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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민족극 한마당서 춤과 욕·박수 세례 “나도야 광대” / 문정현

등록 2010-09-26 18:00

2004년 7월부터 하반기 평화유랑에 나선 평화바람은 ‘평택 5·29 평화축제’에 참가했던 부산대 채희완 교수의 초청을 받아 8월5일 경북 성주에서 열린 ‘민족극 한마당’에 참가했다. 필자가 무대에서 즉석 공연을 하고 있다.
2004년 7월부터 하반기 평화유랑에 나선 평화바람은 ‘평택 5·29 평화축제’에 참가했던 부산대 채희완 교수의 초청을 받아 8월5일 경북 성주에서 열린 ‘민족극 한마당’에 참가했다. 필자가 무대에서 즉석 공연을 하고 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82
2004년 5월 29~30일 경기도 평택 공설운동장 주차장에서 열린 ‘5·29 반전평화문화축제’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1만여명의 엄청난 인파가 모였다. 하지만 집회 때 흔히 등장하던 깃발은 없었다. 어떤 이념이나 주장을 앞세운 행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국 유랑에서 만난 사람들이 주로 모였다.

그날 무대에서 축제 상임위원장으로서 나는 유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가 바라는 평화에 대해서 말했다. “일터에서 쫓겨난 해고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다.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들이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평화다. 서식처를 잃은 맹꽁이·두꺼비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 평화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땅을 빼앗기지 않고 올해도 농사짓게 하는 것이 평화다.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면 평화로운 세상,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30일 아침 축제 참가자들은 미공군기지 K-6(캠프 험프리)이 있는 팽성읍 대추리까지 평화대행진에 나섰다. 행렬은 윤여관 선생이 사흘 동안 만든 모형 탱크를 앞세워 대추리까지 가려 했으나 경찰이 막아 탱크는 진입하지 못했다. 일행은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확장반대 결의대회’를 열었다.

그렇게 성황리에 행사를 마친 뒤 나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평화바람 안에서는 행사 규모가 너무 커져서 우리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무대가 너무 크고 기성 가수들에게 중요한 시간을 배려한 까닭에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표현하고 즐기자는 원래 취지대로 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후 한달 남짓 휴식을 취한 평화바람은 7월12일부터 2박3일간 경북 영덕의 유기농 마을에서 일손을 도우며 하반기 유랑에 대한 구상과 논의를 했다. 7월24일 하반기 유랑이 시작됐다. 일제의 태평양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강제부역 노동자의 가족,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앞장선 ‘전쟁피해자와 함께하는 이라크 파병 반대 전국도보행진’에 합류해 8월2일까지 걸었다.

우리는 8월5일부터 사흘간 경북 성주에서 열린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주관 ‘민족극 한마당’ 개막식 공연에 초청을 받았다. ‘평택 5·29 평화축제’에 참가했던 부산대 채희완 교수가 불러준 자리였다. 우리는 그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지만 전국에서 민족극 운동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니 끼 많은 광대들을 만나 하반기 유랑을 함께하자고 ‘꼬드길’ 목적으로 기꺼이 갔다.

그런데 개막식에 가보니 모두 전문 공연자들이었다. 우리는 제대로 공연을 할 사람이 없는 형편이었다. 개막식에는 성주군 군수, 국회의원, 동네 유지도 있고, 갓을 쓰고 점잖게 앉아 있는 할아버지들도 있었다. 정말 난감했다. 나는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굴하지 않고 그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며 중간중간에 ‘평택 미군기지 안 된다. 이라크 파병 안 된다’는 가사로 바꾼 동요를 지팡이를 쳐들고 불러댔다. 그런데 갑자기 무대 앞으로 빨간 구두에 빨간 립스틱에 빨간 원피스를 차려입은 한 할머니가 나오더니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또 관중석에서는 군복을 입은 한 중년 아저씨가 ‘여기가 어떤 자린데 와서 정치발언을 하느냐’고 욕을 하고, 또 무대 한쪽에서는 동요가 나오니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라 했다. 정말 묘한 분위기가 한꺼번에 연출된 순간이었다. 군수는 ‘뭔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고, 그 와중에도 나는 기를 굽히지 않고 할 말을 다 하고 내려왔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뒤풀이 자리에서 채 교수가 후배들을 앞에 놓고 “이분이 바로 원효와 같은 사람인 것 같다. 원효도 광대였다”고 말해 한바탕 웃었다. 처음에는 개회식만 참가하려 했는데 얼떨결에 폐회식까지 있으면서 채 교수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우리의 민족극이 위기를 맞아 세상을 풍자하는 힘마저 잃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코미디가 희극의 전부가 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폐막식에서는 주최쪽에서 ‘새끼광대’상을 준다고 했지만 멋쩍어서 거절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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