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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뭇 생명 비명 품은 행진, 캠코더 들고 따랐건만 / 문정현

등록 2010-09-13 18:44수정 2010-09-14 08:54

2003년 4대 종단 성직자들의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고행 때부터 캠코더를 들고 영상기록자를 자임하기 시작한 필자는 이후 부안 핵폐기장 유치 반대 등 투쟁 현장마다 쫓아다니며 찍어 인터넷에 띄우는 영상 전문가가 됐다.
2003년 4대 종단 성직자들의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고행 때부터 캠코더를 들고 영상기록자를 자임하기 시작한 필자는 이후 부안 핵폐기장 유치 반대 등 투쟁 현장마다 쫓아다니며 찍어 인터넷에 띄우는 영상 전문가가 됐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76

2003년 3월28일 삼보일배 행렬이 서울로 출발하면서 나는 ‘영상 기록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날마다 행렬을 따라다니며 온종일 캠코더로 촬영을 하고 일정이 끝나면 익산의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서 영상을 편집했다. 짧으면 5분, 길면 10분짜리였다. 영상은 간단한 글과 함께 인터넷에 올렸다. 밤새워 영상작업을 해서 인터넷에 띄워놓고 아침 일찍 다시 삼보일배 현장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피곤해도 쉴 수가 없었다. 삼보일배 고행을 온몸으로 하고 있는 성직자 네 분 모습을 보면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다. 삼보일배 행렬을 멀리서, 가까이서 촬영하다 보면 또 눈물이 나고, 하루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울고, 편집하면서 또 울고, 그렇게 하루하루 눈물 속에서 살았다.

삼보일배 행렬을 따라다니며 영상으로 담는 사람들은 나 말고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위해서 찍기 때문에 그날그날 일어나는 일을 알리는 일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나는 작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삼보일배의 뜻을 날마다 세상에 알리고 나누고자 찍고 또 찍었다. 영상 편집은 단순 작업이지만 매일 속보로 띄워야 했기 때문에 늘 시간에 쫓겼다. 60분짜리 테이프 한 개만 편집하는 데도 여러번 되돌려 보면서 줄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 그런 테이프가 날마다 대여섯개 넘게 모였다. 그렇게 애써 만든 영상이 인터넷에서 제대로 열리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 주변의 젊은 친구들에게 한밤중에 전화를 해서 하나하나 물어가며 해결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곤 했다.

내가 동영상 편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내 주변에 늘 함께하는 젊은이들 덕분이었다. 전북에만 해도 기아특수강 노동자들, 노동사목 식구들,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인터넷 대안신문 <참소리>에서 일하는 젊은이들 20~30여명이 늘 내 주위에 있었다. 본당 사제직을 그만두고 작은 자매의 집에 전념하면서부터는 짬짬이 젊은 친구들을 불러 삼겹살도 구워 먹고, 해물 조개 같은 것도 구워 먹으며 정을 나눴다.

필자와 젊은 활동가들이 2004년 어느 날 전북 익산 작은 자매의 집에 있는 별채 ‘하하당’ 앞에서 함께했다. 인권활동가·노동운동가·미디어 활동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참여를 하고 있는 이들은 필자의 든든한 후원자이다.  사진 노순택 작가 제공
필자와 젊은 활동가들이 2004년 어느 날 전북 익산 작은 자매의 집에 있는 별채 ‘하하당’ 앞에서 함께했다. 인권활동가·노동운동가·미디어 활동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참여를 하고 있는 이들은 필자의 든든한 후원자이다. 사진 노순택 작가 제공

나는 사람은 ‘축제의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함께 운동을 하는 젊은이들과 기념할 만한 일이 있거나 개인적인 아픔이 있을 때, 혹은 어떤 일을 준비할 때마다 다 같이 모여서 먹고 자면서 우정을 쌓았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영상작업을 하는 걸 종종 지켜봤다. 가난한 젊은이들의 영상작업은 영세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 친구들보다 경제적으로는 나은 편이라, 이것저것 필요한 기구를 사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2003년 삼보일배를 촬영할 때만 해도 ‘프리미어 6.5’를 썼는데 영상이 자주 끊기고 컴퓨터 사양도 못 따라갔다. 그럴 때마다 젊은 친구들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그것도 성이 안 차면 당장 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속이 타 죽겠는데 젊은 친구들이 일 때문에 조금 늦게 오기라도 하면 화를 내다 못해 삐쳐서 못 본 척한 적도 많았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영상을 배웠지만 이후 영상작업은 내 활동에서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2000년 소파(SOFA) 개정 싸움에 앞장서면서부터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사제로서 내 관심은 빼앗긴 사람들, 쫓겨나는 사람들, 탄압받는 사람들에게 더 쏠리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안에든 머뭇거림 없이 나섰다. 그래서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나는 고통받는 사람들 앞에서는 조금도 주저하고 싶지 않다. 그런 용기와 힘은 언제나 함께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천주교정의구현연합 전 대표었던 박순희, 오랫동안 정의평화 활동을 해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변연식 대표, 천주교 여성공동체 식구들, 인천교구 노동사목 식구들, 예수살이 공동체 등등등, 20여년 동안 내가 무슨 일을 벌이든 항상 함께해준 사람들이다. 또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녹색연합 같은 단체들도 함께해왔다. 그렇게 앞서 나간 사람들이 없었다면 대중적인 투쟁은 싹틀 수가 없었을 것이다.

네 분 성직자들의 삼보일배는 방조제 공사 개시 이후 10여년 동안 새만금에서 죽어간 뭇 생명들의 비명,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죽어가는 죄 없는 양민들의 피어린 호소를 품에 안은 기도행진이었다. 삼보일배의 반향이 전국으로 퍼지자 정부는 2년 동안 공사를 중단하고 민관 합동으로 타당성 조사를 해보자고 했지만 결론은 ‘일방적인 새만금사업 재개’였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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