게 요지부동이구나. 그야말로 독립운동만큼이나 힘들구나. 분단된 상황에서 통일을 지향하면서 남북이 자주한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그러나 중단할 수는 없는 과제였다. 우리가 군산에서부터 미군의 범죄와 불평등한 문제를 제기하며 끈질기게 투쟁함으로써 여론을 일으키자 한-미 간의 불평등한 모든 사례가 드러나기 시작했듯이 우리에게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정치·경제·사회 모두가 잘 안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미국이 우리를 보호한다는 잠재의식이 깊이 뿌리 박혀 있다.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공산화가 될 거라는 괜한 생각도 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다르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면에서 희망이 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문정현 신부
아직도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정치·경제·사회 모두가 잘 안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미국이 우리를 보호한다는 잠재의식이 깊이 뿌리 박혀 있다.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공산화가 될 거라는 괜한 생각도 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다르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면에서 희망이 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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