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한문서당’ 열어 의기투합…뒤풀이 ‘장학주’로 유명세

등록 2010-12-06 08:48

1980년대 초반 필자의 한문서당 수강생 일행이 전남 장성 일대 동학농민전쟁 지역을 답사하는 길에 이 지역의 대표적 한학자였던 산암 변시연 선생 댁을 방문했다. 앞줄 왼쪽부터 필자, 조한혜정 교수, 변 선생 부부 등이다. 산암은 방대한 시문집 <문원>(전 73권)을 완성한 뒤 손룡정사를 지어 후학을 키우다 2006년 작고했다.
1980년대 초반 필자의 한문서당 수강생 일행이 전남 장성 일대 동학농민전쟁 지역을 답사하는 길에 이 지역의 대표적 한학자였던 산암 변시연 선생 댁을 방문했다. 앞줄 왼쪽부터 필자, 조한혜정 교수, 변 선생 부부 등이다. 산암은 방대한 시문집 <문원>(전 73권)을 완성한 뒤 손룡정사를 지어 후학을 키우다 2006년 작고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39
이야기를 1970년대 후반으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때부터 지금까지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는 그룹이 있다. 바로 한문서당팀이다.

내가 서울대 규장각에서 해제 작업을 하던 시절 이화여대 진덕규 교수가 정외과 대학원생 제자들에게 ‘한국 정치사 관련 논문을 쓰려면 우리 원전을 읽어야 한다’며 나를 한문 선생으로 추천했다. 그래서 이대생 10여명이 1주일에 한번씩 서울 화곡동 우리집으로 와서 한문 원전 공부를 시작했다. 이승희(민주당 국회의원)·이희주(선문대 교수)·조현옥(이대 교수) 등이 초창기 수강생이다. 그러자 연세대 대학원생들도 소문을 듣고 따라왔는데 황원권(번역가)·우윤(전주역사박물관 관장·작고)·황주홍(강진군수)·정명철(경제학자)·오영석(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홍기훈(국회의원) 등이 합류했다. 또 소설가 박완서 선생도 왔다. 좁은 집이 이들로 북적거렸다. 두어 시간 강의가 끝나면 이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뒤이어 박현서 교수의 추천으로 한양대 대학원생들의 한문 강의도 맡았다. 여기에는 강진갑(경기문화재단 실장)·이균영(동덕여대 교수·작고)·이석규(한양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한양대팀은 잠실의 아파트와 한양대 강의실을 오가며 공부를 했다.

82년 구리 아치울로 이사를 간 뒤부터는 수강생들을 집으로 오게 했다. 당시는 광장동에서 구리 시내로 가는 길이 좁고 포장도 안 돼 몹시 불편했는데도 모두들 열성으로 찾아와줬다. 아치울 그룹서당에는 이대생 이희주, 우윤 등 연대생 10여명, 연대 대학원생 김철(연대 교수), 서강대 대학원생 한규무(광주대 교수) 그리고 박완서 선생, 김점선 화가 등이 드나들었다.

아치울 서당에서는 강의 교재로 경서도 포함되었지만 <통감> <동사강목> <삼정책> 등 역사책과 우리 사료들을 선택했다. 토요일 강의가 끝난 뒤에는 어김없이 뒤풀이 술판이 벌어졌다. 강의하던 탁자는 식탁과 술상으로 바뀌었다. 그 자리에서는 시국도 성토하고 학문도 논하고 신상 얘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박완서 선생도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앞서 얘기한 동네잔치 같은 때는 언론 통제가 심하던 시절이라 민감한 시국 얘기는 조심할 필요도 없지 않았지만, 서당 학생들과의 술자리에서는 자연스레 세간에 떠도는 정보들이 쏟아졌다. 이 얘기들을 다 모으면 두툼한 책 한 권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마침 우리집 뒤도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잡화를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담 위에 종을 달아놓고 한번 치면 맥주 한병, 다섯번 치면 맥주 다섯병을 건네주곤 했다.

명연설가로도 이름난 한승헌 변호사는 2001년 내가 단재상을 받을 적에 축사를 하면서 “그 한문서당에서는 공부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술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매번 ‘장학주’를 마시고 오느라고 귀가 시간이 늦어진 것이었습니다”(한승헌 저 <스피치의 현장> 중에서)라고 말해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한문서당 수강생 한규무는 바로 한 변호사의 아들이었다.

나는 이들과 때때로 날을 잡아 경기도 일대의 실학파들, 곧 안산의 성호 이익 유적이나 마재의 다산 정약용 유적 등을 답사했고 남한산성에도 올랐다. 차츰 답사 지역을 넓혀 동학농민전쟁이나 삼남농민봉기 지역이나 지리산 등지로 답사를 다니기도 했다. 79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돌아온 조한혜정(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도 가끔 답사 대열에 끼었다. 조 교수는 아주 학구적이어서 우리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한국의 전통이나 풍습에 대해 물었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말해 둘 것은 이들이 모두 남들이 말하는 ‘이이화 사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이 모두 나를 추종한 것도 전혀 아니었다. 그저 한문 선생으로 보기도 했고 재미삼아 참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실 민중 역사를 연구하고 새로운 학문을 탐구하려는 수강생은 아주 적었다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물론 그들 속에 우윤 등 몇몇은 훗날 역사문제연구소 학술 활동에 동참하면서 끝까지 동지적 관계를 맺었다.


■ 지난 12월3일치 28면 ‘길을 찾아서-이이화 38회’에서 “한 예로, 서강대 박호성 교수가 한국사 관련 논문 심사를 나에게 비공식으로 맡긴 적이 있다…, 자신이 대신 서명을 해서 처리했다”는 내용은 필자가 다른 사례와 착각해 잘못 쓴 것으로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박호성 교수와 해당 대학에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합니다. 이이화 역사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