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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치마폭에 숨어 한강 건넜지만 서울에선 갈 곳 없고 / 이이화

등록 2010-11-01 10:32

1953년 여수에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필자가 도움을 청하고자 찾아갔던 인천 여자경찰서의 56년 무렵 전경. 47년 미군정청이 경무부 여자경찰국 산하로 서울·부산·대구·인천 등 대도시에 설치한 여자경찰서는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1953년 여수에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필자가 도움을 청하고자 찾아갔던 인천 여자경찰서의 56년 무렵 전경. 47년 미군정청이 경무부 여자경찰국 산하로 서울·부산·대구·인천 등 대도시에 설치한 여자경찰서는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14

1953년 여수보육원을 탈출하다시피 떠나온 나는 무작정 여수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탔다. 당시 여수발 완행열차는 15시간 정도 걸려서야 서울역에 도착했다. 앉을 자리도 없어서 내내 서서 와야 했다. 그때는 휴전회담이 진행중이어서 도강증이 있어야 한강을 넘을 수 있었다. 그런 증서가 있을 턱이 없었던 나는 덩치가 작은 덕에 한 아주머니 승객의 치마폭에 숨어서 무사히 통과했다.

난생처음 와본 서울 거리는 폭격에 맞아 성한 건물이 없었다. 종로까지 걸어온 나는 웅장한 화신백화점 건물을 보고 감탄을 하면서 서울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물어물어 장충동에 있는 고아원에 찾아갔으나 정부 방침이라며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인천으로 가서 성광고아원을 찾아갔으나 여기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당시 인천에는 미군정 때 설치한 여자경찰서가 따로 있어서 부러 찾아갔으나 소득이 없었다. 여경에게서 설렁탕 한 그릇 얻어먹고 다시 서울로 왔다.

며칠 한뎃잠을 자면서 굶은 끝에 남대문시장을 찾아갔다. 전등불 아래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찐빵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훔쳐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때 나는 장발장을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릴없이 서울역으로 와서 몰래 화물열차를 탔다. 마침 군인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건빵을 먹다가 두어 개 주었다. 서너 날 만에 건빵으로 창자를 채웠던 것이다.

나는 무슨 마음인지 대구에서 내렸다. 대구역 앞에는 음식점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로 한 곳에 들어가서 설렁탕을 시켰다. 김치고 뭐고 상에 올라온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땀을 흘리면서 잠시 이 궁리 저 궁리 했다.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어어 돈을 쓰리 맞았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젊은 직원이 내 멱살을 잡으면서 ‘이놈 이럴 줄 알았다’며 흔들어댔다. 그러자 방 안에서 젊은 여인이 나와 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책가방에 무엇이 들었냐고 물었다. 책가방을 열어 보였더니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 여인은 내 책을 보고 몇 가지 물어보더니 ‘오빠 이 학생 좋은 학생이야. 그냥 보내줘’라고 사정했다. 나는 겨우 풀려났다. 그 여인은 대구 효성여대 학생이었다. 그길로 성주 외가로 내려간 나는 차비를 얻어 그 밥값을 갚아주었고 다시 그 여대생도 만났다.

10여년이 흐른 어느날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던 나는 아이 손을 잡고 스쳐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나쳐 뒤돌아보자 그도 돌아보았지만 이내 각자 길을 갔다. 그러면서 내내 생각을 더듬던 나는 순간 번쩍 떠올랐다. 대구 역전의 그 여대생, 맞다. 하지만 이미 찾을 길이 없었다. 아무튼 나는 그때 대구에서 부산 서울애린원으로 다시 갔다. 원장은 나를 아주 반겨주었다. 여수에서 편지를 보내 고아원에서 나온 일을 사과한 적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여수에서 배운 대로 가오루와 은단을 사서 자갈치사장과 국제시장 등 남포동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팔러 다녔다. 제법 쏠쏠하게 수입을 올렸다. 번 돈으로 영어학원에도 다녔다.

원장은 처음 약속과는 달리 영도에 있는 무선학교에 보내주었다. 교장이 신부였는데 나를 보고 연달아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담임선생은 나를 앉혀 놓고 시험을 보이다가 국어·역사 등 인문과목의 질문에 너무 대답을 잘하니까 아주 반겼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가 보니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무선과목이 반절을 차지했다. 정말 내게는 진절머리가 나는 과목들이었다.

결국 다시 애린원을 나온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서울에서 한동안 헤매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전쟁고아가 우선이었던 당시 고아원에서는 여전히 남쪽에서 올라온 고아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서울역에서 가출한 목포중학생 두 명을 만났다. 그들도 가출을 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 하릴없이 목포로 갔다. 그들이 자취하는 방에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한 달쯤 지냈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들 방에서 김동석의 평론집 등을 읽으며서 시간을 보냈다. 그 평론집에는 이광수를 호되게 비평한 내용들이 있어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때 처음으로 이광수를 재평가하게 된 셈이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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