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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935일간 타오른 대추리 촛불이 꺼지고… / 문정현

등록 2010-10-07 09:25

2007년 4월16일 평택 대추초교에서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마지막 문화제인 ‘매향제’를 열어 마을의 유물·도장·투쟁 기록 등을 담은 항아리를 운동장에 묻고 있다.(왼쪽) 필자와 평화바람은 935일 만인 이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기약을 남긴 채 대추리를 떠났다.
2007년 4월16일 평택 대추초교에서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마지막 문화제인 ‘매향제’를 열어 마을의 유물·도장·투쟁 기록 등을 담은 항아리를 운동장에 묻고 있다.(왼쪽) 필자와 평화바람은 935일 만인 이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기약을 남긴 채 대추리를 떠났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90
2006년 6월9일 청와대에서 6·10 항쟁을 기념하는 만찬이 열린다는 소문이 들렸다. 누구는 청와대에서 만찬을 즐기고 누구는 대추리 주민들 때문에 단식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서글펐다. 게다가 내가 월드컵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그때도 월드컵이 열리고 있었다. 광화문에서 월드컵을 응원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집회 생각이 났다. 그때 착잡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민가협을 비롯한 사회단체에서 방문을 오고 박순희·변연식이 동조단식을 하기도 했지만 청와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나는 21일 만에 단식을 접었다.

평택 범대위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함께 5월4일의 행정대집행 이후 설치해놓은 철조망과 군 막사에 대해 ‘군사보호시설 설정’의 위법성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처음부터 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촛불집회는 농협창고로 옮겨 계속 열렸지만 주민들의 사기는 점점 떨어졌다. 결국 정부와 협상을 해야 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어 며칠을 술로 살았다. 황새울영농단의 옥상에 올라가 철조망을 캠코더에 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도두리로 가는 논둑에 서서 울고, 고추밭에 주저앉아 울었다. 김택균 사무국장과 신종원 조직국장이 그런 나를 보러 왔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가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신부님, 이제 정부와 협상을 해서 끝을 봐야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두 사람의 어려움을 알기에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말했다. “그렇지, 싸워야 하는 사람은 주민인데 그들이 더 싸울 수 없다면 더 할 수 없는 거 아니겠어? 김지태 위원장도 없이 싸울 수도 없는 거고, 주민들 사기를 올리는 게 어렵다면 주민들의 의사대로 해야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대추리를 지키려고 들어왔던 지킴이들이 반발했다. 울컥 화가 났다. 나 역시 대추리를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고, 내가 죽지 않는 한 내 발로 걸어서 나가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던 터였다. 그러나 겁에 질리고 지쳐 있는 주민들을 억지로 끌어 일으켜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평화 지킴이들에게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만 더 헤아리라고 말했다.

그렇게 대추리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킴이들은 대추리의 역사가 될 만한 것들을 그러모으고, 마을 구석구석을 영상으로, 사진으로 남겼다. 그러는 와중에 내 사제 서품 40돌 기념미사를 하게 되었다. 2006년 12월26일, 장소는 마지막으로 촛불집회를 해오던 농협창고였다. 정말 눈물겨웠다. 대추리를 지키기 위해 예술가들이 그려놓은 그림들이 있고, 날마다 촛불문화제를 열어 의지를 다졌던 그곳을 빼앗기고 나가야 하는 때에 기념미사를 드린다니 온갖 상념이 다 들었다.

2007년 4월7일 대추리의 마지막 문화제 ‘매향제’가 열렸다. 황새울에 세웠던 최평곤 작가의 ‘문무인상’을 태우고, 소원지와 희망의 솟대를 실은 꽃배를 메고 대추초교 운동장으로 모였다. 항아리에다 대추리의 유물, 마을 사람들의 도장, 지금까지 싸워왔던 모든 자료와 사진들을 그러모았다. 그리고 밀봉한 항아리를 땅을 파서 묻었다. 또 주민들의 절절하고 애틋한 마음을 향나무 판에 글로 써서 함께 묻었다. 그리고 그곳에 표지판을 세웠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얼싸안고 울고 또 울었다. 울면서 언젠가는 땅에 묻은 대추리 주민들의 한 많은 삶과 역사가 되살아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935일 동안 들었던 대추리 주민들의 평화 촛불이 꺼졌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대추리와 함께한 시간이 3년이었다. 1년은 유랑길에서, 2년은 대추리에서 주민들과 함께했다. 그 시간은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았다. 대추리에 오기 전에는 무조건 공권력에 맞서 싸웠지만, 대추리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경찰과 맞서려 앞으로 나가면 나보다 나이 든 할머니들이 쫓아와 함께 맞섰다. 그러다 여기저기 다치시는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서야 했다. 정부는 협상 조건에 ‘문정현 신부도 떠나게 하라’는 조건을 걸었다. 그런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민주화 동지라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내가 대추리를 떠날 때 보기 좋게 떠날 명분을 주겠다며 입원을 하라고 했다. 나는 그런 것들이 다 마뜩잖았다. 나는 그날 주민들이 다 떠난 뒤 평화바람과 함께 맨 마지막으로 대추리를 나왔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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