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아이스케키 팔며 눈물 한바탕…매혈·웨이터 등 ‘전전’ / 이이화

등록 2010-11-10 09:06수정 2010-11-10 11:25

1960년대 초반 광주에서 상경해 어머니·남동생과 하월곡동에 정착한 필자는 생계를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사진은 그 시절 서울 어느 초등학교 부근에서 아이스케키 장수가 63년 처음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삼강 하드’를 팔고 있는 모습.
1960년대 초반 광주에서 상경해 어머니·남동생과 하월곡동에 정착한 필자는 생계를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사진은 그 시절 서울 어느 초등학교 부근에서 아이스케키 장수가 63년 처음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삼강 하드’를 팔고 있는 모습.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21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거리에서는 불심검문으로 병역 기피자를 마구 잡아들였다. 나는 본의 아니게 병역 기피자가 되어 있었다. 내 본적지는 그때도 경북 김천으로 되어 있었는데 징집 영장이 나와도 주소가 일정치 않으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 놓고 다닐 수 없었지만 운좋게 한 번도 검문에 걸린 적은 없다.

어머니, 동생과 함께 살게 됐으나 밑천이 없어 청량리 일대를 돌아다니며 아이스케키를 팔았다. 마침 고급제품인 ‘삼강 하드’가 나왔다. 그런데 한 개라도 팔려고 통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 보면 아이스케키가 금방 녹아버리기 일쑤였다. 그때 용두동 일대에는 개량한옥이 즐비했는데 길가 쪽 창문을 열고 한번에 몇 개씩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벌어 저렇게 잘사는가, 부럽기 짝이 없었다. 한번은 정릉 놀이터로 팔러 갔는데 어느 집 앞에서 ‘박경리’(소설가)라는 문패를 보고 나도 언제 저런 집을 사서 살까, 부럽기 짝이 없었다. 내 외침이 시원치 않았던지 아이스케키는 몇 개 팔리더니 그만이었다. 해거름에 아무도 없는 등성이에 올라 녹아서 흐물흐물한 하드를 꺼내 실컷 먹어치웠다. 배가 불룩했다. 그리고 석양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한바탕 쏟았다.

그다음에는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가루치약’ 장사에 나섰다. 이리저리 꾀를 짜낸 끝에 서울~인천을 왕래하는 열차에서 팔기로 했다. 기차간에 올라 연습한 대로 가루치약의 효능을 선전하자 몇 개 팔렸다. 신이 나서 이칸 저칸 돌아다니자 어느 우락부락한 놈들이 내 팔을 잡아끌어 내렸다. 이놈들은, 누구 허락을 받아 팔러 다니느냐며 내 배를 몇 대 갈기고는 치약이 든 가방을 짓밟았다.

그래서 이번엔 빈대약 뿌리는 일에 나섰다. 농약 같은 맹독성 약을 깡통으로 만든 ‘후막기’에 물을 타서 담아 방 안에 뿌리면 빈대나 벼룩이 죽어버린다. 이 일을 하면 수입이 좋다는 말을 듣고 시작한 것이다. 종로 뒷골목(오늘날 북촌 한옥마을 언저리)과 충정로·아현동·용두동 등 재래주택이 밀집한 곳을 돌아다녔다.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어느 더운 여름날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밀폐된 방에서 수건으로 입을 막고 땀을 흘리면서 빈대약을 뿌리고 나오니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래서 일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드러누워 거품을 토해내자 의식이 가물거렸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내가 자살하려는 줄 알고 구급차를 불러서 청량리 구호병원으로 보냈다. 의사가 거품을 뽑아내서 겨우 살아났다. 어머니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나는 자살하려던 게 아니라고 말하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한동안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기대하던 자식이 이 모양이어서 죄송하다고….’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얘기가 있다. ‘매혈’, 곧 피를 팔면 돈을 많이 받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동숭동 서울대병원과 서대문 언저리에 있는 적십자병원, 남산 밑에 있는 백병원에서 혈액은행을 열고 피를 사준다고 했다. 그런데 지원자가 많아 새벽부터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새벽에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부리나케 서둘러 적십자병원 앞에 줄을 섰다. 내 순번이 되자 담당 의사가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허약한 사람들은 가려내 제외했던 것이다. 다른 이들도 행색이 초라하고 얼굴빛이 노랬지만 내가 유난히 심했을 것이요, 몸도 삐삐 말랐으니 자격심사에서 낙방한 꼴이었다. 나는 돌아서면서 “피도 팔지 못하는 신세로구나”라고 한탄했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여러 차례 줄을 섰다가 하루는 성공을 거두었다. 아닌 게 아니라 거금을 즉시불로 주었다. 이 돈을 들고 먼저 아침 해장국집으로 달려갔다. 뻑뻑한 해장국 한 그릇과 막걸리 대포 한잔을 허겁지겁 훑어 넣고 마셨다. 무슨 눈물을 짜거나 신세 한탄을 할 짬이 있는가? 그대로 어머니에게 달려가 돈을 드렸다. 그때 우리 옆집에 콩나물 공장을 경영하는 강역남이라는 후배가 살고 있었다. 그는 나와 잘 통해 술을 자주 사주면서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는 부산에서 웨이터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잘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그의 소개로 이 길에 들어서기로 했다.


이이화 역사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