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28일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등 4대 종단의 성직자들이 전북 부안군 새만금 해창갯벌을 출발해 서울 청와대까지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과 반전 평화’를 위해 세 걸음마다 한 번 절을 하며 가는 ‘삼보일배 고행’을 하고 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75
2003년 3월28일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가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를 위한 삼보일배에 나섰다.
새만금사업은 전두환 정권 때 계획을 세우고, 1987년 노태우 후보가 선거 공약(새로운 서해안시대를 대비한 개발전략)으로 내세워 당선되자 91년 방조제 축조사업부터 시작됐다. 부안에서 군산을 잇는 길이 33.479㎞인 세계 최장의 간척사업이 지역 주민들에게 실제로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줄지, 환경에는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는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 오로지 전북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추진이 되었다. 전북 도민은 새만금이 황금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4대 종단 성직자들의 삼보일배 고행으로 새만금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고 정치인들이 지피는 군불에 익어갔다. 한편에선 시화호 간척 사례를 들어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도 해양 생태계 훼손과 수질 악화 등을 우려하며 사업 반대 여론이 거세어졌다. 그러자 김대중 정부는 98년 4월27일 감사원에서 새만금사업에 대한 특별감사를 개시했고 99년 5월에는 새만금사업 환경영향 민관 공동조사단이 구성돼 공사 중단을 결정했다. 그러나 2년 뒤인 2001년 5월25일, 정부는 방조제는 일단 완공하고 동진강 수역을 우선 개발하며 만경강 수역은 유보하는 순차적 개발 계획으로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발표 전날인 5월24일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새만금사업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며 명동성당에서 조계사까지 6시간에 걸쳐 삼보일배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개인적으로는 새만금사업은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국회의원 때 반대 의사도 펴고 반대 서명도 했다. 해양수산부 장관 때까지도 새만금을 반대했다. 2001년 3월7일에는 새만금 사업을 1~2년간 유보하고,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연구조사를 더 해본 뒤 시행 여부를 결정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 후보가 되니까 역시 뜨거운 감자라 말을 바꿔서 새만금사업을 추진했다. 그래도 우리는 노무현 정부만큼은 새만금사업을 중단하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도 기존 논리를 되풀이하며 간척사업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렇게 되니 문규현 신부를 비롯한 4대 종단 성직자들이 부안 해창 갯벌에서 청와대까지 삼보일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나는 삼보일배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하도 기가 막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야,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해창 갯벌에서부터 청와대까지 국도변을 가는 것일 텐데 그 교통체증을 뚫고 깊은 숨을 쉬어가면서 걷고 엎어지고 그걸 어떻게 한다는 거냐? 차라리 다비식(소신공양)을 준비하라. 내가 불붙이고 뒤따르는 것이 낫겠다” 했다.
삼보, 즉 세 걸음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탐·진·치’ 그러니까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극복하자는 상징행위이고, 땅에 엎드려 올리는 한 차례의 절은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 현상에 우리 역시 책임이 있다는 참회이니, 삼보일배는 그 참회의 몸짓을 일반 대중들과 함께 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뜻이야 말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나는 정말로 걱정이 컸다.
물론 나 역시 새만금사업에는 원천적으로 반대였다. 새만금 반대운동이나, 핵폐기장 유치 반대운동은 환경신학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니 그 뿌리는 해방신학이었다. 사람이 사람의 인권을 짓밟고 억압하고 하는 것이나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고 산천을 후비는 것이나 똑같이 약자들에 대한 탄압이었다. 나는 이미 미국 메리놀 신학대학원 때부터 평화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소파(SOFA) 투쟁을 하면서 반전 평화를 평생 나의 운동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터였다.
그렇다고 어떻게 부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로 간다는 말인가. 죽자고 하는 일 아닌가. 턱도 없는 일이라 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을 계속 말려보았지만 그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제발 그 출발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간절한 바람도 부질없이 2003년 3월38일, 틱낫한 스님이 함께 명상하는 가운데 드디어 부안 해창 갯벌에서 네 분의 성직자들이 삼보일배 길에 올랐다. 당시 이라크 전쟁 문제도 중요한 시국 현안이어서 이분들은 ‘전쟁 반대, 생명 평화’를 함께 기도 주제에 올렸다. 나는 마음이 타들어갔다. 그래서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로 가는 이 엄청난 사건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그날 영상을 만들어서 인터넷에 띄우기로 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문정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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