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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전쟁 없는 세상’ 위해 장구치고 춤추고… / 문정현

등록 2010-09-19 21:57

2003년 11월14일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발대식을 한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단원들이 이튿날 첫 기착지인 신촌 거리에서 손수레에 앰프를 싣고 트럼펫과 북을 치며 ‘이라크 파병 반대, 전쟁 반대’를 외치고 있다.
2003년 11월14일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발대식을 한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단원들이 이튿날 첫 기착지인 신촌 거리에서 손수레에 앰프를 싣고 트럼펫과 북을 치며 ‘이라크 파병 반대, 전쟁 반대’를 외치고 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80
전국 평화유랑을 하기로 한 우리는 인터넷을 이용해 단원을 모았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였다. 생태·환경·인권운동을 하던 사람, 아나키스트, 윤여관 선생, 노래 잘하는 보리, 고철. 전주·인천·공주·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7명이 모여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을 결성했다. 거기에 나와 오두희까지 9명이 2003년 11월14일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발대식을 했다.

처음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고 낯도 뜨거웠지만 안 할 수도 없었다. 이튿날은 홍대 입구로 갔다. 실버라이닝이 공연을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다. 공연을 하는 중에 홍대 총학생회장이 동참했다. 그래서 거리에서 영상을 보여주기로 했다. 빔 프로젝터에 캠코더, 음향장비까지 다 갖추었는데 그만 비가 와서 못했다. 무척 안타까웠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볼 때도 심란했을 것이다. 셋째 날은 인사동에서 했다. 다른 곳보다 사람들이 좀더 모였고 예수살이 공동체 회원들이 도와줘서 제법 훈훈한 분위기가 되었다.

황학동 중고품시장에서 구한 낡은 트럼펫을 불고 뒤꿈치에다 북을 매달고 흥을 돋우고 싶었지만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노래를 잘하는 아마추어 가수가 있고 저글링을 하는 해원과 하자센터의 노래패 ‘유랑하는 물고기’도 함께 해줘서 용기를 냈다. 사람이 얼마큼 모이든 대중 앞에 서서 고함치듯 연설을 하고 ‘기특한 과자’ ‘F15 비행기 반대’나 부시 욕하는 노래를 부르고 나면 부끄러움이 달아났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어디서나 차를 세워놓고 작은 공연을 할 만한 공간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나는 반주(MR)에 맞춰서 근사하게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박자를 맞추질 못했다. 신학교에서는 성가·가곡 같은 조용하고 성스러운 노래만 배운 까닭에 왈츠니 고고니 스윙이니 이런 세속의 리듬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게 신촌, 혜화동, 인천을 찍고 2003년의 마지막 공연은 인사동의 남인사마당에서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한 평화마당’으로 펼쳤다. 그날 뒤풀이에서 처음으로 ‘5·29 평화대행진’ 이야기가 나왔다. 유랑단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장기를 뽐내고,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자리를 만들자고 얘기했다.

그 뒤 행사에 대한 조언을 얻으려고 기획사 사람을 만났는데 무대를 크게 만들어 윤도현을 비롯한 유명한 가수들을 초대하면 1만명 이상 모일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러려면 예산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으니 1억, 2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왔다. 그런 방식의 공연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었다. 우리의 생각은 그저 참여하는 사람들이 5000원씩이라도 십시일반 내서 행사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의 눈에는 우리의 계획이 너무 보잘것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우리 식대로 하기로 하고 새로운 평화유랑을 모색하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라크 파병과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외치고 5월29일 평택으로 모이게 하자고 결의했다. 우리가 꿈꾸었던 것은 우드스탁 페스티벌 같은 그런 큰 잔치마당이었다.

2004년 1월에는 부안 돈지공소에서 합숙을 하면서 북·장구·탬버린을 배우고 연극수업도 했다. 마침내 2월11일 팽성읍 대추리에서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대책위’와 간담회를 열고 안중농협 옆 공터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그것이 평화유랑의 시작이었다. 그 뒤 군산미군기지 정문, 기아특수강 해고자 복직 촉구 굴뚝농성장을 방문하고 3월 첫주에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는 하얄리아부대 미군기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시내에서 거리공연을 했다. 이어 광주로 가서 시민단체를 만나고 노조 지원방문도 했다. 3월 둘쨋주에 간 나주에서는 ‘사랑의 고리’라는 장애인 공동체를 방문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사랑의 고리는 장애인들이 텃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하면서 기도하는 곳이었는데 우리를 크게 환대해 주었다. 우리에게 대추리 이야기를 들은 그분들은 몸이 불편해 대추리 싸움에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연대하고 기도하겠다고 했다. 그 만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다음에는 로케트전기 노동자 지원방문을 갔다. 7명의 여성들이 한겨울부터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공감했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 심정 안다고 회사로부터 탄압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탄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유랑단은 그렇게 가는 곳마다 북 치고 노래 부르며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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