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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10·26으로 무너진 ‘유신’…싱거웠던 DJ와의 만남 / 이이화

등록 2010-11-25 08:49

1980년 5월11일 전북 정읍 동학제에서 5만여명의 군중을 상대로 연설을 마친 김대중 당시 국민연합 의장이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필자는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첫 대면을 했다.
1980년 5월11일 전북 정읍 동학제에서 5만여명의 군중을 상대로 연설을 마친 김대중 당시 국민연합 의장이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필자는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첫 대면을 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32
내가 서울대 규장각에서 일하던 시절, 친구 황승우의 동생 황지우는 신림동에서 방을 얻어 어머니를 모시며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1979년 봄이던가, 그 어머니의 회갑 모임에 초대받았다. 그 자리에는 승우·병우·지우 삼형제는 물론 지우의 친구들인 이해찬·정동영 등 1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다이쭈’(김대중 이름의 일본어 발음)니 뭐니 하는 은어들을 쓰고 있었다. 나는 이들과 흉허물 없이 대화를 나누고 앞으로 벌어질 정세를 얘기했다. 마치 아지트에 숨은 독립지사의 비밀 회합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는 이들이 훗날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드디어 박정희 시해사건이 터졌다. ‘10·26’이었다, 그 견고한 듯이 보인 유신정권이 무너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기억하는 일이 하나 있다. 77년 교과서 검인정 부정사건이 터져서 정부는 교과서를 새로 개편했다. 나는 동화출판공사의 요청으로 안병주 교수(성균관대)와 함께 고등학교 한문교과서의 편찬을 맡았다. 그런데 집필 요령과 편찬 지침에 전통문화와 한국적 민주주의 등과 관련되는 내용을 넣으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유신’이라는 단어를 빼버렸다. 아마 당시 ‘유신’이 빠진 유일한 교과서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출판사는 물론 문교부 담당자들도 간과하고 넘어갔다.(1979년판 고등학교용 <한문 1>) 이처럼 나의 의식 속에는 유신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18년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가 사라지자, 우리들은 민주주의의 봄이 온다며 들떠 있었다. 서울대 교정은 그야말로 소란스러웠다. 곳곳에 대자보가 붙었고 학생들의 구호 소리로 관악산이 진동하는 듯했다. 복학생들이 들어와 열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대자보는 ‘절두한(截頭漢)을 처단하자’였던 것 같다. 곧 ‘전두환’을 ‘머리를 자를 놈’의 한자말로 바꾼 것이다. 이른바 ‘12·12 쿠데타’로 권력을 훔친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 서리 등 실세로 떠오르자 ‘제1의 타도 대상’으로 지목된 상황이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논문을 준비하려 규장각에 자주 들르던 사학도 안병욱은, 떠도는 소문을 포함해 많은 정보를 내게 공급해 주었다. 그는 치밀하게 정세를 분석하면서, 대령급 장교들이 실세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그럴 때면 눈물도 자주 흘리고 흥분도 잘하는 감상적 성격인 나는 혼자서 정세를 속단하며 일희일비하기도 했다.

그즈음 나는 쓰던 글을 접어두고 시내 나들이도 자주 하며 이 소문 저 소문 듣기에 몰두했다.

그러다 80년 봄 전북 정읍에서 동학농민군 축제가 열렸다. 연례행사였다. <뿌리깊은나무>의 편집부장인 김형윤이 함께 가자고 했다. 내려가 보니 <중앙일보> 방인철 기자도 와 있었다. 이때 오랜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대통령 출마 운동을 하고 있던 김대중 당시 국민연합 의장도 축제에 초청받아 인근 내장산호텔에 유숙하고 있었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나와 김 부장은 한승헌 변호사의 안내를 받아 그와 5분간 면담할 기회를 얻었다. 사실 나는 약간 떨렸다. 한 변호사는 나를 소장 역사학자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김 의장은 대뜸 “한(恨)을 영어로 뭐라 하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어리둥절했고 한 변호사는 “뭐라고 해야지?”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런 사이 5분이 지나버려 나는 말 한마디 걸지 못한 채 멀쑥하게 물러나왔다. 내가 그때 한창 공부중이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질문은 전혀 없었다. 김대중과 이이화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싱겁게 끝났다.

그날 축제 행사장인 정읍농고 운동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연단 주변은 김대중의 경호원으로 둘러싸여 여느 사람들은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김대중은 자신감에 찬 연설을 했고 청중의 호응 열기도 뜨거웠다. 그는 마치 대통령이 된 듯이 발언하고 행동했다. 적어도 젊은 나에게 김대중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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