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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불순분자 경계령’에 북북 찢긴 소년의 ‘조각’ 명단/ 이이화

등록 2010-10-21 09:42

필자의 부친 야산 선생이 석천암 시절 홍역학회를 수료한 108제자에게 일일이 친필로 써준 수료증과 제자들에게 보낸 친필 편지.(왼쪽) 학교 대신 석천암에서 한문을 배우던 10살 무렵 필자는 <소학>과 <논어>에 붓글씨로 낙서를 하며 혼자 놀아야 했다.(오른쪽)
필자의 부친 야산 선생이 석천암 시절 홍역학회를 수료한 108제자에게 일일이 친필로 써준 수료증과 제자들에게 보낸 친필 편지.(왼쪽) 학교 대신 석천암에서 한문을 배우던 10살 무렵 필자는 <소학>과 <논어>에 붓글씨로 낙서를 하며 혼자 놀아야 했다.(오른쪽)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7
충남 논산 대둔산 아래 석천암 시절, 나는 어머니와 떨어져 엄한 아버지와 어른들 틈에 살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10살이 되도록 심한 야뇨증에 시달려 잠자다가 오줌을 자주 싸서 바지를 흥건하게 적셨다. 또 밥을 먹을 때나 글씨를 쓸 적에 왼손으로 해서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 그런 탓인지 이 무렵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또 여름철이면 옻이 올라 온몸으로 퍼져 쌀을 씹어 바르는 요법을 썼다.

그래도 내게는 중요한 기억이 남아 있다. 손님이나 제자들이 아버지를 찾아올 적에는 신문이나 양주, 과자 따위를 들고 왔다. 이때야말로 나는 희한한 성찬을 즐겼다. 아버지와 손님들이 대화를 나누면 나는 옆에서 이를 들으려 앉아 있었다. 어느날 ‘유시태’라는 친구분이 찾아와서 무슨 성명서 같은 걸 읽어주면서 함께 나가서 활동하자고 권유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결사항쟁이 뭐냐? 살려고 우리가 싸웠는데 죽기는 왜 죽어?”라고 소리쳤다. 이 말은 억지말로 사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일 것이다. 유 선생은 부산 피란 시절 이승만을 저격하다가 체포된 인물이다. 아버지는 대구 등지에서 유 선생을 비롯해 독립지사인 김시현, 혁신정당 운동가인 서상일 선생 등과 사귀었다 한다.

또 사회활동을 하다 석천암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임시정부나 건국준비위나 공산당 같은 단어들을 들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야, 이놈들아, 내가 진짜 공산당이다. 내가 재산이 있나, 서로 나누어 먹고 사는 걸 봐라”라고 소리 지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리를 뜨지 않고 늘 흥미있게 들었다. 나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동경은 그렇게 점차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1년에 한번꼴로 이리 어머니에게 보내 한달쯤 지내다 오게 했는데 세상일을 조금씩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어느날 방문객이 들고 온 신문을 보고 붓글씨로 대통령에는 아버지 이달, 장관에는 형님이나 석천암의 제자 이름을 써놓았다. 어린 소년 나름의 정부 조각이었다. 그런데 자형(누나의 남편)이 보더니 깜짝 놀라 북북 찢어버리며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라고 심하게 꾸지람을 했다. 또 이때 여운형 선생이 암살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런데 자형이 내가 짠 조각 명단을 서둘러 찢어버릴 만한 이유가 사실 있었다. 석천암에 불순분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사복경찰이 수시로 감시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대전에서 좌익청년 활동을 하다가 도망 온 유아무개를 한동안 하루 종일 산에 숨어 있다가 밤에 내려오게 했다. 하지만 별 탈 없이 보냈다.

나는 이렇게 햇수로 3년쯤을 보내면서 글을 배웠다. <주역>은 읽지 못했으나 <사서>를 떼었다. 또 오언절구나 칠언절구 같은 짧은 한시를 짓는 것도 배웠다. 어느날 조금 진도가 나갔다고 판단했던지 아버지는 한지에 당나라 시인 맹호연의 ‘춘면불각효’(春眠不覺曉)로 시작되는 오언절구와 당신이 지은 시 ‘녹음승춘화’(綠陰勝春花)로 시작되는 오언절구를 써주면서 날마다 시를 한 수씩 지어보라고 일렀다. 나는 시원한 절벽 밑에서 당시를 외우면서 신나게 보냈다. 이것도 아버지에게 받은 몇 가지 안 되는 배려였다.

다른 제자들, 특히 한문 기초가 없는 제자들은 내가 배우지도 않은 <주역>을 외고 하루 종일 놀면서도 다음날 아침이면 시를 암송하거나 짓는 모습을 보고 천재니 뭐니 하는 과도한 소문을 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몇년 동안 제자들이 주역 외우는 소리를 아침저녁으로 들었으니 배우지 않아도 일부는 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조금은 미련치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배운 한문 기초가 훗날 내가 역사를 공부하는 밑천이 되었던 셈이다.

아버지는 석천암에서 3년을 보내면서 제자 108명을 길러 모두 수료증을 주었다. 108이란 숫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우연인지는 가늠하지 못하겠다. 이들 제자들 가운데에는 오늘날에도 왕성하게 ‘야산주역’을 전국에 걸쳐 강의하고 있는 대산 김석진(동방문화진흥회 창립 회장)이 끼어 있다. 다른 제자들도 자기 고장에 가서 글을 가르치거나 유지가 되었다. 나는 너무 어려서 제자 명단에 끼지 못했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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