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성당에서 ‘천주교의 개혁과 참회’를 요구하며 두 달 가까이 홀로 기도 농성 중인 문정현 신부가 7일 오후 명동성당 경내에서 성경 서각 작업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문정현-길 위의 신부 91 -마지막회
2007년 4월 평택 대추리에서 2년 남짓 살다 쫓겨나 익산의 작은 자매의 집에 돌아온 뒤 나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공황상태에서 한참을 보냈다. 그러다 2008년 1월24일 은퇴미사를 하고 작은 자매의 집을 떠났다. 작은 자매의 집 아이들을 떼놓는 일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하지만 후임 사제와 작은 자매의 집 일꾼들을 위해 은퇴한 뒤에는 한 번도 발길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작은 자매의 집 아이들을 생각하면 절절한 그리움에 눈물부터 난다.
그 뒤 군산 미군기지 앞 옥봉리에 평화바람의 터를 잡아 살던 중 2009년 1월20일 용산 남일당 참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2월16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다. 추기경 조문 갔다가 순천향병원 영안실에 들렀다. 강도 같은 공권력에 희생된 다섯 분 유족들의 고통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야 할 때였다.
나는 나만큼이나 노쇠한 평화바람의 꽃마차(미니버스)를 끌고 올라와 남일당으로 들어갔다. 철거민들과 함께 부당하고 잔인한 공권력에 맞서는 일은 하루하루 큰 고통이었다. 그러다 2010년 1월 11개월 만에 그곳을 떠나야 했다. 1년 가까이 유가족과 철거민들을 외면하던 정부는 2009년 연말이 지나기 전 서둘러 용산참사 사태를 마무리지으려 했다.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지쳐 더 싸울 기력이 없었다. 나는 대추리 때와 마찬가지로 당사자들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는 명동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8월10일부터 날마다 명동성당 한구석에 앉아 세상의 모든 아픔을 모아 하느님의 제단에 바치는 심정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모태이며 지난 시절 죽음과 고난의 역사를 헤쳐온 민주화의 성지다. 그런데 지금의 명동성당은 세상과 벽을 쌓고 있다.
지난여름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촉구하는 사제들의 단식기도 때, 서울대교구 관리국에서는 영업방해라며 가톨릭회관 앞 주차장에 설치한 기도처 천막을 강제철거했다. “우리 성당은 우리가 지킵니다. 나가주십시오. 신자들이 기다리는 본당으로 돌아가십시오. 로만칼라를 벗고 미사를 하십시오!”라고 외치는 명동성당 사목회 임원들을 보며 안타깝기보다 참담했다. 사제서품 40년을 넘어 금경축을 앞둔 내 사제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명동성당은 네 것 내 것 따질 수 없는 우리나라의 성당이다. 서울대교구 교구청, 그리고 명동성당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행태는 바로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영향이라 믿는다.
4대강 사업 반대는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 교구장인 정 추기경은 주교단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자들의 비위에 맞는 발언을 일삼았다. 주교단의 결정사항을 파기하면서 한국 주교회의를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행태는 참으로 부끄럽다. 주교회의의 결정을 따르는 사제들과 신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암울한 4대강의 생명평화 가치를 욕되게 했다. 정 추기경도 그 가치를 모르지 않을 터, 그런 언행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해 용산 남일당 미사 때도 그 아픈 현장에 정 추기경이 찾아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아쉬웠다. 용산참사는 성서에 나오는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의 구체적인 사례였다. 용산에서도 우리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최선을 다했다.
돌이켜보면 1974년 유신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면서 시작된 나의 사회사목 활동은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늘 함께한 길이었다. 사제단은 우리 현대사에 기념비적 자취를 기록해왔다. 사제단의 모든 행동은 도덕적·윤리적·신앙적 판단으로 결정되었고 복음에 따라 실천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사제단을 대화의 상대로조차 여기지 않지만 나는 항상 내가 사제단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더 철저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사제의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핵심이다. 순교다. 불의에 항거하다 죽는 것은 바로 하느님 앞에 영광일 뿐이다. 나는 후배 사제들이 주저없이 이 길을 택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40년을 길 위에 살면서 오늘의 현실에서 교회의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기도하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대교회적 언행은 극히 조심해왔다. 명동성당에서 기도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고 40일이 넘었다. 나는 앞으로 100일, 1000일이라도 명동성당에 상주하며 나 자신과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바라건대 한국 천주교회가 순교자의 영성으로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는 불빛이 되기를 바란다. <끝>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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