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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사람] 일본에 ‘물질’ 알린 제주해녀 잊지마세요

등록 2010-09-23 23:06

박건치씨
박건치씨
제주 해녀의 일본 이주사 전하는 박건치씨

1920년대 이주해 잠수기술 전수
와다우라 지역경제에 자취 남겨

“제주도 해녀들이 이곳에 와서 일본인들에게 잠수 기술을 가르쳤어요. 그런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일본 지바현 미나미보소시의 어촌마을 와다우라에서 지난달 만난 박건치(64·사진)씨는 재일동포 2세다. 그의 부친 박기만(1970년 사망)은 1920년대 새 삶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수많은 제주도 출신 노동자 가운데 하나였다. 박씨는 “아버지가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일본에서 큰 사업을 하겠다고 야심차게 왔지만, 여기 도착해서는 할 게 없어 물고기 잡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조선 청년 박기만의 눈을 잡아 끈 것은 고향 제주도와 많이 닮은 와다우라의 바다였다. 이곳의 바다는 제주도같이 따뜻했고, 전복 등 해산물도 많았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었다. 일본에는 ‘해녀’들이 없었던 것이다.

박기만은 고향으로 가 제주 해녀 12명과 그들의 가족 40여명을 이주시켰다. 해녀 12명은 이곳으로 이주해 전복을 캐며 일본 여성들에게 제주 해녀들의 전매 특허인 잠수기술을 가르쳤다. 이제 그들 대부분은 숨졌고, 남은 1세대 해녀는 90대의 ‘양씨 할머니’ 한명밖에 없다.


지바현 남부 지방의 옛 지명인 ‘아와 지방’의 역사를 연구하는 시민단체 ‘아와문화유산포럼’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와다우라의 이웃마을 가모가와시 에미정(町)의 조동종 계열 사찰 장흥사에는 1920년대 이주한 해녀와 가족들의 묘 20여기가 있다. 박기만의 묘비에는 ‘제주도 수산업 개척 선각자’라는 글과 그의 고향 ‘한국 제주도 량면’이 새겨져 있다.

이곳으로 이주한 해녀로 추정되는 이아무개의 묘(묘비에는 ‘아라이가의 ‘묘’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일본으로 귀화하며 얻은 성으로 추정된다)에는 2003년 6월17일 87살로 숨졌다는 기록과 함께 “바다에 잠수했다. 아이들을 사랑하며 살아왔다”고 적혀 있다.

박씨는 “해녀일은 정말 험한 일”이라며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추위에 약해 함부로 바다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복을 따려면 10m 물속으로 들어가 숨을 3분이나 참아야 합니다. 남자들은 곤조(근성)가 없어서 못해요. 이 바다에서 제주 해녀들이 전복과 소라를 잡고 미역, 톳을 채취해 아이들을 교육시켰습니다.” 박씨는 제주 해녀들의 잠수 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심장마비로 숨진 일본인들도 많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제주 해녀들의 일본 이주사는 옛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들의 자취는 지역 경제에 큰 족적을 남겼다. 와다우라에서 나는 자연산 전복은 1㎏에 1만엔을 호가하는 고급품으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브랜드로 통한다. 그 때문에 기술이 좋은 몇몇 잠수부들은 여름 한철 자맥질을 해 1천만엔(1억4천여만원)이나 수입을 올린다. 박씨는 “이곳으로 이주한 해녀들의 손자들이 30~40대가 되었고, 4세들이 마을에 살고 있다”며 “일본에 건너와 바다를 헤치며 열심히 살았던 해녀 할머니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국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와다우라/글 길윤형 기자, 사진 김태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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