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들어 정부의 미군기지 이전 절차가 본격화하자 평화바람과 대추리 주민대책위는 마을을 지키고자 평화촌 조성에 나섰다. 그해 8월17일 ‘대추초교 지키기 선포 기자회견 및 솔부엉이 마을도서관 개관식’에서 어린이들이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86
2005년 들어 정부의 지장물 조사가 임박할 무렵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시 팽성읍 대책위원회’의 김지태 위원장과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함께 했다는 이아무개란 사람이 우리 평화바람 일행을 식사에 초대해 지장물 조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나는 지장물 조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그 식사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프랑스 천주교 주교회의 산하의 ‘CCFD’라는 단체 때문에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기독교농민회 쪽 여성이 난데없이 우리 숙소를 찾아왔다. 대책위에서 일하는 이아무개의 부인이 안내해 온 그 여성은 유황오리고기·불고기·김치 따위를 가지고 와서는 과잉친절을 베풀었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관에서 나를 대추리에서 끌어내기 위한 ‘수작’ 중의 하나였다.
나는 대추리에 있다가 토·일요일이 되면 익산의 작은 자매의 집으로 아이들을 보러 갔는데, 어느 주말 갑자기 청와대 민정실 직원들이 작은 자매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들 중에는 명동청년회 출신으로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에서 일을 했던 운동권 출신도 있었다. 그들은 내게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신부님, 남북관계가 굉장히 중요한데 앞으로 남북한 농어민의 일을 맡아서 하는 한 단체의 이사장이 되어 주십시오.” 회유책이었다. 나는 화가 나서 “너, 그 일 때문에 온 거야? 무슨 수작을 하는 거야? 너 이러려고 운동했어? 당장 가버려! 지금 미군기지 확장 때문에 내가 사는 대추리· 도두리의 주민들이 땅을 뺏기고 집도 절도 없이 나갈 판인데, 나더러 너희들이 제안하는 관변단체로 가란 말이야?” 하고 벼락을 내서 쫓아버렸다.
그 이후로 이아무개는 나를 피해 다녔다. 결국 그는 지장물 조사를 찬성하는 편에 서서 자기 이권을 챙겼다. 그 뒤 평택역 앞에서 그를 우연히 만나 된통 혼을 낸 기억이 난다. 운동권 출신이라고 내세우면서도 그렇게 자기의 이익을 찾는 이들이 있다.
한편 지장물 조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주민들은 거부투쟁을 벌이기로 하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주민대책위와 함께 2005년 5월22일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어 주민들과 평화바람은 2월21일부터 지장물 조사를 하러 오는 ‘국방부 조사단’, 즉 한국토지공사·대한주택공사·감정원에서 농지와 도두리·대추리에 대한 물건 조사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역을 셋으로 나눠 지켰다. 주민들은 각 구역을 지키고 있다가 조사단이 경찰과 합세해 들어오면 서로 연락을 해서 트럭과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가서 쫓아냈다. 한순간도 자리를 뜰 수 없으니 그 자리에 솥단지를 걸고 김치찌개를 해서 밥을 해 먹었다. 주민들은 아직 겨울이 다 가지 않은 허허벌판에서 온종일 세찬 바람과 맞서며 2월21일부터 3월14일까지 국방부 조사단을 막아냈다. 그러나 대추리의 투쟁 상황은 언론의 무관심으로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관과 주민들의 투쟁을 찍어 인터넷에 띄우기 시작했다. 역시 밤을 새우며 영상을 편집하고 직접 내레이션도 입히면서 열심히 만들었다. 그렇게 대추리가 알려지면서 일부 언론에서도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장물 조사를 막아내느라 밥을 같이 해 먹으며 고생을 하는 사이 평화바람과 주민들은 서로 가까워졌다. 주민들은 날마다 촛불 행사를 하며 봄을 맞아 모내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얼떨결에 함께 농사일을 했다.
그런데 지장물 조사에 응한 사람들이 보상에 동의하고 마을을 떠나면서 빈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방부에서는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그냥 이삿짐만 가지고 나가는 게 아니라 빈집에 사람이 들어와 살지 못하도록 유리창을 깨고, 창틀을 빼버리게 해서 동네가 흉흉해졌다. 평화바람은 빈집을 고쳐서 사람들이 대추리에 들어와 살게 하여 ‘평화촌’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5월부터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주민 순례단’을 만들어 일주일에 3일씩 전국 순례 길에 나섰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의 실상을 알리고, 7월10일 평택 평화대행진 행사를 알리기 위한 순례였다. 또 날마다 평택역에서 평화대행진 참가를 홍보했다.
우리는 평화대행진을 처음부터 평화적인 행사로 계획했다. 대추리에서 본정리로 가는 미군기지 울타리를 따라 평화의 길을 조성하고, 나무 심기, 소원지 달기처럼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을 열고자 했다. 구
술정리/김중미 작가
문정현 신부
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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